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주요한 영화 장르 중 하나가 전쟁영화이고, 이영화들은 반미의식을 고취하는 용도로 활용된다. 이러한 류의 영화 중 그 대표작을 하나 꼽는다면 백인준의 희곡을 각색하여 영화로 만든 <최학신의 일가>이다. 이 작품은 세계 원조를 이유로 선교사를 파견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활용하는 모습을 비판적으로 그렸다.
평양 국립극단에서 공연된 "승냥이"
<최학신의 일가>에서처럼 음흉한 미국인의 모습을 빗대어 북한에서는 “승냥이”라고 부른다. 미국을 빗댄 승냥이라는 용어는 1951년 한설야가 쓴 동명의 단편소설에서 따 온 것이다. 이 작품은 연극과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반일운동에 참여한 수길 아버지는 감옥에 갇혀 그곳에서 목숨을 잃게 된다. 수길 아버지가 죽자 동네 미국인 선교사의 아들은 수길을 더욱 업신여기고 지속적으로 괴롭힌다. 어느 날은 그 정도가 심하여 수길은 중상을 당한다. 병원에 가지만 상태가 나아지지 않자 선교사의 아내는 꾀를 내어 함량 높은 전염병 백신을 맞혀 수길이가 백신의 부작용으로 죽었다고 거짓말을 한다. 수길의 어머니는 자식이 죽었다는 말을 믿지 못하고 선교사 부부에게 해명을 요구하지만 선교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총으로 위협하고 경찰을 불러 수길 어머니는 체포된다.
배경이 일제강점기이고 한국전쟁 이야기는 나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반미의식을 고취하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히게 된 이유가 있었다. 우선 북한문단의 최고 권위자인 한설야의 작품이란 점이 첫 번째이다. 배경이 일제강점기이긴 하지만 백신을 과다 투입해 전염병에 걸려 죽게 만드는 설정 같은 건 전시의 상황을 반영한 것이기도 했다. 북한에서는 전쟁 중 미국이 세균탄을 사용해서 많은 사람들이 전염병에 걸려 죽었다고 대외적으로 항의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승냥이」는 이러한 소재를 적절히 활용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래서 항상 앞에서는 웃는 얼굴로 좋은 이야기를 하지만 중요한 순간엔 언제든지 얼굴을 바꿔 잔인하게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승냥이와 같은 미국의 본질을 잘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아 이 작품 발표 이후 미국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승냥이가 굳어지게 되었다.
2001년 리메이크 된 영화 "승냥이"
앞서 언급했듯이 이 작품은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1956년에 북한에서는 이전보다 더 많은 수의 영화를 제작하라는 당의 방침이 정해진다. 우선 문학작품 중에 뛰어난 작품이라 평가받은 작품을 골라 영화로 만든다. 이때 한설야의 작품이 여러 편 선정되었다. 그 중 하나가 <승냥이>였다. 이 작품은 서만일이 각색을 했고, 리석진이 연출을, 박경원이 촬영을 맡았다. 그 외에 배용, 김연실, 주인규 등이 출연하였으며 개봉 직후 미제의 음흉한 속셈을 잘 표현했다며 호평을 받았다. 그런데 1958년 각색자 서만일이 숙청당하고 1962년 원작자인 한설야마저 숙청당하게 되면서 이 영화는 북한에서는 볼 수 없는 영화가 되었다.
영화의 원작자가 숙청되면서 볼 수 없는 영화가 된 작품에 대해서 북한 사람들이 모를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다. 한설야는 1980년대 복권이 되었고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승냥이」도 이후에 재발간 되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건 2001년에 「승냥이」가 리메이크 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아무리 한설야가 복권 되었어서도 1956년 영화의 시나리오를 쓴 서만일과 영화에 출연했던 주인규 등이 복권되지 못했기에 그때 만든 영화를 대신해 새롭게 영화를 만들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