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비꽃 Sep 26. 2022

여우는 파괴자인가

<여우>, 마거릿 와일드 , 파랑새어린이(2012)





마거릿 와일드의 그림책 <여우>는 개, 까치, 여우 이렇게 세 인물이 등장한다. 까맣게 탄 숲을 배경으로 각자 크고 작은 상처를 가진 세 인물들은 만남과 헤어짐을 겪는다. 그림책 <여우>는 짧은 내용 안에서 상처와 위로, 연대와 우정, 환대와 경계, 질투와 광기, 유혹과 배신, 후회와 희망을 보여준다. 나는 짧은 글 안에 이 많은 것들을 담아냈다는 것에 작가에게 질투가 났다. 동시에 경이와 존경과 사랑의 감정이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작가가 그림책에 담아낸 이 복합적인 감정들은  드러나지 않을지 몰라도 인간의 만남과 헤어짐 속에 다 담겨있지 않을까. 아주 찰나의 만남과 헤어짐일지라도 말이다.



까맣게 타버린 숲에서 개는 날개를 다친 까치를 발견한다. 한쪽 눈을 다친 개는 절망에 빠진 까치를 간호해 주었고, 둘은 서로의 다리와 눈이 되어 준다. 그러던 어느 날 “너희가 특별해 보인다.”며 그들 사이에 여우가 나타난다. 까치는 여우가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애라며 경계하고 개는 여우는 착한 아이라며 그들 사이에 여우를 받아들인다. 개가 잠든 새벽, 여우는 까치에게 나는 것처럼 달릴 수 있다며 자신의 등에 타고 붉은 사막을 달리자고 제안한다. 까치는 자신은 개와 하나라며 거절한다. 그러나 결국 여우의 등에 타고 사막을 달렸고 사막한 가운데에서 여우에게 버림받는다. 여우는 까치를 등에서 떨구며 “이제 너와 개는 외로움이 뭔지 알게 될 거야.”라는 말을 남긴다.



한 서평에서 개를 구원자, 여우를 파괴자라고 표현했다. 멈칫했다. 여우는 과연 파괴자일까.

결과적으로 개와 까치의 사이를 갈라놓았으니 여우는 파괴자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여우가 처음부터 파괴의 목적을 가지고 개와 까치에게 접근했냐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전에 먼저, 그렇다면 개는 구원자인가. 개는 절망에 빠진 까치를 위로했고 서로의 결핍을 채우며 연대했다. 까치에게 존재의 가치를 일깨워주었고, 까치와 우정과 사랑의 감정을 나눴다.


그러나 까치가 새로운 존재에게도 마음을 열만큼의 충분히 안정적인 사랑을 주진 못했다. 물론 개의 사랑에 문제제기를 하기보다는 까치가 완전한 관계의 경험이 부재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까치는 여우에 등에 올라타는 것만으로 그것이 개에 대한 배신이라고 생각했다. 과연 개도 같은 생각이었을까. 여우 등에서 벼룩처럼 바닥에 내팽겨진 까치는 개를 떠올렸다. 다쳐서 움직일 수 없다고 믿었던 까치는 날개를 움직이는 길을 떠난다. 작가는 이 장면에서 까치의 첫 관계 맺음이 얼마나 완전했는지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개는 까치에게는 구원자가 맞다.


그러나 여우에게 개는 구원자인가.


여우가 “너희는 참 특별해 보여.”라며 다가왔을 때, 까치는 경계했고 개에게 충고했다. 개는 까치의 말에 충분히 귀 기울이거나, 까치를 설득하는 과정 없이 단독적으로 여우를 그들의 공간에 들어오게 했다. 그러나 그것뿐 그 이상은 없었다. 까치가 여우를 경계하며 불안해하는 것을 알면서도 둘의 관계를 개선하려고 노력하지 않았고, 여우의 융화를 돕는 어떠한 후속 행동도 하지 않았다. 만약에 개가 지속적으로 여우를 환대하며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여우는 까치를 공략하기보다 개를 공략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에게 존재에 무관심한 개보다는 자신의 존재를 어떤 식으로라도 의식하는 까치가 공략하기 쉬운 대상이었을 것이다. 여우가 그들 사이에 포함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까치가 원하는 기쁨을 주려고 했다고 생각한다. ‘나도 너의 결핍을 채워줄 수 있어.’ 그것은 개와 닮은 연대의 제스처였다.



나는 개와 까치가 여우를 파괴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내민 손을 유혹이라고 여기는 까치 앞에서 여우가 어찌 파괴되지 않을 수 있을까. 손을 뻗어 자신의 공간에 들어오라고 해놓고서 손을 잡은 존재를 무시하는 것보다 어떻게 상대를 더 파괴할 수 있을까.


노력이 수반되지 않는 선의는 상대를 파괴하기도 한다.

우리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에 구원자이며 동시에 파괴자였을지도 모른다.








http://www.yes24.com/Product/Goods/7335111


작가의 이전글 우리는 만나야 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