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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스 May 09. 2023

결국에는 다 떠나더라도

생각 없이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휙휙 넘겨보던 중에 손가락을 멈추게 한 사진이 있었다. 6년 전 미국에서의 교환학생 시절에 만났던 친구의 사진이었다. 무기력했던 나를 별 노력 없이 웃겨줬던 친구였는데 한참 동안 연락이 끊겼었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었기에 달려가 포옹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좋아 보인다!, 잘 지내?, 보고 싶어!, 사진에 답장할 만한 글을 썼다 지웠다 반복하다가 어쩐지 대화를 이어갈 자신이 없어서 마음속으로만 반가워했다.


잊고 지내던 인연들이 떠올랐다. 오랫동안 곁을 지켜준 기적 같은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내 인생의 특정 시기에만 존재했다. 어떤 이는 나의 찌질한 시절만 목격했고, 어떤 이는 나의 빛나던 순간만을 기억하고 있을 테다.


어렸을 때부터 잦은 이별에 익숙해져야만 했다. 그러나 이별은 도무지 쉬워지지 않는 것.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오래 지속되지 않을 관계는 부질없다 판단하고 마음 여는 일에 지나칠 정도로 신중했다. 여러 모습이 있는 내가 하나의 상태로만 기억되는 것도 싫어서 내 삶의 작은 부분만 보게 될 사람들은 진짜 친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력하게 쌓아놓은 방어막을 순식간에 뚫고 밀려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방심한 사이에 조용히 다가와 진동을 일으키는 사람들. 그들과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연결되면 나는 어느새 새로운 세계에 도착해 있었다.


시간의 계산이 무의미해지는 관계를 경험하기 시작하면서 나도 모르는 새에 나를 만드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 이 순간 무엇이든 나누고 있다면, 내 삶의 작은 부분이라도 증인이 되어준다면, 전부 진짜 친구였다. 좁은 마음을 방어막으로부터 해방시켰을 때 나의 세계는 끊임없이 확장되었다.  


이탈리아에서의 시간도 거의 끝나간다. 오늘도 마지막 인사를 하러 외출해야 한다. 이별은 슬프지만 친구의 세계는 내 안에 남아있다. 앞으로도 잘 간직할 것이다.


하루만 볼 사이라 해도 최선을 다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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