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연구생 11수 했던 이야기

도전과 좌절 그 사이에서

by 김용희

일본은 연구생이라는 제도가 있다.

대학원에 입학하기 전, 학부 수업을 청강하고 연구 세미나에 참여하며 대학원생이 되기 위한 자질을 기르기 위한 과정이다.


사실 말은 저렇게 하지만, 까놓고 보면 대학원 입시 준비하는 과정이다.

외국인 유학생의 경우 대학원 입시 준비와 더불어 일본 문화에 적응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이 활용한다.


나는 학부 전공이 일어일문학이었기 때문에 심리대학원을 가기 위해서 연구생 과정이 거의 필수였다.

4학년의 1학기의 한 달이 지난 4월에서야 연구생이라는 존재를 알게 되었다.


연구생 가는 방법은 간단하다.

일본 교수님이 나를 연구생으로 받아준다는 승낙만 해주시면 된다.


연구생을 너무 가고 싶어 여러 블로그를 봤다.

많은 사람들은 한국 지도교수가 일본 교수에게 연락해 추천을 받아 다이렉트로 연구생을 갔다.


나는 아무런 빽이 없었기 때문에 모든 과정을 혼자 해야 했다.

연구생을 가기 위해 일본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연구계획서를 준비했다. 당시엔 ChatGPT도 없어서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야심 차게 준비를 하고 나서 5월 무렵 바로 일본 교수님께 메일을 드렸다.

돌아온 대답은 "저희 연구실은 외국인 유학생을 받지 않습니다. 죄송합니다"였다.


많이 아쉬웠지만 메일 드릴 교수님은 몇 분 더 계셨기에 계속 도전해 보기로 했다.

다음에 메일 드린 교수님은 호의적이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몇 번 메일 왔다 갔다 한 이후 답장이 오지 않으셨다.


교육심리학 수업을 들으며 '정체성'에 관심이 생겼다.

그래서 이젠 정체성 연구하시는 교수님에게도 메일을 드렸다.

거절당했다.

마음이 조급해져서 심리학 교수님들에게 무차별 난사하듯이 메일을 보냈다.

모두 거절당했다.


9~10월 무렵.

일본에서 정체성 연구로 유명한 교수님께 메일을 드렸다.

며칠 후, 자신의 연구실에 와보라는 메일을 받았다.

'이젠 드디어 됐구나'라는 기대를 한껏 안고 바로 일본으로 건너갔다.


약 한 시간 동안 면담을 했다.

그분께서는 내가 일본에서 학부를 다닌 것으로 알고 계셨다.

동명의 학교가 일본에도 그것도 그 학교 근처에 있었던 것이다.

난 분명 메일 주소에 '한국 OO대학교'라고 적었는데.


그러나 가장 내 가슴을 후벼 팠던 건,

내 일본어 실력이 네이티브가 안 되기 때문에 연구생으로는 못 받겠다는 것이었다.


교수님은 임상심리학 연구실 소속이셨는데, 일본의 임상심리학은 우리나라의 상담심리와 임상심리를 통합한 느낌이 강했다. 자신의 연구실에 오려면 일본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고 공감할 수 있을 정도의 '원어민' 실력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면담은 끝이 났다.

신칸센을 타고 공항으로 오면서 눈물이 났다.

여러 수업을 제끼고 간 것이었는데.

교과목 교수님들께 자신만만하게 일본 연구생 승낙받으러 간다고 말했었는데.

아무것도 얻지 못한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부모님에게도 죄송스러웠다.

나는 도대체 왜 비행기를 타고 일본까지 왔던 걸까.


너무 절망했던 나머지 부모님께는 대학원 준비를 그만한다고 했다.


대학원 진학 중단 선언을 한 후 일주일 지났을 무렵.

부모님께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해보고 안 되면 포기한다고 말씀드렸다.


일본까지 건너간 그 학교의 다른 연구실에는 정체성을 연구하시는 교수님이 한 분 더 계셨다.


교수님께 메일 드린 후 얼마 있지 않아 메일을 받았다.

'왜 우리 연구실에 오고 싶나요?'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솔직하게 '임상심리 연구실에 지원했지만 연구생 승낙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정체성을 꼭 연구하고 싶습니다'라고 적었다.


며칠 후, 연구생 승낙을 받았다.

이때가 12월이었다.


5월부터 12월까지 장장 7개월 동안 10명의 교수님들께 연구생 거절을 받았다.

도전과 좌절의 연속이었다.


종종 그때를 추억한다.

당시엔 너무나 처절했다.


어쩌면 삶이 재밌는 건, 우리가 이러한 짧은 드라마 같은 경험들을 할 수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사실 나뿐만 아니라 이 글을 읽는 많은 사람들은 좌절 속에서도 빛을 향해 걸어간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나'라는 사람의 한계의 역치를 올리는 것 같다.

더 많은 도전을 위한 기반이 되어 열정을 발휘하는 힘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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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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