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세상에 갓 나온 새끼고양이들과 며칠을 함께 지냈다. 이렇게 작은 동물들과 살을 맞대본 경험은 처음이었다.
신기하게도 동시에 태어난 다섯 마리의 생김새도 성격도 전부 달랐다. 대부분 자거나 뛰어놀며 시간을 채웠는데, 잠에 드는 자세부터 선호하는 장난감까지 모두 각자의 패턴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창을 타고 들어온 빛이 바닥에 지도를 그릴 때면 고양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햇살 위로 모여들었다. 삼삼오오 뭉쳐 누운 고양이들의 솜털이 숨결을 따라 풀밭처럼 흔들렸다.
고요가 찾아왔다. 빛과 바람과 동그란 생명들 뿐이었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편안한 한숨이 흘러나왔고, 그 무엇도 중요하지 않게 느껴졌다. 세상이 곧장 포근해졌다.
같은 공간인데도 고양이들은 매일 처음처럼 시선을 담았다. 늘 무언가 궁금해하는 것 같았다. 속삭이듯 반짝이는 그 눈동자를 처음 마주친 순간에는 정말이지 갹! 주접스럽게 심장을 부여잡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 순간에 착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허걱. 이래서 귀여움이 세상을 구한다는 건가?
예쁘고 연약한 존재들과 눈을 마주치면 나쁜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으니까..!
그런데 눈을 오래 마주 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바라볼수록 복잡한 감정이 일렁였다. 누렇게 뭉친 눈곱이 시야에 들어오고 울음소리가 더 크게 다가올 때쯤 내가 먼저 눈을 피해버렸다. 어떤 죄책감이었는데. 세상의 아이들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얼마 전 뉴스 기사 속 사진으로 접한 아이들은 고통 속에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너무 많은 물음표와 느낌표가 있었다. 의젓한 눈빛도 하나 같이 위태로워 보였고 웃는 표정이어도 아팠다. 나는 아이들의 시선을 피해 스크롤을 재빨리 내렸다. 끝날 줄 모르는 전쟁 속에서 내가 도망쳐온 눈동자가 쌓여만 간다.
언제쯤 미안한 마음 없이 아이들을 바라볼 수 있을까. 세상에 평화가 깃들 수 있을까. 그렇게 많은 얼굴을 잊고 살면서 평화를 원한다고 말할 수나 있을까.
순진한 소망일지 몰라도 간절히 원하고 있다. 다양한 관계 속에서의 지긋한 눈 맞춤을. 세상을 구하는 눈맞춤을. 지금, 여기서부터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