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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나 Jun 23. 2021

박아나의 일상뉴스

서울생활 한 달 차

서울생활   . 어디 해외에서 살다가 입국한 사람 같지만, 고작 서울 근교에서 살다 서울로 돌아온 거다. 경부고속도로가 심하게 막히지만 않는다면 강남 고속터미널까지 30 내에 도착하는 판교에 살았다. 판교에 살면서 나는 거의 매일 서울에 갔다. 일을 하러, 친구를 만나러, 쇼핑을 하러언제든 내가 원하면 서울에   있었다. 그러나 서울은 가까우면서도 멀었다.  멀어지기 전에 나는 다시 서울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서울에서 태어나 인생의 대부분을 서울에서 살았던 내가 계속 서울 밖에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6 만에 서울로 돌아왔다.


그렇게 서울이 좋으면 애초에  떠났는가. 그때는 그래야만 했다. 브런치에 올린 예전의 글들을 보면  사정이 나오긴 하는데,  간략하게 말하자면, 내겐 변화가 필요했다. 15년을 다닌 MBC 그만두고, 앞으로의 인생에 대한 아무런 계획도, 목표도 보이지 않았던 그때, 익숙한 서울의 삶을 정리하는 것이 유일한 계획이목표였다. 그래서 상암에서, 여의도에서 멀리 떨어진 , 새로운 터전이 필요했다. 다행히 판교는 변화를 꿈꾸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청계산 자락에 자리 잡은 판교 집은  흔한 편의점도, 카페도 걸어서 가기에는 힘에 부치는 곳이었지만, 차를 타고 나가면 지하철역과 백화점이 있는 동판교까지 금방   있어 심심하지 않았다.


판교로 이사를 오니 나의 라이프 스타일에도 변화가 생겼다. 집 뒤로 산책로가 바로 이어지고, 겨울이면 눈 덮인 산을 바라볼 수 있는 우리 집은 일반적인 형태의 아파트가 아니라, 작은 테라스가 있는 집이었다. 이왕 여기까지 온 이상, 그 야외 공간을 그냥 놀릴 수는 없었다. 놀이터 모래 외에는 흙을 만져본 적이 거의 없었던 나는 정원의 어머니, 타샤 투더로 급작스럽게 변신해야만 했다. 나무와 꽃들을 키우고 가꾸는 일은 계절마다 일이 달랐다. 시기에 따라 뿌려야 하는 씨의 종류도, 원하는 물의 양도 달랐다. 그냥 보기에 예뻐서 심었던 생명들이 나의 무지로 허무하게 사라지기를 여러 번 경험했다. 날씨의 변화에 민감한 아이들은 극심한 추위 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했는데, 유칼립투스나 라벤더는 해마다 작별 인사를 나눌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잘 버티는 것은 로즈메리였다. 물을 주면서 로즈메리를 쓰다듬을 때 내 손에 묻어나던 그 향기가 그립다. 이사 나오기 전까지 아기 사과나무의 송충이들을 퇴치하느라 조금 힘들었는데, 그 어느 해보다도 수북하게 열린 사과들은 잘 있나 그것도 궁금하고.


우리 테라스의 불청객은 송충이뿐이 아니었다. 요란스럽게 등장하는 잿빛의 털을 가진, 비둘기보다는 몸집이 좀 작은 밉상 새가 있었다. 배고픈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내가 아끼는 사과며 포도며 블루베리에 시도 때도 없이 들이대니 진상도 그런 진상은 없었다. 울음소리조차 무척 거슬리는 이 녀석의 이름을 찾아보았다. 직박구리였다. 얘는 혼자 다니지도 않는다. 서너 마리씩 같이 다니는데, 무슨 동네 양아치들 같다. 뭐, 이런 미운 놈들 말고, 귀여운 녀석들도 있다. 작은 몸집에 노란 깃털을 가진 아이는 부리조차 앙증맞게 생겼다. 제대로 챙겨 먹고는 다니는 건지 걱정이 될 정도로 조용히 노닐다만 간다. 아침이면 조수미 님 뺨치는 목소리로 나를 깨우던 성악가 새도 여전한가. 지금 지내는 곳에서는 옆 건물의 공사 소음이 나를 깨우는데.


서울 생활 한 달 차, 이렇게 글을 쓰며 나의 작은 옛 공간을 떠올려보니 무척 아련하다. 그곳의 초록과, 그곳의 공기와, 그곳의 소리가 엄청 그립다. 어차피 내 몸에는 타샤 같은 DNA는 없으니까, 시간이 지나면 이 그리움도 옅어질 것 같지만. 뭐, 예전보다 자연에 대한 관심과 이해는 생겼으니 그것으로 만족해야 될지 모른다. 자연은 머리로만 생각해서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직접 부딪혀 봐야 한다. 그것도 몇 년은 겪어봐야 조금은 알게 된다. 자연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아니 나보다 강하다. 내가 자연을 돌보는 것 같지만, 자연이 나를 돌보고 있다는 것도… 결국은 이 모든 것들이 추억으로 잊히겠지만.


자연이 나를 잘 보다듬어 주어 서울로 돌아올 기운을 얻었고, 어느덧 서울 생활   차에 접어들었다. 아직 이사  집의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아 임시 거처인 오피스텔에서 지내고 있다. 잠깐 지낼 곳이어서 그런지, 정리가 엉망이라 그런지, 뭔가 어수선한 분위기에 자꾸만 밖으로 나가게 된다. 이제는 자연이 아니라 도시의 품에 빠르게 적응해야 한다고, 아침부터 집을 뛰쳐나오는 나를 정당화해본다. 뭐가 됐든 서울의 촘촘한 대중교통의 혜택에 감사하며 홍길동처럼 여기저기 다니고 있다. 서울의 거리를 누비며 나의 복귀를 알리는 나만의 의식이라도 행하듯이. 그래,  서울로 돌아왔다!


지금도 글을 써야 한다는 그럴싸한 이유로 카페로 나왔다. 아이패드를 두들기다 고개를 들어  너머 사람들을 바라본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목적지를 향해 각자의 속도로 걸어가고 있다. 마스크 때문에 사람들의 표정까지 읽을 수는 없지만, 발걸음의 모양과  닮은 그런 표정이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눈이 마주치면 머쓱해질  같아 다시 고개를 숙인다. 그렇게 오늘의 서울 생활도 빠르게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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