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딸의 생일은 11월에 있다. 이번달이지..
매달 열리는 유치원 생일파티에서 이제까지 한번도 무대에 오를 수 없었다. 남몰래 얼마나 속이 쓰렸을까.
이제 겨우 48개월을 살아온 아이의 기다림은, 40년 넘게 살아온 내가 환산해 볼 수 없는 크기일 것이다.
지난 9월 마지막 주 유치원에서 그 달의 생일자들을 모아 성대한 파티를 열었던 날, 그녀의 인내는 화가 되어 폭발했다.
"왜 나능 생이이 업짜나!!"
"50밤만 더 자면 돼. 그럼 생일이야."
막내는 50밤이 뭔진 모르겠고 어쨌든 축복받지 못하는 삶이 억울했다.
식구 6명 중에서도 생일이 제일 늦어서, 가족의 생일초를 대신 불어주는 걸로 소회를 풀곤 해왔다. 다 큰 언니오빠들이 셋이나 있는 늦둥막둥이로 태어나 이 세상 귀여움은 모조리 갖다 쓰는 냥 사랑받으며 자라온 그녀다. 그럼에도 생일이 없다며 슬퍼하고 있다니.
"자, 앉아봐. 이건 달력이라는거야."
달력을 내렸다.
잘 살아보자고 걸어둔지가 엊그제 같은데, 달력은 신사답게 계절의 풍경지들과 함께 조용히 세월을 거닐고 있었다.
"와~ 바다도 있네? 우리도 바다 갔었지? 그게 여기 7월이었어. 한 밤 자면 이렇게 다음 날이 되는 거고.. 여기 빨간색은 유치원 안가는 날이야. 그렇게 하기로 정했어. 모든 사람들이."
달력을 넘겨가며 우리의 나날들에 대해 이야기 나누다 마침내 11월이 펼쳐졌다. 19일은 이미 알록달록 형광펜으로 번쩍거리고 있는 터였다. 아마 올해가 시작하기도 전에 큰 아이들이 예쁜 막내동생의 생일을 찾아놨을 것이다.
"11월이야. 여기 이 날이 네 생일이야. 조금 더 기다릴 수 있지? 11월?"
"언제되는데에에에에- 안기다일꺼야 으앙"
음?
이 방법이 아닌가?
머쓱해진 나는 경쾌하게 소리를 높였다.
"따라해봐! 11월!"
"씨리얼!"
"19일!"
"시꾸요!"
채 눈물을 거두지도 못하고 거칠게 내뱉은 그 말.
씨리얼 시꾸요
큽.. 크..끅...풉..
아, 나는 재빨리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너의 슬픔은 나의 슬픔인데 왜 웃기고 난리야. 순식간에 어색해진 안면근육의 느낌상 지금 내 얼굴은 괴상하게 찌그러져있을 것이다.
얼굴을 파묻고 잔잔히 떨고 있는 내 어깨를 감싸며 그녀가 위로를 건넸다.
엄마 우르지마 내가 잠 열씨미 자께 라며.
그래, 50밤 자려면 정말 열심히 자야겠구나.
흘리지도 않은 눈물을 훔치며 얼굴을 들었다.
그날, 유치원 숙제인 독서통장엔 <**농협 2024 달력>이 기록됐다.
우린 정말 열심히 독서했거든.
막내는 그로부터 약 40밤을 열심히 잤다.
어느새 씨리얼이 되었고, 곧 시꾸요도 다가올 것이다.
기다렸던 만큼 행복한 날이 되길.
다음 생일도 그다음 생일도 언제나 늦을 테지만, 늦건빠르건 가장 사랑받고 가장 사랑 주었음을 언젠간 알게 되겠지. 그리고 막내딸이 얼마나 좋은 날에 태어났는지는 엄마아빠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네가 태어나서 제일 좋은 날이 되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