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인의 화풀이
조심스럽긴 하지만, 내가 브런치스토리에서 글을 계속 써 나갈 수 있을지 기로에 서 있는 문제이기에 무겁게나마 꺼내놓기로 했다. 글쓰기는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누가 그랬던가. 아무튼, 이런 글(?)은 처음이라 긴장은 된다.
모든 작가가 같은 고민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나만 만족하면 되는 글을 쓰면 장땡인건지, 아니면 보는 사람들이 만족할 글을 쓰고 싶어 하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⑴ 브런치의 시스템에는 구독자라는 층이 있고, 때문에 보는 사람들"도" 만족할 수 있는 글을 써나가야 하는 것이 이론상 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예술의 영역은 개인적인 철학을 기반으로 하기 마련. 그중에서도 문학예술은 (그림이나 음악처럼 컬러플하지 않으므로) 대중성보다도 한 줄기 공감이 해당 글 속에서 얼마나 깊은 파급력을 가지느냐가 중요한 문제다.⑵
이것은 참 어려운 부분이다.
그 한 줄기의 공감이 내가 의도하지 않은 (정반대의) 부분에서 일어나거나, 의도 자체가 독자에 따라 곡해되는 경우 나는 그것 역시 내 글임을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
글의 중심 문장 앞뒤에 부연을 덧붙이는 것은 요점을 확대하거나 나누려는 것이 아니라, 단 하나의 요점을 강조하기 위함임을 작가라면 알 것이다. 그래도 특정 독자에게 주안점이 선별되지 못했다면, 내가 필요 이상으로 장황하게 쓴 부분이 원인일 수도 있다. 이 문제는 내가 필력을 연마하면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독자의 가치관이나 이념, 심지어 성향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과연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문제인가.
브런치스토리는 글을 쓰는 공간이다. 소설가는 삶이 터득한 범위 안에서 상상 속을 날아다니고, 수필가는 지난날을 돌아보며 반성과 다짐으로서 복기하거나 때론 뱉어내듯 토로한다. 글은 결국 삶을 반영하기에 한 사람의 생각이 항상 일관될 수는 없다. 어제는 사람에게 가면이 필요하다 했어도, 오늘은 내면의 중요성이 크게 와닿은 일이 생길 수도 있다. 각각의 사고는 나름의 필터를 거치며 각각의 글로 탄생한다. 말하자면, 한 입으로 두 말을 하게 되는 순간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최근까지는 크게 문제를 삼지 않았다. 브런치스토리가 커뮤니티 플랫폼이기도 하다는 것을 느끼기 전까지는 말이다.
글이 삶을 반영하는 만큼, 읽는 사람들 역시 저마다의 삶의 방식으로 피드백을 주고받는다. (물론 주로 공감과 위로와 응원이 오고간다.) 때로는 작가가 담아낸 복잡한 맥락과 고민을 제쳐두고 표면적인 한마디를 비난하기도 하고, 보물찾기처럼 발견된 -한 입으로 두 말하는- 모순을 꼬집어 비판하기도 한다. 글뿐만 아니라 사람이 함께 평가 당하기도 하는 것이다. 나는 이 점이 상당히 불편하다.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있단들 문장표현력 상위등급으로 인정받아 함께 하는 작가로서 꼭 화살촉을 갈아야만 하는 걸까. 또,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모순 없이 살아온 사람이 있을까. 있다면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위에서 "당한다"는 표현이 나올 만큼 나는 지금 꽤 시니컬한 상태이므로, '당하기' 싫으면 그만두던지 아니면 최대한 많은 독자들이 환영할 노래가사나 고민하던지 따위의 마음으로 가득 차있다. 뭐, 삐져서 그렇다 치자.
뜬금없는 고백이지만 나는 직업이 없다. 주부, 캘리그라퍼, 작가 등을 국어사전에 나오는 "직업"의 조건들로 대봤을 때 그 어느 것도 직업으로서 해당되지 않음을 방금 알았다. 그래도 브런치작가라는 타이틀에는 자부심을 느끼며 지내왔다. 어쩌면 진짜 작가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며 상상도 했다. 그런데 지금, 작은 생채기 하나에 작가 은퇴를 운운하고 있는 걸 보니, 그마저도 불안한 정체성을 감추려던 그럴듯한 명칭이었을 뿐인가 싶다. 나는 과연 여기서 무엇을 원했는가. 일기쓰기? 글배우기? 출간하기? 홍보하기? 지원서엔 소재부자인척 한껏 꾸며 위장진입에 성공했지만, 뚜렷한 목표도 없이 난 지금도 휘둘리고 있다. 글에 대한 모든 것이 상향평준화된 이곳에 머물면 뭐라도 배우겠거니, 뭐라도 될 수 있겠거니 했다. 그러고 보니 "순수하게 글만 쓰고 싶어서 여기 왔다"는 흔한 말조차 한 적이 없다.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난 글을 잘 써서 책을 내고 싶었다. 브런치가 내 목적을 이뤄줄 것인지가 막연했지만, 일단은 배울 게 많겠지, 길이 좀 보이겠지, 했다. 무슨 장르가 자신있는지, 여기서 뭘 배우고 어떤걸 확인하고 싶은 건지는 내 속인데도 첩첩산중이다. '어차피 안 할 거니까 다 가르쳐주는' 베풂이 유튜브에 널리고 널렸는데도 여지껏 출간 프로세스 한 번 둘러보지 않았다.⑶ '어차피 안 할 것'을 너무 주제넘게 시작했을까. 아니면, 일개 비판에 쉽게 관두네 마네 할 만큼 이곳이 내게 가벼운 곳이었나. 그 너머에 있는 '어차피 안 할 그것'을 최종적으로 꼭 해보고 싶었고, 배움은 그저 밑밥이었음을 이제야 인정해본다. 안그래도 막연한데 비난이나 받는다는 건, 정말 나 틀려버린거 아니야?,라고, 희미한 본질이 더욱더 뿌얘졌다. 곡해 해석돼 던져진 한마디에 주저앉아, 스스로에게 가장 가혹한 비난을 퍼붓고 있지 않은가.
이 글은 작가의 모순을 비판하는 것에 대응하는 글도 아니며, 글쓰기에 대한 내 의지박약을 지적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감정적인 화풀이라서 앞뒤도 안 맞을 것이다. 내일이면 까먹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욕 좀 먹고, 좀 더디면 어떤가.. 어차피 죽을 때까지 미완성인 게 인생 아닌가...
저는 이렇지만 여러분들의 글만큼은 아주 재미있고 행복하게(?) 만나고 있습니다.
(1) 내 글들 어딘가에 '글은 보여주기 위해 쓰는 거'라고 단정지은 부분이 있다. 이후 약간의 혼란이 있었다.
(2) 글쓰기는 문학예술로 정의하고 있다.
(3) 유튜브에서 대표적으로 보이는 자극적 제목 중 하나. '어차피 안 하니까 다 가르쳐주는 월500만원 버는 부업'같은 제목으로,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며 월500 부업성공담은 한개도 없는게 특징.
※부제로 "내향인의 화풀이"라 했지만 저 사실 외향인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