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스치듯 만난 첫 만남에서 서로에게 호감이 있었던 우리는 다짜고짜 두번째 만남에서 열흘 가까이 함께 여행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그가 가진 문화에 대한 호기심과 상식, 배낭여행 짬밥에서 나오는 노련함에 마음이 더 갔고,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더운 나라에서 불편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에서도 불평없이 묵묵하게 무거운 배낭을 지고도 잠시라도 들어달라고 부탁하지 않는 나의 독립심(?)과 닭장수까지 함께 타는 그야말로 난장판인 현지 버스 안에서 자신의 어깨를 베개 삼아 침까지 흘리며 곤히 자던 나의 털털함(???)에 마음이 갔다고 했다.
카우치서핑에서 만난 우리답게 중간 중간 호스텔이 아닌 로컬 카우치서핑 호스트에게 미리 연락해서 할머니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형제자매 다같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아주아주 작은 현지 집 방 한 칸 바닥에서 잠을 청하기도 하고 대가족이 모여사는데도 불구하고 매우 열악했던 화장실, 욕실을 보고 기겁해서 하루종일 흘린 땀을 씻지도 못하고 서로에게 쾌쾌한 냄새를 풍기며 한 명은 딱딱한 나무 판자침대, 한 명은 그 옆 바닥에서 잠들기도 했다.
우리를 재워 준 현지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면 그들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우리에게 물어왔다.
"너희 둘은 애인 사이인거지? 그래서 같이 여행중인거지?"
그도 그럴 것이 여긴 무슬림 문화가 지배적인 인도네시아. 보아하니 부부같지는 않아보이는 젊은 남자와 여자가 함께 여행중이라니 최소 애인관계는 되겠다 짐작했으리라. 그 때 그는
"우리 사귀는 사이 아니야. 나는 얘를 좋아하는데, 얘가 나를 안 받아주네?" 하고 장난스럽게 나를 곁눈질 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호감이 커지고 있었지만 1년 간 인도네시아를 떠돈다는 남자와 몇 개월 후 아체에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좋아지는 마음을 꾹꾹 누르고 눌렀다.
장관이었던 브로모의 일출, 감탄을 자아냈던 보로부두르 사원, 길에서 나누었던 각자의 과거, 현재, 미래 이야기. 성격상 다른 사람들에게 쉽게 속을 터놓지 못하던 우리는 겨우 두 번 본 서로에게 마음 속 깊은 이야기를 다 털어놓았다. 처음 만남 후 메신저로 연락하면서 상냥하고 젠틀한 사람이었지만 속을 알기 어려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함께 여행하며 어렸을 때부터 외국에서 혼자 지내오며 누군가도 공유하지 않았던 외로움을 나와 공유해주었다. 나 또한 가족에 대한 고민, 미래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으며 나와 다른 인생을 살아온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주의깊게 들어주고 공감해준다는 것에 큰 위로를 받았던 것 같다.
여행이 끝나갈수록 이 사람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생각에 아쉬웠지만 흐르는 시간을 막을 순 없었고 마침내 우리는 마지막 여행지였던 수라바야를 끝으로 자카르타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나는 자카르타에서 이틀 정도 카우치서핑 친구 집에 머문 뒤 반다아체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야했고 그는 자카르타에 있는 형의 집에 잠시 머물다 다른 여행지로 향한다고 했다. 비행기 좌석에 나란히 앉아 어느 누구도 우리의 다음이 언제 어디가 될지 입을 떼지 못하고 앞 좌석만 쳐다보고 있을 때쯤 그가 귓속말로 속삭였다.
"우리 다음은 언제 또 볼까? 노력해보자, 우리. 계속 연락 주고받고 만나보자."
자카르타에 도착해 엉겁결에 그의 형의 차를 얻어타고 친구 집에 다다랐지만 마음은 온통 그 생각 뿐이었다.
언제 이 사람을 또 볼 수 있을까? 어디로 가야 이 사람을 볼 수 있을까? 우리의 다음 만남은 어디가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