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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보여줄게, 그까짓 거.

드루와. 함 해보자.

by 청유

6~7년 전쯤이었을까.
인스타그램(이하 인스타)을 꽤 열심히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걸로 돈을 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화장품이나 책 등을 수시로 협찬받았고, 어떤 업체의 회원 모집을 도와 수당을 받기도 했다. 민간협회에서 발급한 ‘SNS 마케팅 전문가' 자격증을 취득해, 소정의 수수료를 받으며 ‘인스타 전용 문장집.ppt’를 만들어 배포하기도 했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이어가던 인스타는 넷째 아이가 태어난 이후 점차 시들해졌는데, 휴대폰을 교체하면서는 아예 삭제되었다. 이제 이런 거 할 나이는 아니지, 하는 외면은 시간이 흘러 청소년이 된 아이들과의 소통에서 구세대의 면모로 되돌아왔다.


하지만 아이들과의 조화를 위한답시고 다시 SNS를 하고싶진 않았다. 오히려 아이들 때문에 꺼려진 부분이 더 많았다. 지극히 개인적인 일상을 공개하는 것이 조금 창피했기 때문이다. 왜 다른 사람 사진을 올리냐는 놀림을 단.한.번.이라도 받아본 사람이라면 이해할 것이다. 안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것임을 말이다.

이에 대해 할 말은 많지만 각설하고, 아무튼 그러던 내가 인스타를 다시 시작했다.

그건 바로, 그곳에 풍부하게 올라오는 서예가들의 자료에 반해서였다.


인스타에선 이미 오래전부터 유수의 캘리그라퍼들이 높은 기준으로 선별된 자신의 글씨를 찍어올리며 기량을 뽐내고 있었다. 그들의 멋진 작품에 매료된 나는 어느 순간 동경의 대상이 생기기에 이르렀고, 그 숫자는 인스타에 할애한 시간에 비례하며 늘어갔다. 그간 네이버나 구글의 이미지에 의지해왔던 나에게 인스타와 핀터레스트는 새롭게 펼쳐진 신세계였다.

아니, 어떻게 이런 아이디어가!

세상에나, 글씨에 이런 피지컬이!


하지만 그 새로운 영역은 내게 있어 배움의 터전만은 아니었다. 살펴볼수록 감탄은 탄식이 되었고, 똑같은 글을 따라써도 와닿는게 달랐다. 상대적으로 고립된 내 실력을 냉정하게 마주하게 된, 말하자면 날 것인 내가 아름다운 조각상 사이에 툭 놓인 느낌이었다. 괜찮다고 만족했던 내 글씨의 선들이 삐뚤게 보였고 붓을 잡는 모양이 이게 맞는건지 어색한 촉감마저 느껴졌다.

이 위축감은 무려 1년이 넘게 이어졌다. 부끄러운 기존 피드들을 하나둘씩 지우며 기회를 노렸지만 역시나 아호를 걸어내기엔 용기가 턱없이 모자랐다. 감히 그들 옆에 서겠다니, 한없이 초라해질 뿐이었다.


그렇게 계정이 검색전용으로 방치되는 동안에도 조용히 글을 짓고 썼다. 꾸준히 내 할일을 했다기보단, 어찌할 줄을 몰라 하던거나 하며 시간을 보낸 것이다. 그런데, 문장들을 쓰며 마음속 빗장이 열렸다는 걸 최근에 깨달았다. 수없이 써왔던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행동하라던가, 멍청한 용기가 있어야 두려움이 극복된다던가 하는-명언들이 현실적으로 내게 와서 꽂히는 순간이 온 것이다.

캘리그라피의 단점을 말할 수 있는 자 어디 있는가. 그 작품들은 대부분도 아닌 모든 문장들이 좋은 글로 이루어진다. 필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 루틴을 끊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긍정의 언어가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거의 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열린 마음이 행동으로 나타난 건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내가 그들을 염탐하며 느꼈던 것들을, 반대로 어떤 이들이 내게 느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결정적으로는 수익창출의 밑그림에 SNS는 빠질 수 없는 요소라는 걸 확인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조급해지기까지 했다. 역시 돈이 걸려있어야 움직인다. 속세의 인간이란.

하지만 지금도 확신이 서는 건 아니다. 모든 이가 이렇게 불안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 타협점을 찾아보고 있을 뿐이다.



나는 아직 연습생이다. 아마 죽을 때까지 연습생일 것이다.
연습생이라는 말에 깃든 ‘진행 중인 삶’이라는 개념이 나를 위로한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갈 길이 먼 나지만, 그렇기에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것, 서툰 글씨와 뒤처지는 감각도 과정의 일부라는 것을 이해한다는 뜻이다.


감탄했던 작품들과 동일선상에서 평가받는다는 두려움은 욕심의 다른 얼굴이었다. 돌아보면 타인의 시선에 앞서 가장 냉정한 눈으로 비교하며 재단한 건 나 자신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인스타를 시작한다. 망설임은 여전하지만 어쩌면 이 마음을 품은 채로 시작하는 것이 내 방식일지도 모르겠다.(항상 선택의 기로에서 시간을 축냈던 과거의 나를 근거한다.) 느리더라도 성장을 보여주면 되겠지. 허나 불특정다수에게 '보여준다'는 건 여전히 두렵다. 작품공개보다 기록을 쌓는 것에 주안점을 두기로, 그리고 그것을 잊지 않기로 해본다. 때로는 영감이 떨어져 머뭇거리는 순간을 담아도 웃을 수 있길 바란다.


나는 돈을 벌 수 있는 전문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 점점 전문화되어가는 터줏대감 연습생이랄까.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을 넘어 글씨로 공감을 받아 마음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더 가치 있을 것이다. 비루한 마음과 성과의 조급함도 여전하지만, 그 속에서도 나를 밀고 나가는 지속성에 그 진심을 다하고 싶다. 단기적인 반응보다 오래 쌓인 신뢰를, 완성된 모습보다 나만의 흔적을 남겨보려 한다. 꾸준히 글과 글씨를 쓰고, 기록하고, 표현하는 이 시간이 언젠가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닿길 바라며, 나의 작은 전시장이자 포트폴리오가 될 인스타를 곱게곱게 키워보겠다고 다짐한다.






나님, 화이팅.


'아름답다'의 '아름'이 '나'를 뜻한다는 것을 아시나요


꽃잎이 아름답다면,
그건 너이다.
윤슬이 아름답다면,
그건 너이다.

아름다운 미소를 닮고 싶다면
이미 네 미소가 그러하다.


아름답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대는 알지만 모르고 산다.

'아름'이 품은 '나'라는 뜻을
그대는 몰랐을 것이다.

아름답다는 건
나답다는 뜻이다.

그대, 이제 깨달아라.
당신이 아름답다 하는 모든 것들이
사실은 당신을 닮았다는 것을.

당신이 당신일 때,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p.s.

쓰다보니 여기 이 브런치스토리에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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