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보다 퇴사가 먼저였기에 일에 대한 아쉬움이 별로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아이를 낳아보니 일하던 때가 몹시 그리워졌다.
일을 하다 잘 모르면 물어볼 사수가 있고, 직장 생활 고충을 나눌 말 통하는 동료가 있다. 일은 마감이 있고, 성과와 성취감이 뒤따른다. 다른 사람들의 칭찬, 인정을 받으며 일에도 능숙해져 간다. 그러나 육아는 매 순간이 새롭고 낯설고 무엇보다 혼자였다.
육아는 내 손발을 묶었고 나의 모든 시간표를 무의미하게 했다. 생체리듬마저도 아이에게 맞춰야 한다는 사실까지 다 달았을 때 무너졌다.
임신해서 물도 제대로 삼키지 못할 정도로 심한 입덧을 했다. 그때 나는 못 먹어서 6kg이나 빠진 나보다 뱃속에 아이에게 너무 미안했고 잘 크지 못할까 봐 걱정되었다. 그래서 나에게도 모성애라는 게 생겼다고 믿었다. 그러나 오산이었다.
앞으로 아이 때문에 수없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억울했다. 남편은 애를 낳기 전이나 후나 변한 게 없는데 내 인생은 180도 변했다. 변화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엄마가 되었지만 여전히 나이기를 바랐던 것이다.
당장 직장에 나갈 순 없으니,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바쁘게 지내며 자기 계발에도 열을 올렸다. 도무지 이렇게는 뒤처질 수 없다는 욕심에 아이 낮잠 잘 때 같이 자야 한다는 엄마 선배들의 말도 무시한 채 아이가 잠이 들면 공부와 독서에 매진했다. 물론 금방 탈이 났다.
밤에 잘 자지 않는 아이인 데다가 그 유명한 초예민 등센서를 달고 태어난 아이라서 밤에도 푹 잘 수 없었다. 24시간 네온사인이 켜진 간판 모습이 딱 나였다.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했으니 육아는 당연히 더욱 힘겨웠고, 아이가 미웠다.
밤새 잠을 설치며 시간마다 깨서 젖을 깨물어 대는 아이가 예쁘지 않았다. 잠을 자야 사람이 살 텐데 어쩜 이렇게도 괴롭힐까 생각하며 미워했다.
안 좋은 자세로 밤마다 수유하느라 망가진 허리를 치료하러 한의원에 다니고, 가슴이 떨어져 나갈 것만 같은 통증으로 울면서 아이 젖을 무릴 때면 젖병이 되어 버린 것만 같아서 비참함을 느끼기도 했다.
마음 한편으로는 아이를 잘 키우고 싶고, 면역력에 좋다는 모유도 실컷 먹이고 싶은데 잠도 잘 안 자면서 매번 내 가슴을 파고들기만 하는 아이를 보면 그런 마음이 쏙 들어가기도 했다. 그냥 빨리 커버렸으면 하고 바랐다.
남편이 회식으로 늦는다는 연락이 온 그날도 여전히 우리 아기는 잠을 잘 생각이 없었다. 밤 10시, 11시, 남편은 오질 않고, 젖을 물리다 물리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아기띠를 해서 안고 재우기로 했다.
엄마 한 번 보았다가 가슴팍에 얼굴을 문질렀다가, 잠이 오긴 오는 것 같은데, 그냥 자면 되지 뭐가 문제인가 싶어 한숨이 절로 나왔다.
엉덩이를 토닥이며 내가 알고 있는 노래들은 죄다 불러 대기 시작했다. '자장자장 우리 아가~'부터, 레퍼토리가 다 떨어졌을 즈음, 이 노래가 떠올랐다.
‘동그란 눈에 까만 작은 코, 하얀 털옷을 입은 예쁜 아기곰, 언제나 너를 바라보면서 작은 소망 얘기하지’
예쁜 아기곰이라는 동요였다. 아기의 얼굴을 바라보며 가사에 맞춰 얼굴을 톡 건드렸더니 배시시 웃는다.
'동그란 눈에!' 하며 아기 눈에 콕
'까만 작은 코!' 하며 아기 코에 콕콕
'하얀 털 옷을 입은 예쁜 성훈이~ '하며 이름을 넣어 부르며 볼을 간질였다. 자기 이름을 부르는 걸 아는지 눈을 반짝였다.
'너의 곁에 있으면 나는 행복해~'라는 가사는 '너의 곁에 있으면 엄마는 행복해~'라고 바꿔 불렀다. 엄마라는 말에 아기는 또 한 번 눈을 반짝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 내가 너의 엄마고, 엄마는 너를 사랑해~ ' 그 순간 나에게 가장 사랑하는 존재가 생겼다는 걸 실감했다. 이 작은 아이를 지켜주고 싶고, 사랑을 듬뿍 주고 싶다는 마음을 마주하게 되었다. 뜻대로 되지 않는 육아 앞에서 무력한 엄마지만, 이 존재를 깊이 사랑하고 있구나. 사랑하게 되었구나.
예쁜 아기 곰 노래를 몇 번 반복해서 불러주자 아이는 이제 됐다는 듯 품 속에서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방금 전까지도 안겨 있었던 것만 같은 아기가 14살, 중학교 1학년이 되어 내 앞에 앉아있다. 이젠 나보다 덩치도 크고 밥도 혼자 잘 떠먹고 많이 먹고, 잠들면 흔들어 깨워도 잘 못 일어난다. 14년 전, 나의 고뇌, 자책이 무색하리만큼 우리 아기는 잘 크고 있다. 부족한 엄마 곁에서 잘 자라준 아이가 참 기특하다.
오늘 아침에 예쁜 아기곰 노래를 부르면서 함께 놀던 게 생각나서 불러줬더니 질색 팔색을 하며 학교로 도망가 버렸다.
사춘기를 겪으며 서운하게 굴 때도 많고, 비밀도 많아졌지만 그래도 엄마는 네 곁에 있으면 여전히 언제나 행복해. 몸집은 다소 커졌지만, 예쁜 우리 첫째 아기 곰. 이제 좀 컸다고 엄마가 안으려고 하면 밀어낼 때도 있지만, 엄마는 양팔 벌리고 기다릴게. 언제든 안아줄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