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영화 이야기 32.
2021년 6월 17일부터 22일까지 6일간 열렸던 평창영화제에서는 작년에 상영하기로 했다가 코로나19의 창궐로 인해 필름을 공급받지 못해 상영이 연기되었던 <모란봉>(1959)이 관객들과 만났다. 이 영화는 1958년 프랑스 좌익 영화인들이 북을 방문해서 북한과 프랑스의 합작으로 만든 것으로 여러모로 흥미롭고 재미있는 영화이다.
프랑스라는 서방국가에서 온 영화인들이 1950년대 북한에서 합작영화를 제작했다는 사실은 그렇게 잘 알려진 이야기는 아니다. 영화는 오랫동안 베일 속에 감춰져 있었고 영화 제작에 참여했던 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할 무렵 이 영화의 존재가 알려지게 되면서 비로소 주목받았기 때문이다.
1957년 프랑스의 좌익 예술인들이 소련과 중국을 방문 후 다음 행선지로 북한을 선택했다. 3년간의 전쟁 후 복구되고 있는 북한은 여전히 미지의 나라였으며 그들의 모습을 필름에 담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었기에 그랬을 것이다.
프랑스 좌익 예술가인 극작가 아르망 가티, 연출가 장 클로드 보나르도는 1958년 5월, 소련을 거쳐 북한을 방문하게 된다. 이들은 미국과 전쟁을 치뤘던 북한에 대해 궁금해하며 미지의 나라인 북한에 대해 소개할 목적으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북한정권에서 이들의 촬영협조 요청에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으면서 걸출한 극영화가 한편 만들어지게 된다. 이 영화가 바로 <모란봉>이다.
영화는 6.25전쟁 직전 개성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한 청년이 전쟁 발발 후 의용군에 입대한다. 그리고 전선으로 나간 그 청년은 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휴전 후에도 남한의 감옥에 수감된다. 창극배우가 된 그의 여자친구는 전쟁 기간 동안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열심히 활동한다. 이를 프랑스에서 온 저널리스트가 목격하게 된다. 프랑스 기자 역으로는 연출가이기도 한 장 클로드 보나르도가 직접 연기했다. 결국 남한에 수감되었던 청년이 휴전선을 넘어 북한으로 오게 되고 여자 친구가 배우로 활동하는 평양 모란봉극장으로 찾아가지만 공연이 없는 극장에는 아무도 없다. 극장에서 나와 대동강 철교를 걷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오는 자신의 연인을 발견하고 극적인 해후를 하게 된다.
이 영화는 <춘향전>을 현대적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아르망 가티를 시나리오 작가 주동인이 도왔고 시나리오 작가이자 연출가로 유명한 주영섭도 함께 작업 했다. 주인공으로는 1950년대 북한 영화계에 새롭게 등장한 젊은 배우들인 엄도선, 원정희가 맡았다. 그 외에 강홍식, 심영 등 북한 영화계의 지도급 배우들과 신우선, 조상선, 신도선 등 북한 국악계의 최고 스타들, 그리고 인민배우 안기옥이 음악을 맡았다. 촬영은 박경원이 맡아 수준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북한과 프랑스의 합작영화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상영에 있어 우여곡절을 겪었다. 북한과 프랑스 간에 아무런 국가 간 교류가 없었기에 이 영화를 상영하기 위해서는 프랑스영화로 등록이 되어야 했다. 그렇게 상영신청을 했으나 영화 속 다큐멘터리 장면들이 문제가 되어 상영금지 처분을 받았다. 1960년 칸영화제에서 상영되었을 뿐 일반 상영은 1964년이 되어서야 가능했다. 하지만 이미 그때는 알제리전쟁과 베트남전쟁으로 한국전쟁은 잊혀진 전쟁이 되었으며 이 영화 역시 잊혀진 영화가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