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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나 Nov 04. 2021

코로나 시대의 해외여행 + 어학연수

뉴욕행 일기 3

 피프스 애비뉴를 걷다 보니 맨해튼이 예전과 다르긴 하네. 그래, 사람이 많이 줄었다. 당연히 관광객들이 많이 오지 않아서 그런 거겠지. 사람들로 가득 찬 뉴욕이 주는 예전의 북적댐이 그립기도 하면서 동시에 이런 여유로움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아무래도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는 쾌적한 뉴욕은 좀 낯설다. 하긴 지난 1,2년 사이 ‘낯선’ 광경을 한두 번 봤나. 모든 것들이 낯설었던 지난해보다 많이 적응되긴 했다만. 여기도 상황이 좋아져서 이렇게 사람들이 자유롭게 다니지, 피프스 애비뉴가 텅 비어 있었던 적도 있었을 것이다. 처음에 뉴욕에 와서 마스크를 하지 않은 사람들이 내 앞으로 몰려올 때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이게 되었는데, 계속 보다 보니 ‘에라 모르겠다, 그럼 나도?’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는 야외에서는 마스크가 의무가 아니다. 열 명 중에 한 명 정도 마스크를 하는 것 같다. 마스크를 하고 있으니 굉장히 예민한 사람 같기도 하고, 정말 어디 아픈 것 같기도 한 기분이 드는 것은 그냥 기분 탓이겠지. 마스크 없는 얼굴들은 살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생생하달까. 나도 그런 생생함을 경험하고 싶었지만, 막 한국에서 온 나는 어느새 익숙해진 두터운 보호막을 걷어내기 쉽지 않다.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다.

 53번가에 이르니 몸이 자동으로 꺾어진다. 난 예전에도 여기서 늘 꺾었었다. 53번가에는 Moma가 있기 때문이다. 미술관을 좋아하는 내가 여기 있는 동안 당연히 가겠지만, 도착한 첫날 바로 가게 될 줄은 몰랐다. 모마로 들어가려는데 입구에서 백신 접종 완료 여부를 확인한다. 한국에서 영문 증명서를 뽑아오긴 했는데, 종이를 내미는 게 영 폼이 안 나서 쿠브를  보여주었더니 문제없이 통과했다. 여권처럼 사진이 있는 포토 아이디도 함께 제시해야 한다. 말로만 듣던 백신 패스를 여기서 경험한다. 뉴욕주에 있는 미술관이나 음식점에서는 백신 접종 완료증을 제시해야지만 실내로 들어갈 수 있다. 어딘가 들어갈 때마다 버벅댔는데, 여러 번 반복하다 보니 나중에는 QR코드 제시하듯 자연스럽게 돼간다.

 로비에 걸려있는 알렉스 카츠의 튤립들이 나를 반겨준다. 내 집에 카츠의 그림은 없지만 내 집에 온 것처럼 마음이 놓인다. 예전에 여기 살 때, 한 달에 한 번은 모마에 왔었다. 그렇게 미술관을 좋아했냐고? 그건 아니고 그때 가지고 있던 현대카드의 혜택 때문에 자주 가게 됐는데, 그렇게 가다 보니 점점 더 좋아졌다. 그때부터였을까. 나는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온갖 전시회를 쫓아다니게 되었다. 지금의 나의 모습 중에 뉴욕의 영향, 그중에서도 모마의 지분이 상당할지도 모르겠다. 역시 여기부터 찾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운명의 끌림이었을지도.

 전시회 때 그림들 사진을 많이 찍어두는 편인데, 솔직히 꼼꼼히 다시 살펴본 적은 많지 않다. SNS에 올리기 위해, 지금같이 글을 쓸 때 자료로 필요할지 몰라 사진을 찍는 걸까… 하고 의심할 정도로. 사진을 찍을 때마다 그림에 온전히 집중하는 순간을 방해하는 행위라고 생각하면서도 찍는 ‘짓’을 멈출 수가 없다. 아름다운 대상을 보면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생기듯, 멋진 작품을 보면 사진으로라도 남겨 갖고 싶은 욕심이 생기나 보다. 그런다고 내 것이 되는 것이 아니지만, 적어도 내 휴대폰 안에서는 내 것이니까, 아주 내 것이 아닌 것도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나는 마크 로스코의 No.10 이나 모네의 수련은 한 점도 아닌 여러 점 갖고 있다. 올 때마다 찍으니까.

 알렉산더 칼더의 대규모 개인전이 하이라이트였다. 모빌의 창시자인 그의 작품들을 한자리에 두고 보니 뭔가 압도적이었다. 몬드리안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그의 추상화를 움직이는 모빌로 발전시켰다고 하는데, 움직임과 동기라는 의미의 모빌이란 이름은 그와 교류하던 마르셀 뒤샹이 지어주었다. 뒤샹이 큰일 했네. 한국 페이스 갤러리에서도 알렉산더 칼더의 작품들을   있다고 하니 왠지  핫하게 느껴진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바로 가봐야겠다. 우리나라 이우환 작가님의 from line(1974)라는 작품을 보고 반가워 소리 지를 뻔했다. 어느 공간에 두어도 근사하겠지만, 여기,  자리가 딱인  같았다. 미술관이  닫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마음이  급했지만 한참을 응시하며 시간을 보냈다. 밑도 끝도 없이 ‘무한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그러나 나의 시간은 유한하다. 다시 와야겠다.

 잠시 1층 정원에서 시간을 보냈다. 모마의 공간 중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곳이 여기 아닐까. 미술관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야외에도 설치된 작품들을 보며 숨을 돌릴 수 있고, 미술관에 끌려오는 사람에겐 해방감을 줄 수 있는 공간이니 말이다. 배고픈 내겐 간단한 요기를 해결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고. 비행기에서 내려 점심도 건너뛰고 너무 돌아다녔더니 허기가 졌다. 뭘 좀 입에 넣고 나니 다시 움직일 동력이 생긴다. 아직 해가 지지 않았으니 더 움직여야 한다.

 모마에서 나와 다시 피프스 애비뉴 쪽으로 넘어와 조금 더 올라갔다. 센트럴파크로 가기엔 날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고, 솔직히 몸도 삐걱거리는 것 같다. 버그도프 굿맨에 잠깐 들렀다가 몸을 돌려 호텔로 돌아가기로 했다. 의욕보다 내 컨디션을 더 신경 써야 할 나이인가. 뭐 좀 피곤하기도 했지만, 어두워지고 나서 돌아다니는 게 조금 부담스러웠다. 예전에는 밤늦게 엄청 돌아다녔는데, 아시안 헤이트, 뭐 이런 이야기들을 접하다 보니, 솔직히 겁이 났다. 첫날이니까 분위기를 좀 파악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위로하며 숙소로 향하는데, 파티 가는 뉴요커 언니들을 보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껏 차려입은 언니들은, 물론 동생들이겠지만, 하이힐을 신고도 거의 뛰다시피 어딘가에 있을 파티 장소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어디 좋은데 가요? 그럼 같이 가요.” 하고 따라가고 싶었지만, 그들이 뿜어내는 불금의 바이브만 살짝 간접 경험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나는 아니어도 다른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왠지 행복해지는 뉴욕의 첫날밤이다.

 방으로 돌아오니 크라이슬러 빌딩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깜박깜박 반짝이는 크라이슬러의 야경을 보며 오늘 하루를 일찍 마감하는 내게 뉴욕이 보내는 선물인가 생각했다. 내일은 어떤 선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의식이 몽롱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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