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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성 Jan 01. 2019

힘주는 것보다 힘 빼기가 더 어렵다

멈춰서 들여다보면 보이는 것들  

잡지 에디터의 숙명은 '마감'을 끊임없이 견뎌야 한다는 거다. 마감 중에서도 극한의 기간이 있다. 미식도 취미도 다 포기한 채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욕구만 채우면서 꾸역꾸역 기사를 토해내는 때. 마치 식물이라도 된 듯 몸이 버석버석 말라버린 느낌마저 들 정도로 쥐어짜 내던 마감 한가운데의 어느 날,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는 원고와 씨름하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모든 것이 포화 상태였다. 일주일 넘게 책상 아래 처박아두었던 요가복을 챙겨 요가원에 갔다. 저녁 9시 리프레시 릴랙스 시간. 불과 5분 전까지만 해도 1분 1초가 급한 마감 모드의 나는 시간이 매우 느린 속도로 흘러가는 듯한 전혀 다른 시공간에 와 있었다. 속 시끄러운 곳에서 한 발짝 나와 고요한 공간에 오니 가파르게 뛰고 있는 심장 박동이 비로소 내 귀에 들렸다. 매트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눈을 감았다.


"이완하는 것도 연습이 필요해요"


쉴 새 없이 울리는 핸드폰, 비워도 비워도 꽉 차는 웹하드, 아무리 정리해도 금세 수많은 자료들로 어질러지는 책상, 촬영한 화보 데이터와 원고를 한시라도 빨리 내 손에서 떠나보내기 위해 고군분투한 시간들. 어느새 나는 이완하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이 되어 있었다.       


"힘주는 것보다 힘 빼는 게 더 어려워요"


동작을 하는 내내 나도 모르게 자꾸만 어깨에, 얼굴에 힘이 들어갔다. 한숨을 고르고 잔뜩 경직된 어깨에 힘을 덜어냈다. 턱에 힘을 풀어도 잠시, 다음 동작을 이어가다 보면 어느새 또 입을 앙 다물고 있었다. 그동안 미처 자각하지 못했는데 힘 빼기는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학교 다닐 때도, 취업 준비를 할 때도, 일을 하면서도 힘주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이 능사라고 생각했다. 힘 빼기의 기술을 익힐 새도, 이완의 중요성을 깨달을 틈도 없었다. 얼굴에 잔뜩 힘을 주는 오래된 습관이 있는지도 오늘에서야 알았다. '힘 빼기는 힘주는 것보다 더 어렵다' 요가 클래스가 끝날 때까지 이 말을 되뇌었다.


 

모든 것이 느린 속도로 흘러가는 곳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멈춰야만 볼 수 있는 것들도 있다. 잠시 고삐를 풀면 놓치고 있던 것들이 눈에 보이기도 한다. 힘을 빼고 잠시 쉬다 보면 추진력이 필요할 때 더 힘차게 달려 나갈 수 있다.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해결책이 떠오르기도 한다. 어렵게만 보이던 일이 다른 시선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5시간 고민해도 안 풀리던 일이 5분 만에 획기적으로 해결되기도 한다. 요가 클래스에서 이완을 연습한 후 깨달은 삶의 법칙 중 하나다. 마감 기한이 다가올수록 스퍼트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도무지 일의 진도가 안 나간다면 잠시 멈춰서 심호흡을 하는 게 더 도움될 때가 있다.


힘 빼기의 중요성을 깨닫고 난 뒤에는 나만의 '이완 루틴'을 만들었다. 일이 잘 안 풀릴 때 실행하는 몇 가지 방법을 소개하자면...


진도가 안 나가면 '천재 샤워'를

샤워를 하다가 갑자기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오르거나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나는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는 이를 '천재 샤워'라 부르는데 늦은 시간까지 일을 하다 도무지 일이 잘 안될 때면 샤워를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줄곧 왜 그럴까 궁금했는데 현직 한의사가 쓴 '화장실에서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는 이유는?'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꽤 그럴싸한 이유를 발견했다. 화장실이나 욕실에서 기억이나 사고력이 좋아지는 이유 중 하나는 '개인적 공간이 주는 이완의 효과'다. 화장실에 들어감으로써 우리는 늘 의식하기 마련인 타인의 시선이나 쓸모없이 넘치는 정보에서 벗어나 긴장의 끈을 잠시나마 내려놓을 수 있다고. 몸속에 쌓인 노폐물을 배출하거나, 따뜻한 욕조에 몸을 담그면 일상의 긴장이 사르르 풀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몇 날이고 전전긍긍하느라 쌓인 긴장이 욕조에 몸을 담그면서 풀어졌을 것이고, 그 이완의 상태에서 여태 수 없이 그냥 지나쳤던 현상이 눈에 딱 들어왔으리라 생각합니다. 긴장으로 인해 좁아졌던 사고가 이완을 통해 확장되면, 각 영역의 통합적 사고가 좀 더 원활하게 일어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사고의 스파크도 일어나는 법이지요.'   


좋아하는 향의 핸드 워시로 손 씻기

도저히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면 당신의 몸을 환기시킬 때다. 회사와 가까운 편의점에 다녀와도 좋고 주위를 잠깐 산책해도 좋다. 그럴 짬이 안 난다면 하다못해 손이라도 씻어보라. 막혀있던 기획안이나 글이 술술 써지는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나는 이솝 레저렉션 아로마틱 핸드 워시를 좋아해 사무실에 구비해두었다. 차가운 물에 손을 씻으며 좋아하는 향을 맡는 건 그 자체로도 뇌가 이완되고 기분이 좋아진다. 핸드크림은 여러 종류를 놓아두고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바른다.


코타츠 위에 있는 핸드크림 소환. 향도 제형도 다양한 핸드크림을 여러개 두어야 마음이 편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기

아무리 완벽하게 하려고 해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실수를 피할 수 없다. 아무리 꼼꼼하게 봤다고 생각하는 원고도 보면 볼수록 고칠 게 나온다. (만약 마감이 없었다면 무한정 고칠 수도 있을 만큼!) 머리가 포화상태가 되면 틀린 부분이 잘 안 보일 때가 많은데 그럴 때마다 내가 사용하는 방법이 있다. 요령이 없던 시절에는 프린트로만 3번 점검했다면 이제는 같은 파일을 프린트로 1번, 모니터로 1번, 핸드폰으로 1번 보는 것이다. 분명 프린트로 볼 때 아무 이상 없던 원고를 다른 기기로 봤을 뿐인데 고쳐야 할 부분이 눈에 잘 들어온다. 종이책과 전자책을 볼 때 뇌에서 인지하는 법이 실제로 다르다는 연구들이 이 방법의 효율성을 뒷받침한다. 화면으로 글을 읽을 때는 대강 훑어보게 되고 가로가 아니라 세로로 읽는다. 종이책을 읽을 땐 맥락을 파악하려 한다고. 시간에 쫓기느라 진도 나가는데 급급하는 대신 잠시 멈춰 이렇게도 보고 저렇게도 볼 것.


반려식물 입양하기

몇 달 전 자주 가는 편집숍에서 마음을 끄는 식물을 발견해 입양한 적이 있다. 식물을 제대로 키워본 적이 없는 나의 반려 식물 이름은 틸란드시아 사이아네아. 에콰도르 열대우림이 원산지로 고온다습한 환경을 좋아하는 녀석을 회사 책상에 놓고 기르기로 했다. 안 풀리는 문제를 고민하다 보면 모니터 옆에 놓아둔 녀석이 눈에 띄어 한 번씩 물을 주곤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물을 주고 나면 원고가 술술 써지는 것이다! 나중에 궁금해서 찾아보니 관상식물을 키우면 사고와 기억력을 주관하는 부위의 활동력이 두드러지게 증가한다는 연구가 있었다. 식물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뇌 기능이 활성화된다고 한다. 당신이 기르는 반려 식물이 영감을 가져다줄 것이다.


가끔씩 보라색 꽃을 피워서 나를 놀라게 했던 반려 식물.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애쓰지 않기. 잘하려고 애쓰다 보면 절로 힘이 들어가게 되고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할 때가 많다. 부담감과 압박이 나를 짓누르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니까. 잘 해내고 싶을수록 애쓰지 말고 잠시 눈을 감아보라. 그리고 한 번도 쉬지 않고 박동하는 심장, 호흡하는 폐를 느끼며 내쉬는 숨마다 긴장감을 내뱉아 보라. 이완하는 법을 터득하면 생각보다 더 많은 것들을 해낼 수 있다.





책을 읽는 것에서 한 발짝 나아가 서평을 쓰면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내일은 3개월 동안 33편의 서평을 써본 소담한 하루 작가님이 '책을 읽고 기록하면서 마주하게 된 성장'이라는 주제로 성장담을 공유할 예정입니다. 나이도, 직업도 다양한 7명이 펼쳐내는 성장 스토리. 매일 오전 8시 발행되는(주말 오전 11시) 성장의 비결이 궁금하다면 매거진 구독을 눌러주세요. 한 뼘 더 성장할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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