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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에이 Dec 28. 2019

100. 소나무, 겨울의 위안

우리 아파트 근처에 가장 많은 게 소나무다.
소나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라고 한다. 잦은 외세의 침입과 민족 분단이라는 아픔, 고도성장으로 인한 사회적 아픔을 딛고 살아가는 민족이기에 척박한 환경에서도 곧게 뻗어 나가며 잘 자라는 소나무를 보며 위안을 받았나 보다.

소나무의 기상까지 생각하지 않더라도 겨울의 한가운데로 들어가는 요즘, 소나무처럼 상록 침엽수가 있어 초록을 보며 사는 나는 그 자체로 위안이 된다.

소나무는 대표적인 자웅동주 식물이다. 암꽃이 새로 난 줄기 끝에 작고 발그레하게 피면, 그 아래에 수꽃이 노란 방망이처럼 아주 많이 달린다. 이 위치는 부모가 한 나무인 자식을 발생시키지 않기 위한 소나무만의 생존법이다. 부모의 유전자가 동일하면 다양성이 떨어지고 열성이 우위를 차지해 생존에 불리해지는 건 인간이나 소나무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우리가 무서워하는(?) 바람을 타고 날아오는 송진가루는 수꽃이 만드는데 멀리 있는 소나무에 도달하기 위해 넓은 세상을 여행한다. 그러다 사람 사는 집에 들어오면 걸레에 닦여 생을 마감한다. 이들의 생존은 로또와 크게 다르지 않다.

소나무 솔방울에도 생존법이 들어있다. 유치원에 다녀온 아이가 어느 날, 솔방울은 물에 담그면 오므라들고, 마르면 펴진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 원리를 이용해 천연 가습기로 사용하는 분들도 있다. 지금 생각해보니 척박한 땅에서 살아남으려면 뿌리가 올려다 주는 수분에만 의지해서 살 수 없었을 솔방울이 스스로 물기를 머금는 법을 터득한 게 아닐까, 싶다



제가 소나무 세밀화를 그리는 동안 느꼈던 점은 늘 우리 가까이 있어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오히려 놓치기 쉽다는 것입니다. 희귀 식물이나 멸종 위기 식물보다 근처 앞산의 소나무에 대해 모르는 게 더 많은 수도 있어요
- 이소영, <식물의 책> 중에서


소나무를 마지막으로 프로젝트100과 함께한 꽃과 나무에게 말걸기를 마치게 되었다.

9월 코스모스를 1번으로 시작해 오늘 소나무를 100번으로 마침표를 찍으며 이소영 작가가 <식물의 책>에서 한 이 말이 그 동안의 내 마음을 대신해주는 것 같다.

식물이라고 하면, 학명, 속, 과 등의 어렵고 알 수 없는 말들부터 떠올라 내가 감히 알 수 없는 것들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이 프로젝트를 하는 동안 내가 다니는 곳곳에 살고 있는 식물들에게 말을 걸면서 실은 어려웠던 게 아니라 알려고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시작할 때만 해도 그 사소한 행동이 뭐 그리 대단한 의미가 있을까, 이름이나 좀 알아보자, 하며 시작했는데 끝나갈 때가 되면서 가슴이 옹알거렸다. 그게 정인지, 아쉬움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이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올테고 내 주변에 머무는 더 많은 식물들을 만날 수 있을텐데. 아니, 알아볼 수 있을 텐데. 이렇게 일단 마침표를 찍는 상황이 아쉬운 것 같다.

현재 가지고 있는 옹알거림은 그대로 느끼고, 봄에 다시 식물과 다르게 만날 방법은 따로 고민해보려고 한다. 그림이든, 사진이든, 이야기든. 이제 프로젝트로 하는 거 말고, 나의 의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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