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겨울날, 유치원 졸업을 앞둔 큰 아이가 폐렴으로 입원을 했었다.
더 정확히는 유치원 졸업 공연을 일주일 앞두고 입원을 하게 된 것이다.
여름에 이동네로 이사왔으니 7살 시절이 토막나있는 상태였는데도, 아이는 한 학기치의 의리를 위해 성실히 공연준비에 임해왔다.
"은별이 폐가 많이 안좋아서 입원해야 된대."
"연습했는데 그럼 어떡해요?"
가뜩이나 내성적인 성격이라 연습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텐데. 오히려 입원이라는 이벤트가 공연을 불허해 쾌재를 불러올 줄 알았건만 아이는 예상외로 아쉬워하고 있었다.
"그전에 다 나으면 공연도 나갈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입원을 하고도 폐렴은 쉬이 나아지지 않았다. 입원 예상기간 나흘을 넘어 일주일을 꼬박 채우고도 말끔히 낫질 않아서 외래로 전환하자는 처방을 받고 병원 밖을 나오게 됐다.
뜨뜻미지근한 퇴원수속을 마치고 유치원에 전화를 걸어봤다. 지금 퇴원을 했고 공연은 내일인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선생님께서는,
"유치원에서 진짜 열심히 연습했거든요. 어차피 은별이는 뒷 줄이라.. 앞 줄 보면서 따라 해도 되니까 합류해도 될 것 같아요. 저희가 은별이 무리 안가도록 많이 줄여서 출연시켜볼게요."
근데 이게 맞나. 퇴원은 했지만 다 나은건 아니잖아. 너는 어떠니.
"나는 공연하고 싶어요."
이렇게 의지가 대단했다니. 싫은 걸 참아가며 춤추고 노래하는 줄 알았는데 나름 애쓰고 있었구나 싶어 대견하고 안쓰러웠다.
다음 날 저녁 무렵, 다소 초췌해진 딸에게 흰 티와 청바지를 입히고 공연장으로 향했다. 그다지 들떠있지도 않는게 과연 가고 싶은게 맞나 싶었지만, 원래가 무미한 아이고 충분히 의견을 나누었다 생각해 손을 꼭 잡아주고 대기실로 들여보냈다.
곧이어 시작된 공연.
춤추고, 연극하고, 노래하고, 아파서 그랬는지 자주 나타나진 않았지만 내 아이만 보이는 신비한 망원경을 쓰고 감동적인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약 2시간 후 모든 공연이 끝났고, 사탕이며 인형이며 별시럽게 화려한 꽃다발을 꺼내 아이에게 다가갔다.
"아픈 와중에도 그렇게 열심히 하다니 정말 멋져!"
"응! 입원해서 괜찮았어!"
...?
"응?"
그게 무슨 말이지? 입원을 해서 잘 쉬었으니 공연을 더 잘했다는 뜻인가? 아픈만큼 성숙했다고 자조하는 것인가?
나는 그 말의 뜻을 며칠이 지나서야 알았다.
아이는 입원이 뭔지 몰라 '2번'이라고 들었고, 그 2번은 공연을 두 번째까지만 나갈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했다는 것을.
그래서 너무 하기 싫은 공연이었지만,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할 수 있었다는 것을. "입원해서 공연 못하겠다"는 엄마의 말을 2번만 할 거면 하지 말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엄마 나는 그렇지 않아. 2번만 할 거면 잘할 수 있으니 2번이라도 할게. 라는 마음을 분명히 전달했다는 것을.
은별이의 일기
0월0일
병원에 갔다.
의사선생님은 내가 기침을 많이 해서 2번을 해야 한다고 했다.
내가 아프니까 공연에서 2번만 해야 하는구나.
공연을 너무 하기 싫었지만, 2번만 한다면 조금은 괜찮을 것 같다.
0월 0일
큰 병원에서 며칠 동안 살게 됐다.
엄마는 내가 2번을 하는 게 실망스러운 것 같다. 내가 2번을 하게 됐다고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한숨 쉬는 걸 들었다.
엄마는 2번을 해야 되니 공연을 아예 하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그 정도라도 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담임선생님께서도 나는 2번이니까 조금만 나가도 된다고 하셨다.
0월 0일
드디어 공연을 했다.
나는 전혀 떨리지 않았다. 2번만 하면 되니까!
그래서 자신있게 할 수 있었다. 2번은 참 좋다.
하지만 언젠가는 1번부터 다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고등학생이 된 은별이는 요즘 학교 홍보단 활동 때문에 관내 중학교로 외근(?)을 다니고 있다. 배정받은 반에 홀로 들어가 후배들에게 고교생활을 알려주고 진로 탐색의 팁을 전수해준다. 더이상 1번의 부담도 없고, 2번의 홀가분함도 없다. 그저 자신이 정한 길을 차근차근, 묵묵히 걸어갈 뿐이다.
7살 은별이가 느꼈던 삶의 무게가 그다지도 무거웠단들 또 어떠한가. 2번이 주는 가벼움마저 극복해야했던 그 아이 나름의 최선은 그 날 이후로도 계속됐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다져진 단단함으로 앞으로의 길 또한 지어가겠지. 10년 전 2번으로서 꾸었던 꿈, 그 작은 씨앗이 천천히 발아해 기어이 움튼 그녀의 찬란한 발걸음을, 나는 오늘도 열렬히 응원하고 또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