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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일린 Nov 16. 2022

아들 덕에 잘 먹고 잘 살아요

통통한 아들이 더 통통해지고 있다. 천고마비의 계절을 통과하며 녀석의 몸은 더욱 육중해지는 중이다. 내 허리와 녀석의 허벅지 한쪽을 줄자로 재어보며 똑같다고 키득키득 서로 웃어댔다. 생각해보니 웃을 일이 아니더라.


“엄마, 나 00 kg 이야. 나 고도비만이야?”     


날름날름 받아먹는 모습이 사랑스러워 음식을 많이 먹인 탓일까. 밤에 먹는 건 말린다고 말렸는데 호빵처럼 살이 잘도 차오른다. 아이의 배는 항상 빵빵한 상태다. 볼록하게 튀어나온 아이의 배를 쓰다듬는 걸 좋아하지만 보다 적극적으로 말려야 할 시점이 왔나 보다.            


아들은 뱃속에 있을 때부터 먹성이 엄청난 아가였다. 임신 초기, 나의 입덧이 끝나자마자 평소 잘 찾아먹지도 않은 고기 국물이 그렇게 당겼다. 설렁탕, 갈비탕, 삼계탕 등 하루가 멀다 하고 뽀얗고 맑은 고기 국물을 돌아가며 들이켜 댔다. 여느 때와 같이 한 음식점에서 만족스럽게 갈비탕을 먹고 있던 출산 임박 시기,     


“여기, 이거 더 먹어요.”     


주인아주머니처럼 보이는 분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커다란 대접에 서비스 국물을 가득 담아주셨다. 평소 같으면 내 그릇에 있는 것도 못 먹고 남기기 일쑤인데 배속에 다른 생명체가 살고 있다는 사실을 먹을 때마다 실감했다. 아파트 단지 안 장터에 사과를 사러 갈 때도 그랬다. 주인아저씨가 배를 쓱 한번 쳐다보더니 “임신했으니까 사과 2개 서비스”라며 덤으로 주시더라. 다정한 사장님들이 많아 세상은 참 아름답다.


근데 신기한 건 아들이 배속에서부터 좋아하던 음식을 여전히 좋아한다는 거다. 임신 중에 엄마가 먹고 싶은 음식이 아기가 먹고 싶은 거라는 말, 몸소 경험해보니 사실이었다. 찬바람이 불어오면 나와 설렁탕 데이트를 즐기고 옆 동 사는 친구와 곰탕 한 그릇에 왕만두를 나눠먹고 온다. 보통의 초등학생들은 친구들끼리 떡볶이나 라면 정도만 먹는 것 같은데 아들은 그 이상의 먹거리를 찾아다닌다.  


“엄마, 1층 할머니가 이거 주셨어. 그 할머니 알지? 나랑 친한 할머니”     


학원을 다녀온 어느  뱅어포 봉지를 하나 들고 왔다. 나도 모르는 1 할머니와 언젠가부터 안면을 트더니 뱅어포 까지 받아온 거다. 1 할머니뿐만 아니다. 4 할머니, 옆집 아주머니,   사시는지 모르는 위층 할머니와도 인사하고 지낸다. 아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면 “ 때마다 크네라는 어르신들을 가끔 만난다. 생각해보니 옆집 아주머니가 가을마다 챙겨주시는 대봉은 아들과의 친분 때문인가 보다. 


아이와 함께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말로만 듣던 1층 할머니가 복도에 나오셨다.      


“애 엄마유?”

“아, 네네, 안녕하세요.”

“아휴, 여기 동에서 얘가 인사 제일 잘해. 아들 잘 키웠어. 잘 생겼어.”

“아, 네, 감사합니다.”     


붙임성 좋은 아들 덕분에 1층 할머니와 인사도 나누고 칭찬도 받았다. 갈수록 살이 찌는 아들을 보며 고민이 깊었는데 할머니의 덕담 한마디에 마음이 가벼워진다. 뱃속에 있을 때부터 먹을 복이 많더니 어르신 복도 많은가 보다.      


나에게 11월은 특별한 달이다. 아들 생일과 내 생일이 동시에 있어서다. 특별한 달이어서 아들 자랑 좀 해봤습니다. 현실은 저 모습이 다가 아니란 거죠. 어떤 날은 무조건적인 사랑을 하다, 어떤 날은 전쟁 같은 사랑도 하며 현실 모자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아들아, 네가 사춘기에 본격적으로 들어간다 해도 엄마는 지금처럼 너를 사랑해. 가끔 엄마도 모르게 샤우팅이 나올 수 있지만 이해해 줘야 해. 엄마도 몇 년 뒤 갱년기가 올 나이잖아? 네가 중학생이 처음인 것처럼 엄마도 사십 대가 처음이고 다가올 갱년기도 처음이야.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거든. 서로의 감정이 널뛰기하더라도 우리 각자 자리에서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잘 헤쳐 나가 보자. 그리고 식사 시간 외 늦은 시간에 먹는 간식은 좀 줄여보면 안 되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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