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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언 Aug 28. 2023

서사적 작품의 영화화에서 제기되는 몇 가지 문제

조선영화 1960.3.


서사적 작품의 영화화에서 제기되는 몇 가지 문제

-예술영화 《땅》에 대하여-


리상태


리기영 원작, 리득홍 씨나리오, 전동민 연출로 된 조선예술영화 《땅》(1959년 작)은 서사적 작품을 영화화하는데서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

이 영화의 창조 집단은 장편 소설과 같은 대 형식의 서사적 작품을 각색하고 연출하는데서 제기되는 일련의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함으로써 원작의 내용을 비교적 간결하고 함축성 있게 영사막 우에 재현할 수 있었다. 이 영화에는 해방후 우리 당의 령도하에 전변되는 농총 현실, 즉 토지개혁을 전후하여 농촌에서 버러지는 거대한 세기적 사변들이 심각한 계급투쟁 가운데서 표현디였으며 온갖 낡은 사회적 질곡을 헌신짝처럼 벗어 던지고 새시대의 주인공으로 자라나는 곽바위를 비롯한 근로 농민들의 생활 창조의 거대한 위력을 진실하게 형상화하였다.

특히 예술영화 《땅》에서는 토지 개혁을 전후한 시기의 농촌에서 버러진 계급투쟁의 면모를 심각하게 반영하면서 적들의 그 어떠한 발악도 당의 령도를 받들고 전진하는 인민의 힘, 력사의 흐름을 조금도 막을 수 없다는 사상을 강조하고 있다.

그릭하여 이 영화는 관중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무엇보다도 이 영화가 해방후 농촌 현실을 심오하고도 생동하게 반영하여 독자들의 이목을 끌고 있는 장편 소설 《땅》의 기본 내용을 씨나리오 작가, 연출가, 연기자들을 비롯한 전 창조 집단이 비교적 훌륭하게 영화화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술영화 《땅》을 서사적 작품을 영화화 함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농촌 생활을 주제로 하는 영화의 창조에 있어서 적지 않은 기여를 하였다고 평가될 수 있다.

이렇듯 예술 영화 《땅》은 많은 우’점들을 가지고 있는 성과작이기는 하지만 일련의 결함도 가지고 있으며 나아가서는 서사적 작품의 영화화 (특히는 각색과 연출)에서 제기되는 몇 가지 론쟁적 문제들도 내포하고 있다.


Ⅰ 씨나리오와 연출에 대하여


서사적 작품의 각색과 연출에서 주의를 집중시켜야 할 문제는 우선 원작의 주제와 기본 갈등을 뚜렷이 나타내는 것이다. 이는 비록 사사적 작품의 영화화에서 제기되는 문제일 뿐만 아니라 영화의 창조를 위한 각색과 연출에도 공통적으로 제기되는 문제이다.

각색과 연출에서 원작의 주제와 기본 갈등을 뚜렷이 나타내는 것은 서사적 작품의 복잡한 내용을 압축하여 극적 방식으로 표현함에 있어서 큰 의의를 가진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현실을 극적 방식으로 표현하는 예술인 영화는 서사적 방식으로 현실을 표현하는 소설에서와 같이 작가의 이야기와 등장 인물들의 대화를 결합하면서 현실 반영의 모든 가능성을 다 자유롭게 리용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영화의 묘사 방식은 서사적 방식에 비하여 자기의 일정한 제한성을 가지고 있기는 하나, 그것은 현실 반영의 집중성, 극적 예리성으로 인하여 다른 방식이 달성하지 못하는 그런 성과를 달성함으로써 자기의 독특한 예술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견지에서 보면 장편 소설이 연극이나 영화를 대신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연극이나 영화도 역시 장편 소설을 대신할 수 없다. 

그러므로 서사적 작품의 각색과 연출은 일종의 창조 과정이다. 그러나 이 창조 과정은 어디까지나 원작의 내용을 자기의 특수한 방식 속에 심각하게 그리고 집중적으로 반영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더욱이 이 창조 과정이 하나의 창조 집단에 의하여 수행되는 경우에는 전체 창조 성원들이 원작의 주제, 즉 그 작품에서 내용의 모든 다양성을 통일 조직하는 기본 빠포스를 심오하게 채득해야 한다.

물론 이것은 일반적 요구로 제기되는 문제는 결코 아니다. 왜냐 하면 서사적 작품 영화에서 기본 주제와 기본 갈등을 뚜렷이 표명한다는 것은 원작의 사상적 내용을 단순히 살리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원작을 극적 방식으로 재 창조하는 그의 성과를 규정해 주는데 선결적 의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땅》과 같은 대 형식의 장편 소설을 각색하면서 그 내용의 모든 복잡한 다양성을 다 화면 우에 표현할 수는 없다. 이러한 경우에 중요한 것은 작품의 기본 사상적 내용을 전면적으로 예리화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는 것은 의심할 바 없다.

예술영화 《땅》은 서사적 작품의 영화화에서 중요하게 제기되는 이러한 요구에 엄밀히 립각할 것을 잊지 않고 있다. 그리하여 이 영화는 해방 후 토지 개혁을 비롯한 제반 민주 개혁의 결과 급속히 전변되는 농촌 현시를 반영하면서 이 투쟁 속에서 갱생 발전하는 새로운 인간의 운명과 그들의 아름다운 정신 세계와 생활 창조를 위한 투쟁을 보여 줄 수 있었다. 

사실, 해방후 전변되는 농촌에서 갱생 발전하는 새로운 인간들의 운명과 그들의 생활 창조적 투쟁을 보여 주려는 것 – 바로 이것이 《땅》이 제기한 기본 문제이다. 때문에 《땅》의 주제를 정식화하면 해방후 농촌에서 새 인간에로의 갱생과 그들의 운명 및 그들의 생활 창조적 투쟁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 하면 바로 이 문제를 중심으로 모든 사건과 디테일이 집중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작가의 전 빠포스가 새 인간에로의 갱생과 그의 정신 세계에 대한 해명에, 그들의 생활 창조의 미에 대한 진지한 탐구에 충만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술영화 《땅》의 씨나리오 작가와 연출가는 원작의 이러한 사상 주제적 기초를 옳게 표현하기 위하여 기본 갈등을 보다 예리화하려고 적지 않은 시도를 하였다. 즉 기관구 로동자의 등장, 곽바위를 모해하려는 사건의 로골화, 고병상의 악랄성을 강조한 것, 윤상렬의 반동적 정체를 정면에 내세운 것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시도들이 항상 원작의 풍부한 사상 예술적 가치를 밝힘에 성공적으로 이바지하였다고는 말할 수 없다. 씨나리오 작가에 의하여 새로운 시도들이 제기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관중들에게 충분히 리해시킬 만한 생활적 진실의 부족, 원작의 기본 갈등과 기본 복선의 성격에 대한 심중한 연구의 부족으로 인하여 소기의 성과를 거둘수 없었으며, 때로는 갈등의 예리화가 오히려 내용을 단순화하는 결과까지 초래시켰다. (곽바위와 고병상 간의 성격 충돌을 예리화하는 것은 좋았으나 기본 복선인 순이 어머니에 대한 문제는 매우 피상적으로 취급하였다.)

우리가 다 알 고 있는 바와 같이 《땅》의 기본 갈등은 고병상과 주태로를 일방으로 한 농촌 착취자들과 곽바위, 강균, 박첨지 등을 비롯한 긍정적 세력과의 대립과 충돌이다. 이러한 갈등을 통해서 《땅》에서는 해방 전에 일제와 야합한 지주와 고리대금업자들이 얼마나 농민들을 가혹하게 그리고 야수적으로 착취하고 략탈하였는가를 보여 주고 있으며, 해방과 토지 개혁에 의해서 이런 추악한 인간 쓰레기들이 우리의 력사 무대에서 영원히 물러가는 마지막 과정을 심각한 계급 투쟁 속에서 표현하고 있다. 특히 이 투쟁 가운데 긍정적 세력의 전면적인 발전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문학의 생활 긍정적 힘을 잘 표현하고 있다.

그러면 예술 영화 《땅》에서 이 기본 갈등을 극적 갈등으로 일관시키기 위하여 갈등의 이러저러한 측면들을 어떻게 예리화하고 있는가를 보자.

우선 들어야 할 것은 벌 마을 토지 개혁을 협조하기 위하여 파견된 기관구 로동자의 형상이다. 기관구 로동자의 출현은 비단 갈등을 예리화하는 데만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토지 개혁 당시 우리 당이 취한 조치의 정당성을 전면적으로 반영하며, 당시 현실의 본질적 특징들을 두두러지게 반영하는 데 큰 의의를 가지고 있다.

당은 벌 마을 토지 개혁을 정치적으로 방조하기 위하여 기관구 로동자를 파견한다. 기관구 로동자는 토지 개혁을 실무적으로 방조하는 인간으로가 아니라 로동 계급의 정치적 령도를 보장하며, 반동의 간교한 진공을 결단성 있게 물리치면서 농민들과의 튼튼한 련계 밑에 당이 의도하는 방향으로 토지 개혁을 원칙성 있게 추진시키는 인간으로 형상화 되었다. 때문에 기관구 로동자의 형상은 수백년간 대에 대를 이어 전승되여 오던 봉건적 토지 관계를 혁명적으로 개혁하는 농민들의 심각한 계급 투쟁에서 과언 어느 계급이 정치적 동맹자인가 하는 것을 해명하는데 큰 의의를 가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관구 로동자는 농민들과의 깊은 생활적 련계 속에서 형상화되지 못하였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영화는 많은 경우에 토지 개혁 당시 로동 계급이 놀아야 할 정치적이며 혁명적인 역할을 연설장과 회의장에서 연설하는 것으로 단순화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토지 개혁과 같은 어려운 투쟁을 전개할 때에 농민들이 가장 힘들어하고 가장 아파하는 점을 그가 어떻게 혁명적으로 방조하는가 하는 점들이 실지 생활적 화폭으로 나타났어야 할 것이다. 때문에 기관구 로동자의 형상은 갈등을 예리화하며 당시의 사회적 본질을 보다 심각히 천명하는 데 중요한 의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형상이 단순화되고 연기의 생활적 진실성이 부족함으로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다음으로 극적 갈등의 예리화와 관련하여 지적할 것은 윤상렬의 반동적 행위를 정면에서 표현하고 있는 점이며 고병상의 악랄성을 강조하고 있는 점이다. 그 결과 고병상의 손에는 다이나마이트가 쥐여지며, 현물세 야적장에는 불이 일고, 야장’간은 폭발되고, 곽바위는 피투성이가 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화면들을 보면서 무엇인가 어색한 것을 느끼게 되며 무엇인가 인위적으로 강조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것은 원작에 없는 사건들이 화면에 나타나고 있다는 의미에서가 결코 아니다. 더욱이 장편 소설과 같은 대 형식의 서사적 작품을 영화화한 경우에 원작의 성격, 사건, 디테일과 기계적으로 비교하는 방식으로 그의 사상 예술적 가치를 평가할수 없다는 것도 명백하다. 각색자와 연출가는 원작의 기본 사상, 작가의 기본 의도를 뚜렷히 표현할 목적으로 자기의 창조적 상상력에 의하여 영화 예술의 법칙에 직접적으로 합치되지 않는 그런 사건이나 디테일 등을 삭제할 수 있으며, 때로는 원작의 기본 사상을 화면 우에서 보다 뚜렷히 살리기 위하여 새로운 인물을 등장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때문에 각색자로서의 씨나리오 작가와 연출가는 서사적 작품을 영화화함에 필요한 이러한 가능성을 리용하여 원작의 기본 사상적 내용을 화면 우리에 뚜렷히 형상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화의 사건과 성격 및 디테일까지를 원작과 기계적으로 비교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씨나리오 작가와 연출가에 의하여 삭제 혹은 첨가된 것이 얼마나 원작의 사상적 내용을 밝히는데 복무하고 있으며, 얼마나 생활적 설득성을 가지고 관중들을 공감시켰는가에 있다. 물론 고병상과 같은 인간이 최후 발악을 할 때는 현물세 야적장에 불을 지를 뿐만 아니라 야장’간을 폭파시킬 수 있다. 그렇게 되니 곽바위도 피투성이가 될 수 밖에 … 얼핏 보기엔 이러한 사건들은 갈등을 예리화하는 데 긍정적으로 기여한 것 같다. 그러나 생활적 론리의 결핍은 그러한 사건이 발생도리 수 있는 내면적 련계를 보여 주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요란히 울리는 폭음과 하늘을 뒤덮는 연기는 관중들의 심금을 울려 주지 못하고 있다.

서사적 작품을 영화화함에 있어서 갈등을 예리화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땅》에서와 같이 영화 예술의 요구에 따라 작가와 연출가는 필요하다면 성격과 사건을 첨가 혹은 삭제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데까지나 첨가 혹은 삭제될 수 있는 충분한 생활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 만약 그것이 생활적 론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각색자와 연출가의 주관적 의도에만 의거한다면 원작의 내용을 살리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원작의 풍부한 사상적 내용을 단순화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다음으로는 이 영화의 구성상 문제에 대해서도 론의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이 영화에서는 사건 진행, 인물 설정, 디테일의 배렬 등이 토지 개혁을 중심 사건으로 하면서 해방 전후의 농촌에서 버러진 시대적 전변을 심각한 계급 투쟁 속에서 보여 주려는 목적에 비교적 원만히 적응되였다고 일반적으로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일반적인 성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는 일정한 결함들이 존재한다. 그것은 한 마디로 말하면 구성이 순탄하지 못한 점이다. 이 결함의 중요한 원인은 원작의 복잡한 내용을 많이 보여 주려는 각색자의 《열성》의 후’과가 아닌가 한다. 왜냐하면 씨나리오 작가는 곽바위와 고병상과의 갈등을 예리화하며 그를 이 영화의 중심 사건으로 관철시킬 것을 잊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많은 복잡한 사건들을 보여주려고 하니 자연히 영화는 길어져 전후편으로 만들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으며, 기본 사건은 내면적 련계를 유지하면서 관철될 수 없게 되었다.

윤상렬의 정체를 들어내놓는 것도, 동수와 순이의 애정 관계, 금옥을 사이에 둔 동운, 쾌동이의 삼각 관계도… 다 필요하지만 보다 중요하게는 곽바위, 강균, 전순옥, 고병상, 주태로 등을 중심으로 하여 버러지는 사건에 집중되였어야 할 것이다. 물론 영화는 연극에 비하여 시간적 및 공간적 제약을 덜 받으나 현실 반영의 일반적 원칙을 극적 방식에 의거하느니 만큼 묘사의 집중성, 갈등의 예리화를 조금도 소홀히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 영화에서도 곽바위와 고병상 사이에 빚어진 성격 충돌을 내용으로 하는 기본 갈등을 보다 선명하게 관철시키는데 중점을 두었어야 할 것이다.

사실 곽바위와 고병상에 의하여 빚어진 《땅》의 기본 갈등은 심각한 사회 력사적 성격을 띠고 있다. 곽박위는 과거 벌 마을 한 마름의 이름 없는 머슴이였으며 고병상은 바로 그를 부리는 상전이였다. 해방과 토지개혁은 머슴인 곽바위와 상전인 고병상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혁하여 나라의 주인이며 땅의 주인인 곽박위와 인민의 저주를 받는 보잘 것 없는 인간인 고병상으로 전화시켰다. 바로 여기에 《땅》의 기본 갈등이 기초하고 있는 생활적 토대가 있는 바 곽바위와 고병상의 성격 충돌은 당시 현실의 가장 심각한 계급적 모순의 반영이다. 고병상은 이 시기 사회 계급저 꽌계로 보아 적대적 관계에 놓여 있는 인간임에 틀림 없으나 당장 청산될 대상(축출 지주)은 아니였다. 그러나 그가 인민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본성을 버리지 않고 그를 계속 유지하려고 발악할 때 그는 인민의 손에 의하여 청산되지 않을 수 없는 계급의 운명을 지니고 있다. 그리하여 《땅》에서는 고병상이가 속한 계급의 반동적 분석을 예리화하며 곽박위를 비롯한 긍정적 세력의 급격한 발전을 그에 직접적으로 대립시킴으로써 갈등은 더욱 극적 성격을 띠게 되었다. 더욱이 순이 어머니의 등장은 이 극적 갈등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응정적 세력과 부정적 세력 사이에서 동요하는 인간의 운명 – 그는 점차 과연 어느 편에 속한 인간으로 발전할 것인가? 이 문제는 《땅》의 가장 중요한 복선이다.

때문에 영화 《땅》에서도 사건 발전이 보다 순탄하게 되려면 곽바위와 고병상의 성격 충돌로 표현되는 기본 갈등과 이 사이에 삽입된 순이 어머니의 운명 문제와 같은 기본 복선을 이여의 다른 사건과 디테일과의 련관 속에서 중심적으로 구현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원작의 기본 복선인 순이 어머니에 대한 문제는 극히 피상적으로 형상되였을 뿐만 아니라 심각한 계급 투 쟁 당시에 동요하는 인간으로부터 갱생하는 인간으로 발전하는 문제는 거의 시도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큰 것을 놓쳐 버리고 작은 것을 이것 저것 결합하다나니 구성은 자연히 산만해 질 수 밖에 없으며, 주인공들의 성격 발전도 일목 료연하게 표현될 수 없는 것이다. 이 영화의 기본 주인공인 곽바위의 성격 발전 과정이 충분히 설득력 있게 해명되지 못한 것도 이러한 구성상 산만성과도 련관되여 있다고 생각한다.    


Ⅱ 연기 형상에 대하여


예술 영화 《땅》에서 배우의 연기 형상은 생동성과 진실성으로 하여 관중들을 적지 않게 공감시키고 있다. 적지 않은 인물들의 형상에서 찾아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성격의 명확성과 생동성은 이 영화의 창조에 있어서 연출고 연기 형상에서의 중요한 성과를 말해 주고 있다. 곽바위와 고병상의 형상은 매우 생동하며 박첨지, 조대모를 비롯한 벌마을 농민들의 형상은 이 영화의 생활적 진실성을 살리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곽바위(전두영 분)의 연기 형상은 무엇보다도 개성적이다. 연기자는 곽바위의 근면하고 강직하며 굳센 그의 성격적 특징을 선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이 영화는 가난과 모진 인간적 멸시와 학대 속에서 시달리며 힘겨운 로동을 이겨 내는 투쟁 가운데서 형성된 곽바위의 사상 감정과 그리고 해방과 토지개혁으로 인하여 새로운 인간으로 갱생하는 그의 발전 과정을 대조적으로 형상함으로써 시대의 발전과 인간 장성의 력사를 변증법적 통일성 속에서 유기적으로 결합시키고 있다. 곽바위는 토지 개혁을 꿈인양 남달리 기뻐하며, 솔버덩 개간 공사를 비롯한 창조적 로력투쟁에 남다른 적극성을 발휘하고 있다. 영화는 이러한 사실을 비교적 진실하게 형상하였다. 곽바위의 반생에 있었던 모든 쓰라린 비극은 한 마디로 말하여 땅이 없는 탓이였다. 땅 때문에 아버지가 죽었으며 땅 때문에 하나 밖에 없는 누이 동생이 죽었으며, 땅이 없는 탓으로 이 모든 비극을 참고 십여년의 머슴살이를 하였다. 이 모든 불행의 화근을 일조에 제거해 버리는 땅이 곽바위의 품에도 안기였다. 토지 소유 증명서를 받고 이 모든 슬픔과 기쁨을 동시에 느끼면서 벌판으로 걸어가는 곽바위의 연기 형상은 감동적이다. 

영화의 전편에서 곽바위의 연기 형상은 비교적 자기의 생활적 론리에 의하여 진실하나 후편에서는 매우 단순화되고 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곽바위의 연기 형상에서의 중요한 결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곽바위의 연기 형상에서 중요한 결함은 그의 성격적 특징을 일면적으로 단순화하고 있는 점이며, 해방 후 그의 장성 발전 과정을 성격 발전의 내면적 련계 속에서 해명하고 있지 못한 점이다. 

본래 곽바위는 근면하고 강직하며 성실할뿐만 아니라 강력한 리지적 힘을 소유하고 있다. 그는 고된 머슴살이를 하면서도 자기 육신의 힘을 믿고 부모를 모시고 누이 동생과 한 자라에 모여 잘 사라야 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살았으며, 사랑하는 모든 것이 희생되였어도 이 슬픔과 분노를 이겨냈으며 헤아릴 수 없는 가난과 고욕을 참아내였다. 이 처참한 싸움 속에서 시련된 곽바위에게는 누구도 꺾을 수 없는 리지의 힘이 있었으며, 난관을 인내성 있게 극복해 나갈 수 있는 자제력과 용감성이 있다. 바로 이것이 곽바위의 정신세계의 기본 특징이며 그가 해방 후 생활 창조를 위한 투쟁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투사의 깊은 뿌리다. 이 뿌리를 잘 보여 주지 못한다면, 즉 해방후 우리 시대의 적극적인 주인공으로 발전될 수 있는 요소들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그의 성격발전을 내면적 련계 속에서 리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형상의 진실성도 상실될 수 밖에 없다. 곽바위의 연기 형상에서는 새 시대의 적극적 주인공의 맹아인 완강한 리지적 힘이 거의 무시되고 있다. 심지어 곽바위의 근면성과 소박성을 일면적으로 강조한 나머지 때로는 정신적이며 리지적 힘이 없는 사람처럼 나타나고 있다. 이는 곽바위의 형상을 단순화한 중요한 결함의 하나이다. 

이와 같이 곽바위의 연기 형상에서는 그가 과거에 고병상의 머슴살이를 하면서 학대와 멸시를 받고 헤아릴수 없는 고통과 불행을 이겨 낼 때 그 고통과 불행, 슬픔과 분노 속에서 무엇이 싹트고 있었으며 미래의 적극적인 주인공으로 될 수 있는 씨앗이 어떻게 준비되고 있었는가를 놓쳐 버림으로써 그 후의 인간 장성은 선언적으로 대치될 수 밖에 없었다. 곽바위가 솔버덩 개간 공사의 선두에 서고 두레를 조직하고 쇠써레를 창안하며, 적들에 의하여 야장’간이 폭발되였을 때에는 대중들 앞에서 일장 연설을 하며, 나중에는 도인민회의 대의원으로까지 발전하는 장면들이(감격적인) 번갈아 관중들의 눈 앞에 나타나나 어찌하여 그렇게 되는지 그 생활적 진실성을 리해하기는 매우 어렵다. 혹독하게 말하면 후편에서의 곽바위의 연기 형상은 고용살이를 하다가 토지의 주인이 되었으니 이제는 응당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식으로 관중들에게 요구하고 있다고 느껴진다. 아무리 감격적인 화면들이라도 그 감격적인 사건의 창조자인 인간의 정신 세계의 산물로써, 특히는 그의 성격 발전의 합법칙적 론리의 결과로 나타나지 못하면 그것은 죽은 장면으로 되고 말 것은 뻔한 일이다. 

곽바위의 연기 형상은 일정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결함들도 내포하고 있는 바, 그 원인은 우선 각색에서 곽바위의 성격 발전이 알 수 없게 단순화(감격적인 사실을 몇 개의 화면으로 단순히 조립한 것)되고 이여의 복잡한 사실이 조잡하게 제시된 데 있으며, 연출가와 연기자 자신이 곽바위(원작)의 사상 감정과 정신 세계를 심오하게 체득하지 못한 데 있다. 특히 서사적 작품을 각색하여 연출 연기하는 경우에는 무엇보다도 창조 집단 전체가 원작의 사상 예술적 의의를 심오하게 연구해야 할 뿐만 아니라 연기자 자신이 자기가 맡은 인물의 사상 감정을 진실하게 구현하기 위하여 그의 사상으로부터 시작해서 언어, 행동, 외형, 습관적인 제스츄어에 이르기까지 연구하고 체험해야 할 것이다. 

곽바위의 연기 형상에서 이상과 같은 결함은 그의 성격 발전에 직접적으로 관계되는 인물인 당적 인간으로서의 강균의 형상과그리고 전순옥의 형상이 살아나지 못한 데도 원인이 있다.

고병상(황민 분)을 비롯한 부정적 인물들인 주태로(남승민 분), 윤상렬(허백산 분) 등의 연기 형상은 아주 생동하게 개성화되였다. 고병상은 잃은 토지를 다시 찾기 위하여 몸부림치는 추악하고 교활한 인간으로, 주태로는 낡은 것, 착취제도를 고집하면서도 시대적 전변에 겁을 먹은 보수적인 인간으로, 윤상렬은 이 모든 추악한 인간을 조정하는 자로 각각 형상화 되였다. 연기자들은 이러한 인간의 사상 감정을 구체적인 정황 속에서 비교적 진실하게 표현하였다.

고병상의 연기 형상에서는 그의 탐욕적이며 간악하며 비렬한 성격적 특징을 선명하게 개성적으로 구현하고 있는 바 시대의 전변과 긍정적 세력의 급속한 발전에 따라 그의 반동적 본질이 어떻게 다양한 형태로 로골화되는가를 내면적 련계 속에서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는 고병상의 연기 형상이 성공한 주요한 원인의 하나이다.

고병상은 해방 전부터 대 목재상이며 부호인 윤상렬의 비호 하에 벌 마을 토지를 자기 소유로 만든 소지주이며 마름이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 하에서 처세술에 민감했을 뿐만 아니라 《돈의 비밀》을 안 략탈자이다. 그는 박첨지 부자가 황무지에 옥수수 몇 포기를 심은 것조차 자기 것이라고 몽땅 빼앗아 내는 그런 간악한 략탈자이다. 해방이 되자 인민들이 들끓어 일어나는 선풍에 무엇인가 잃어 버린 듯한 공허감에 사로 잡혔으나 계속 자기의 세력을 유지해 보려고 간고한 술책을 다한다. 3.7제, 그 뒤를 이어 토지 개혁 법령이 발표되자 그는 우선 당황 망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애당초 이 사실을 믿지 않으려고 한들 이 엄연한 사실을 어찌하랴… 현실은 결코 그의 주관적 의도를 조금도 위로해 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고병상은 자기의 잔명을 유지해 보기 위하여 처음에는 공개적으로 진정서를 내는 바법으로 다음에는 《촌장》도 알아보지 않고 개간 공사를 한다고 트집을 잡는 교활한 방법으로, 신풀이 논이 전부 말라 없어지라고 기한제(祈旱祭)를 지내느 방법으로 발악을 한다. 발악은 점차 로골적인 성격을 띤다. 그는 이 모든 발악이 성취지 않으니 윤상렬의 조정하에 현물세 야적장에 불을 지르고 야장’간을 폭발시키다가 결국에는 체포되는 바 연기자는 상술한 과정을 통하여 고병상의 성격 발전을 론리적으로 추구하면서 력사 무대에서 영원히 물러가지 않으면 안될 인간의 운명을 실감있게 보여 주고 있다.

고병상의 형상에서 주요한 성과의 또 하나는 력사 무대에서 영원히 사라지는 착취 계급의 운명의 마지막 과정을 통쾌하게 조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연기자는 원작의 사상을 충분히 살리면서 고병상의 행동이 이제와서는 조소의 대상으로 밖에 되지 않을 수 없는 생활적 진실을 선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가 기한제를 지내는 비렬한 행동이라든가, 솔버덩 개간 공사를 방해해 보려고 다 떨어진 《위신》과 가면을 쓰고 대중들 앞에서 옛날처럼 호통질을 해 보려다가 망신만 당하는 장면을 통하여 우리는 착취 계급의 마지막 세대를 희극적으로 리별할 때가 도래하였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우리에게는 세상에서 사멸되고 있는 현상을 정면으로 폭로 비판하는 방식으로가 아니라 조소해 버리는 것이 더 시원하고 통쾌할 때가 자주 있다. 고병상의 연기 형상에서는 이런 수법들을 적절히 배합함으로써 사멸하는 계급의 운명이 생동하게 나타나게 하였다. 물론 고병상의 형상에서도 그의 반동적 악랄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진실답지 못한 장면들도 간혹 있으나 그것은 성과에 비하면 극히 사말적인 것들이다.

또한 영화 《땅》은 촬영에서 화면이 뚜렷한 것, 음악적 효과가 연기와 잘 배합된 것 등을 지적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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