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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시소설 21화

신대문자

- 1984년 10월

by allwriting


함께 밤을 새운 날부터 마리는 눈에 띄게 다정한 모습을 보였다. 전처럼 지시하지 않고 부드럽게 부탁했고 때로는 자기 사무실로 불러 소소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주로 마리가 이야기했고 서리하가 들었다. 질시의 눈빛을 보내는 일본인들의 시선도 개의치 않았다. 같이 술 마시러 가는 날이 잦아졌다. 그러던 하루였다.

“서리하 씨는 왜 여기 입사했어요? 전력을 보면 그럴 사람이 아니잖아요.”

서리하가 두려워하는 질문을 했다.

“혐한 단체가 어떤 곳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는 말도 있으니까요.” 미리 준비해 두었던 대답을 했다.

“정말이에요?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은데.”

마리가 빙글빙글 웃으며 반문했고 서리하는 침묵 했다.

“내일부터 특별한 일을 맡기려고 해요. 고문서를 해석하는 작업이에요.”

고문서라는 말에 서리하의 눈이 번쩍 띄었다.

“할 수 있겠어요?”

“네. 제 전공과 관련이 있어 관심이 갑니다.”

“그럴 줄 알았어요.” 마리가 뭔가 알고 있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다음날 부르더니 반으로 접은 한지 한 장을 건넸다.

“펴보세요.”

두 줄 글이 적혀있었다. 위에 9글자 아래 9글자 모두 18자였다. 처음 보는 글자라 읽을 수가 없었다. 세오녀 비단에 적혀있는 글자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흥분으로 숨이 턱 막혔다.

“해독할 수 있겠어요?”

“해독할 수 있습니다.”

서리하는 무조건 할 수 있다고 했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해독해 보세요.”

“시간이 필요합니다.”

몇 번이나 글자를 들여다봤지만 일본어처럼 글자 하나가 한 음을 갖는 문자인지 한글처럼 자음과 모음을 합쳐 소리를 내는 글자인지도 알 수 없었다.

“일주일 시간을 드리고 그때까지 해독하지 못하면 회수하겠어요. 절대 복사본을 만들면 안 되고 퇴근할 때는 내게 반납하고 가야 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퇴사 조치는 물론 다시는 이 글을 볼 수 없을 거예요. 약속하겠어요?”

“약속하겠습니다.”


약속대로 서리하는 글을 복사하지 않았다. 대신 모양을 암기해 집에 와서 종이에 옮겼다.

“이게 사이고 출판사에서 보관하고 있는 고대 글자란 말이지? 출처가 세오녀의 비단일지도 모르고?”

신영지가 흥미롭다는 듯 서리하가 옮겨 적은 글자를 들여다보았다.

“당분간 비밀로 하셔야 합니다. 이게 반출된 걸 알며 저들이 어떻게 나올 줄 모릅니다. 일단 글자를 해독하는 게 급선무라 형님께 부탁드리는 겁니다.”

신영지가 글자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이게 정말 고대 문자라면 일본 우익들이 춤을 추겠군.”

“왜 그렇습니까?”

“자네 신대문자라고 들어봤나?”

“아니요. 처음 듣습니다.”


일본 신사에는 신대문자를 모시는 곳이 있다. 신대문자란 말 그대로 신들의 시대에 사용하던 문자로 이에 관해 여러 설화가 전해져오고 있다. 신대문자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아히루문자’인데 아메노코야네미코란 신이 만들어 그 후손인 아히루 가문에 전했다고 한다. 아히루 가문은 한국과 가까운 대마도에 산다.

“이게 아히루 문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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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화재 영업교육센터장/ IGM 강사, 마케팅본부장/ 13권의 책 출간/회사 문서, 자서전 등 글쓰기 강의/ 세일즈, 마케팅, 협상 강의(문의: hohot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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