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희성 Dec 25. 2018

글을 쓰고 싶지만 도저히 시작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퇴근 후 글을 쓰면서 일어난 변화들

하루 종일 바쁘게 돌아다니며 취재하고 기사를 쓰다 집에 오면 노트북을 켜기도 싫은 날들이 대부분이다. 한 끼도 제대로 못 챙겨 먹을 정도로 바빴던 날엔 활자 자체를 쳐다보기도 싫어진다. 이런 때는 대부분 자극적인 영상들을 멍하니 보고 싶은 마음뿐. 쓰고 싶은 이야기들은 많지만 쓸 생각만 해도 피곤해 퇴근하고 나면 대부분 넷플릭스를 보다 잠이 든다. 이것이 여태껏 나를 위한 글쓰기를 하지 못한 이유이자 핑계다.


어느 날, 반복되는 일상에서 의미를 찾고 싶어 졌다. 인생이란 뭘까, 란 주제가 온종일 나를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몸도 마음도 지쳐 퇴근 후 책상에 앉을 기력이 없었던 나는 지하철에서, 샤워하다가, 길을 걷다가 불쑥 떠오른 단상들을 그때그때 메모하기 시작했다. 펜을 들어 메모지에 적을 에너지도 없는 내게 아이폰 메모장은 최고의 아카이브가 되었다. 사념들을 메모하다 보니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더욱 강렬해졌다. 하지만 결심만으로는 잘 되지 않았다. 무언가를 쓰는 일에는 역시 시간과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니까.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해놓고도 한동안 이 공간을 내버려둔 이유다.


그날도 여느 날과 비슷한 하루였다. '50일 1주 1회 글쓰기 모임'에 관한 글을 발견했다는 것만 빼고. 하루 15분 독서 모임, 하루 3줄 영어 일기 쓰기 등 다양한 모임을 운영하는 '경험수집잡화점'이라는 이름의 브런치. 평소 같았으면 그냥 지나쳤겠지만 잠재된 글쓰기에 대한 욕망이 시선을 고정하게 만들었다. '50일 1주 1회 글쓰기 모임 멤버를 모집합니다'라는 글이 자기 전까지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고 나도 모르게 덜컥, 신청해 버렸다.


매주 1회 글을 쓰고 오픈 채팅방에 링크를 공유하는 방식. 일주일에 한 번 글을 쓴다는 건 생각만 해도 너무 빡세게 보였기 때문에 솔직히 내가 지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다가 힘들면 슬쩍 하지 말지 뭐, 솔직한 심정은 이랬다. 안 한다고 해서 누구 하나 뭐라고 할 사람도 없으니까. 글쓰기 모임 채팅방에는 자신의 글을 공유하는 URL이 하루에도 몇 번씩 올라왔고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글쓰기 신경이 자극되는 것 같았다. 참으로 신기하지, 대체 이게 뭐라고. '안 써도 누가 뭐라고 하겠어'에서 '뭐라도 쓰자'로 글쓰기에 대한 마인드 세팅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어느 날 오랫동안 방치해 두었던 노트북을 열었다. 아이폰 메모장을 뒤적거려 지금 가장 마음에 와 닿는 메모를 브런치에 붙여 넣었다. 출근길에 떠오른 단상을 끄적여 놓은 두 줄의 메모는 단숨에 한 편의 글로 불어났다. 막혀 있던 물꼬가 터지는 느낌이었다. 무슨 글을 쓰려고 했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하고 싶은 말을 토해내다 보니 글이 스스로 결론을 찾아갔다. 대략적인 개요라도 설계해놓고 쓰는 게 좋은 글을 위한 방편이라 배웠지만 나는 그렇게 쓰는 스타일은 못된다. 그냥 내 식대로 쓰기로 했다. 너무 완벽하게 하려 하지 말고, 내가 즐거운 방식으로, 지금처럼, 이렇게. 그래야 1주일에 1번씩 글을 쓰는 게 가능할 것 같았다.  


마침내 첫 번째 글을 발행하고 채팅방에 URL을 공유했다. 댓글이 달릴 때마다 울리는 알람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렸다. 이상하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구독자도 별로 없고 내 글이 노출될 확률도 낮아 누군가가 댓글을 달 확률도 거의 없는데. 기분 좋은 알람의 주인공들은 글쓰기 모임을 함께하고 있는 멤버들이었다. 나는 회사에서도 매일 기사를 쓰지만 내가 쓴 기사에 대한 반응을 접할 일은 드물다. (만약 독자로부터의 피드백이 있다면 그것은 악플일 확률이 높다) 내가 쓴 글에 대한 피드백을 이렇게 단시간에 많이 받긴 난생처음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관심받는 걸 좋아하는지,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으레 그런 건진 모르겠지만 내가 쓴 글에 대한 다른 이의 반응은 내 안에 있는 말들을 더 쏟아내고 싶게 만들었다. 이로써 나는 앞으로 글을 쓸 또 하나의 동력을 얻었다.


내 경험을 바탕으로 분석해본 글쓰기 습관을 기르는 원칙은 다음과 같다.  


1. 글쓰기를 함께할 사람들을 만나라

찾아보면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에 각양각색의 글쓰기 모임이 많다. 그중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택하면 된다. 글쓰기 모임이 많다는 것은 당신처럼 글을 쓰고 싶지만 도저히 실천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는 이야기다. 같은 목표를 가진 이들은 서로에게 든든한 지원군이 된다. 당신이 포기하려고 하는 순간 자극을 주고 격려해줄 것이다. 오프라인 글쓰기 모임을 해야만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편견은 버려도 좋다. 시간을 내기가 어려운 이들이라면 온라인 모임도 충분히 도움이 된다.  글쓰기 모임에 가입한 순간부터 당신은 뭐든 쓰게 될 것이다.   


2. 한 단어라도 좋으니 떠오르는 대로 메모하라.

지하철에서 환승하다가, 길을 걷다가, 샤워하다가도 문득 좋은 문장이 떠오를 때가 있다. '그래, 이런 내용으로 써봐야겠다'하며 승자의 미소를 짓기도 잠시, 조금 전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 잊어버려 자책할 때가 많다.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기록해 두지 않으면 사라진다. 메모장에 한 줄, 한 단어라도 메모할 것. 굳이 손으로 써야 한다는 강박은 버리는 것이 좋다. 나 같은 경우는 메모장을 들고 다니는 게 귀찮아 아이폰 메모장을 주로 활용한다.


3. 글감은 나와 가까운 곳에 있다.

글을 쓰고 싶은데 무슨 글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이들이 많지만 자기 자신에게로 눈을 돌려보면 글감은 어디에나 있다. 오늘 하루의 일과, 오늘 중 인상 깊었던 일, 오늘 나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찬찬히 되짚다 보면 문득 하고 싶은 말이 떠오를 것이다. 자신의 직업과 관련한 글을 써보는 것도 좋다. 2018년 12월 기준 33만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는 컴퓨터 수리 유튜버 '허수아비'의 인터뷰가 떠오른다. 한 컴퓨터 브랜드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그는 누구나 쉽게 컴퓨터를 조립하고 수리할 수 있도록 관련 영상을 올린다. 그걸 본 아내가 그랬다고. "컴퓨터 고치는 걸 왜 볼까? 그래서 저도 그랬습니다. 그러게, 이걸 왜 볼까?" 자신의 일이나 일상과 관련된 글을 막상 쓰려고 하면 너무 소소하거나 평범하다는 생각이 들어 쓰기가 망설여지기도 한다. '이게 무슨 글감이 된다고...' 당신이 감명 깊게 읽은 누군가의 대단한 스토리도 모두 누군가의 사소한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당신의 내면에 귀를 기울이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나 둘 꺼내 보라.



좋아하는 서점에 들러 책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글감이 떠오를 때가 많다. 점심 먹고 하릴없이 자주 가는 서점 @PARRK



1주일에 한 번, 50일 동안 무언갈 쓰다 보니 이제는 쓰는 게 당연한 상태가 됐다. 생각에도 가속도가 붙어 쓰고 싶은 이야기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보고 듣고 경험하는 모든 것이 글감이 되는 신기한 체험도 하고 있다. 낮에 쓰는 글은 잡지 에디터라는 직업 덕분에 접하는 새롭고 아름다운 것들을 흥미로운 앵글로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둔다면, 퇴근 후에 쓰는 글은 소재가 무엇이든 '나'를 향한다. 매일 보고 듣는 다양한 세계를 나와 연결시키면서 생각의 폭이 확장됐다. 퇴근 후 글쓰기는 나를 둘러싼 세계를 미묘하게 변화시키며 성장하게 만들었다.


6개월 후에, 1년 후에 나는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가끔은 순식간에 글을 써 내려가고 대부분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민한 시간들. 그곳이 어디든 나를 더 좋은 곳으로 데려다 줄 거라고 믿는다.






무언가 하고 싶은 게 있는데 '난 재능이 없어서 못해'라는 생각해본 적 있으시죠? 내일 오전 8시에는 소담한 하루 작가님이 '재능이 없어서 못하는 거라 말하는 당신께'라는 주제로 성장담을 공유할 예정입니다. 나이도, 직업도 다양한 7명이 펼쳐내는 성장 스토리. 매일 오전 8시 발행되는(주말 오전 11시) 성장의 비결이 궁금하다면 매거진 구독을 눌러주세요. 한 뼘 더 성장할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