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자카르타에 나보다 하루 일찍 도착했던 그는 나의 비행기 도착시간에 맞춰 렌트한 오토바이를 타고 공항으로 마중을 나왔다. 지난 두 달간 매일같이 SNS메신저로 시시콜콜한 얘기, 무거운 얘기 등을 주고받았던 사이지만 생각해 보면 그와 나는 얼굴을 보고 눈을 맞추고 제대로 대화해 본 적은 한 번도 없는 사이였다. 아체에서 족자카르타로 향하는 동안 나는 한 번 지나치며 본 사람을 (그것도 남자를!!!) 믿고 1주일 넘게 여행하기로 결정한 게 맞는 건가 수없이 생각했지만 몸은 이미 족자카르타에 도착해 공항 출구를 나서고 있었다.
두 달간 대화하면서 이 사람은 인도네시아의 섬 중 하나인 깔리만딴(보르네오) 섬 출신이라는 것. 나보다 무려 일곱 살이나 많다는 것. 동남아 화교라고 불리는 중국계 인도네시아인이라는 것. 영어를 전혀 못하던 초등학교 6학년 인도네시아 깡시골에서 혼자 싱가포르로 넘어가 단체 홈스테이에 살며 공부해서 대학은 미국에서 다니고 졸업 후 다시 싱가포르에 돌아와 기업에서 일하다가 1년간 모국을 여행하기로 결심하고 퇴사 후 여행을 하고 있다는 것 등등. 사춘기가 시작되기 전부터 쭉 혼자 유학생활을 해왔기에 홀로 인도네시아에 떨어져 있던 내가 유난히도 안쓰럽게 느껴졌었다는 것. (물론 아무리 안쓰러운들 나한테 호감이 없었다면 페이스북 메시지를 먼저 보내지는 않았을 거라고 나는 항상 주장한다). 메시지만 주고받던 사이임에도 사람을 나름 잘 본다는 착각을 하던 나는 이 사람은 뭔가 믿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 혼자 여행을 하는 게 위험한 건지 그래도 두 달 메시지라도 주고받은 현지인 남자와 함께 여행하는 게 위험한 건지에 대한 고민은 결국 결론이 정해져 있는 고민이었다. 그냥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더 알아보고 싶었고 여행은 아주 좋은 핑계이자 유일한 기회였다.
공항 출구에서 나와 그를 발견하고 쭈뼛쭈뼛 다가가 인사를 했다. 어색하지만 그렇지 않은 척 대화를 주고받으며 그가 빌린 오토바이에 몸을 실었다. 그때 알았다. 오토바이는 데이트하는 연인들에게 아주 좋은 교통수단이라는 것을. 낯선 땅 저녁 무렵 무거운 배낭까지 들고 나는 그의 등에 바짝 붙어 오토바이를 탈 수밖에 없었는데 내 쿵쾅거리는 심장이 그 사람의 등으로 전달될 것만 같아 한 뼘 틈을 두고 위태롭게 뒷좌석에 앉아있었다.
한참을 달려 우리가 도착한 곳은 "대장금"이라는 한식당이었다. 고아원 아이들과 생활하며 풍족하지 않은 식단으로 살고 있었던 나는 한국인이 외국에서 돌아와 제일 먼저 먹는다는 명불허전 김치찌개를 시켰다. 그는 자기도 한식을 좋아한다며 된장찌개를 시켰는데 단품으로 추가할 수 있었던 김치반찬을 두 그릇이나 더 추가 주문하는 것이었다. 김치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한식이 그리웠을 나를 위해 김치를 추가했다는 소리를 듣고 헛웃음이 나왔다. 한국 사람이라면 김치찌개 시킨 사람에게 추가로 김치반찬이 더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은 안 할 텐데 싶다가 그래도 내 생각해 주는 게 고맙고 귀엽게 느껴졌다. 오랜만에 한식을 배불리 먹으니 타지에서 채우고 있던 마음의 빗장이 스르르 풀리는 것 같았다.
식사를 마치고 도착한 숙소는 대규모 호스텔이었다. 족자카르타는 우리나라로 치면 경주와 같은 도시인 데다 대학이 많은 도시이기도 해서 우리나라 수련원과 같이 학생들을 위한 중소, 대규모 숙박업소가 많이 있었다. 우리가 묵은 곳은 도미토리룸이 있는 호스텔이었고 각자 도미토리룸에 짐을 풀고 여행에 대해 의논해야 할 땐 공동 휴게실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짐정리 후 다음 날 일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늦은 밤 휴게실에서 서로를 보았을 때 박장대소를 터뜨렸던 게 유일하게 기억에 남는다. 시력이 좋지 않았던 우리는 둘 다 작은 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쓰면 눈이 아주 작아지는 도수가 높은 안경을 꼈었지만 서로에게 잘 보이고 싶어 아체에서 처음 만났을 때도, 족자카르타 공항에서 다시 만났을 때도 콘택트렌즈를 끼고 있었다. 그러나 샤워를 마친 후 밤늦게 휴게실에서 만났을 때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자신의 부끄러운 안경 쓴 모습을 서로에게 내보이고 만 것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늦은 밤까지 족자카르타, 솔로, 마글랑, 말랑, 브로모, 수라바야 여행을 위한 계획을 짰다. 그리고 이 여행을 마친지 5년 후 우리는 함께 처음으로 여행한 족자카르타에서 평생 인생여행을 함께 하기 위한 부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