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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우나고우나 May 30. 2024

유산은 남겨졌고, 그다음은

폴란드

 가을 코트까지 챙겨 왔는데 남쪽은 이제 벌써 여름인가 보다. 내리쬐는 태양빛에 이마에 땀이 맺히고, 길거리에 긴팔 셔츠를 챙겨 입은 사람은 나뿐이다. 햇빛에 반사된 푸른 나뭇잎들이 청량히 연둣빛으로 빛난다. 북적이는 골목골목이 도시 녹음 아래 활기를 더한다.


 낯선 도시에 와도  하는 나만의 루틴 같은 것들이 있다. 숙소에 도착하면 간단한 정비 후 숙소 주변 동네를 거닌다. 그러다 다리가 지칠 때쯤에 중앙 과장에 어느 벤치에 앉아 도시 내음을 느낀다. 그렇게 또 걷다 이 도시만의 건물을 보고, 소리를 듣고, 골목을 훑는다. 이 도시는 저번 여행지와는 다르게 유독 파스텔 톤의 건물이 많구나. 길거리에서 병맥주를 마시는 사람이 경찰과 함께 있는 걸 보니 불법인가 보구나. 신호등이 유난히 발랄해 보이네. 또 그러다 눈에 띄는 펍에서 간단한 맥주 한 잔으로 목을 축인다. 해가 어엿 질 때쯤에는 하늘 전경이 잘 보이는 곳에 앉아 도시의 색을 관찰하다가, 미리 봐 둔 식료품점에서 생수 1.5리터를 사고 숙소로 돌아간다. 내일은 오늘 점찍어 놓았던 빵 냄새가 좋던 그 가게에서 아침을 먹을 테다.



비스와(Vistula) 강과 바벨 성 (Wawel Castle)



 잔혹한 역사와 대조되게 유난히 날씨가 좋아, 그 이면을 모르면 한적한 시골마을로 착각할 수도 있다. 겨우 몇 걸음 걸어가면 나오는 음산한 철조망 울타리가 이 공간의 목적을 투영한다. 푸른 들판 위에 홀씨가 내려앉아 꽃을 피웠던 이 땅은, 과거엔 척박하고 비 온 뒤 겨우 구정물만 고이는 땅이었을 테고. 단칸방 크기의 오래된 열차가 세워져 있는 선로에선, 인간 한 명의 손가락질에 의해 생과 사를 가르는 저울대였을 테다. 남겨진 것은 한낱 값어치가 없는 무수한 싸구려 안경들과 제 주인이 사라진 남은 짐가방들, 계속되는 삶을 희망했던 냄비와 주방기구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무수한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인해 석 계단이 눌러앉았다.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갈 때마다 마주치는 참담함에 더욱 숙연해진다. 여길 찾은 다양한 인종, 국적, 나이, 성별을 가진 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이 계단을 다시 내려왔을까. 끝도 없는 잔혹성으로 물든 인간들과, 그런 인간임을 벗어나고자 하는 철조망 밖의 인간들과 그리고 무참히 짓밟히고 찢긴 철조망 속 고립된 인간들. 인류 최대의 악몽이 아우슈비츠에서 드러났다. 온전한 형태의 강제 수용소가 남겨졌다. 이제 이 남겨진 유산으로 풀어가야 할 것이 많겠구나.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 (Memorial and Museum Auschwi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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