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랄 맞은 글쓰기의 굴레
결국 난 또다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작년 공모전 이후 글쓰기와 내 자아를 분리해 보고자 잠시 휴식기를 가지기로 결정하고선 1년도 채 되지 않았다. 당시 생각은 나의 글이 에세이로는 아닌가 보다,라는 체념에 사로잡혔다. 기사 조금 써봤다고 낭랑하게 에세이를 써보려 한 스스로가 우매하다 여겨졌다.
글쓰기와 관련된 주제를 잡고 에세이 쓰기를 시작해 본 건데 그것에 대한 글만 쓸라치면 어느새 하소연만 해대는 문장들이 담겨버렸다. 이런 비성숙한 글을 누가 보려나, 하는 자조까지 더해졌다.
글쓰기 휴식기를 가지는 동안 논술 과외를 다시 시작했다. 아이가 중학생이 되니 시간적 여유가 조금은 생겼고 그렇다고 서울로 취재 갈 정도의 시간은 아니었기에 집 근처에서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과외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초등학생, 중학생들과 그네들 학년에 맞는 기사 글과 수능 지문을 읽으면서 깨달았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살아야 하는 것이 맞는구나,라고. 아이를 키우기 전과는 체감이 다른 사명감으로 학생들을 지도하며 그들과 함께 읽고 쓰는 시간 속에서 또다시 ‘읽고 쓰는 재미’에 빠지게 되었다. 다시는 그럴 일 없겠거니 했는데 말이다.
글쓰기를 좀 쉬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을 땐 1443년 훈민정음을 창제하신 세종대왕껜 죄송하지만 한글이 싫어질 정도로 극에 달한 미움의 마음이 있었다. 귀로 들어오는 말도 한글보다 영어를 듣는데 더 집중했고 가끔 SNS에 올리는 짧은 토막글도 영어로 적어 올렸다. 이러다 글 쓰는 방법을 까먹겠다 싶은 순간도 있었다. 남들이 보면 저렇게까지 유별나게 왜 저러나 싶겠지만 그만큼 글쓰기와 난 오랜 시간 애증의 관계였고 지금도 그런 상태에서 완전히 벗어나진 못했다.
글쓰기와 나 사이의 지랄 맞은 관계. 무심히 끊어내려 해 봤으나 독하지 못해 어벌쩡하게 다시 키보드 앞에 앉은 내 모습을 발견한다. 이젠 피할 수 없으면 즐기는 방향으로 다시 마음을 잡았다. 게다가 브런치에서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라는 모양 좋은 배지까지 달아줘 그동안의 사적인 글쓰기가 헛된 것만은 아니었구나,라는 보상심리까지 충족된 듯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글쓰기를 통해 희로애락에다 ‘애오욕’까지 맛봤으니 이 정도면 운명인가 싶다. 글쓰기를 향한 애오욕, 즉 사랑 증오 욕심의 감정까지 경험해 봤으니 앞으로 나의 글쓰기는 더욱 풍성해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머릿속에 떠도는 생각들을 잘 정리해 밖으로 끄집어내어 아름다운 한글로 단정하게 또박또박 적어보리라. 글을 봐주시는 분들이 글을 통해 재미와 공감을 느끼고 위로까지 받아간다면 그것만으로 나의 글쓰기 목적은 달성한 것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