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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형 인간 vs. 저녁형 인간

오랜만에 올빼미로 복귀한 아침형 인간의 소감

by 김희성

어른이 된 후 나에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를 들라고 한다면 '아침형 인간'이 된 것이다. 실로 아침형 인간이 된 후로 삶의 많은 부분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저녁형 인간보다 아침형 인간의 삶이 더 낫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말 그대로 '많은 부분'이 바뀌었고 그 중에서는 꽤 만족하는 변화도 있는 반면 아쉬운 점도 있다. 바뀐 편이 더 나은지 어떤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알 것 같다.


나는 꽤 오랫동안 자정이 되면 '자 이제 시작해 볼까' 하고 새롭게 업무를 시작하는 뼛속까지 저녁형 인간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원래부터 그랬다기 보다는 잡지사에 근무하는 피처 에디터라는 근무 환경에 자연히 저녁형 인간으로 조련되었던 것 같다. 마감 기간에는 일하기가 싫어 저녁 식사를 최대한 오래도록 하고 난 후 20시부터 사무실에 복귀해 야근을 시작한다. 그러다 지하철이 끊기기 전 부랴부랴 짐을 싸서 간신히 퇴근을 하기도 하지만, 아직 내야 할 원고가 남았을 경우 23시에서 자정 즈음에 야식으로 치킨이나 피자를 시킨 후 다시 원고를 쓰기 시작해 새벽 2~4시까지 일을 하는 패턴이었다.


모두가 매일 그렇게 일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략 한 달에 일주일 정도는 그런 패턴으로 지냈다. 최종 마감 전전날이나 바로 전날 같은 때는 다음 날 동이 트기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때도 많았는데, 그럴 때면 '에라이 맥모닝이나 먹고 하자'며 새벽 5시에 맥모닝을 한 번 시켜 먹고 또 일을 하는 식이었다. 지금에 와 돌이켜보니 그렇게 일하고도 쓰러지지 않고 잘 버텨낸 내 몸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여기서 몇 가지 특이점.


1. 야식 메뉴가 거의 치킨이나 피자, 맥모닝이었던 이유

너무 선사시대 이야기 같긴 한데, 처음 잡지사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배달 앱 같은 건 없었기 때문이다. 면접볼 때 '아이폰 써 봤어요?' 같은 질문을 받았을 시절이니까. 피처폰이 아니라 스마트폰 유저라는 사실만으로도 얼리어답터로 추앙받던 시절이었다. 그 때 새겨진 몸의 기억 때문일까. 이후 배달앱이 보편화돼 선택지가 많아졌지만 결국 가장 익숙한 메뉴를 택하곤 했다.


2. 지금에 와 회고해보니 과로사 해도 이상하지 않은 스케줄이었다. 대체 왜 그렇게 일했을까?


몬스터를 때려 넣으며 일하던 시절.


밤 10시에 잠자리에 드는 지금에 와 돌이켜보니 그 시절이 아득한 전생처럼 느껴진다. 빠를 때는 8시에 집 안의 불을 다 끄고 잘 준비를 하는 생활에 익숙해졌으니 말이다. 이제는 아침 7~8시쯤 일어나 커피와 함께 간단한 아침을 먹으며 나만의 고요한 시간을 즐긴 뒤 업무를 시작해 저녁 먹기 전 컴퓨터를 끈다. 초집중을 해야 하는 원고가 있거나 밀린 일들이 있으면 야근 대신 새벽 5시쯤 일어나 책상에 앉는다. 사람이 이렇게 한 순간에 바뀐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 중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 일이 있었다. 다니던 매체에서 새로운 매체로 이직을 했는데, 잡지의 성격이 달라 그간 다루던 분야가 아닌 새로운 영역을 파야했다. 기획회의부터 알아들을 수 없고 단어 하나하나 모두 생소해 당연히 원고 진도도 안나갔다. 매일같이 야근을 해도 도무지 끝이 안나고 원고를 내야 할 기한이 다가오는데도 마무리가 안되니 마음이 불안해 선배들이 출근하기 전에 회사에 가 미처 끝내지 못한 원고를 고치고 고쳤다. 그렇게 몇 주, 몇 달을 하다보니 나는 저녁보다 아침에 집중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 밤에는 보이지 않던 오류도 보이고, 두뇌회전도 빠르게 잘 돌아갔다. 그 때의 경험으로 나는 아침형 인간일 수도 있겠다는 걸 처음으로 자각하게 됐다. 이후로 매체를 몇 군 데 더 옮기며 올빼미 생활은 이어졌지만, 아침에 집중이 잘 되는 기분을 잊을 수가 없어 프리랜스 에디터로 전향 후 온전히 나의 페이스대로 아침형 인간으로 살고 있다. (아침형 인간이 되는 방법은 언젠가 정리해볼 예정이다)


새삼스럽게 아침형 인간이니 저녁형 인간이니 하는 단어를 이야기하는 건 정말이지 오랜만에 자정 넘은 시간에 깨어 있기 때문이다. 사유는 마감해야 할 원고가 있어서. 아침형 인간이 된 이후로는 아무리 해야 할 작업이 밀려 있어도 저녁을 먹고 나면 통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 탓에 과감히 모니터를 끄고,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집중해 원고를 쓰는 것을 택했는데 오늘은 하루종일 아무것도 한 게 없다는 생각에 잠들기 전 어설픈 초고라도 마무리하고 싶었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밤 늦게 깨어 있는 기분이 꽤나 좋다! 남들 다 자는 시간에, 아무도 연락하지 않는 시간에 홀로 불빛 아래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이 몰입감. 몇 년만에 느껴보는 것인지 모르겠다. 역시 고요한 밤이 주는 예술적 영감이 확실히 있다.


물론 이른 새벽의 고요함이 주는 힘도 사랑한다. 새벽 5시쯤 일어나 모니터 앞에 앉으면 아침 특유의 차갑고 선선한 공기, 아침 일찍 일어난 사람만이 맡을 수 있는 이른 아침의 냄새 같은 게 있다. 모두가 잠들어 있는 시간에 남들보다 먼저 일어나 무언가를 한다는 느낌, 고요한 적막, 아침의 기운은 아직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무언가 해냈다는 효능감을 불어 넣어준다. 일찍 일어나 원고를 쓰면 평소 보이지 않던 비문도 보이고, 도무지 풀리지 않던 글의 진도도 술술 나간다. 무엇보다 성취감이 크다.


남향집으로 이사온 이후 아침에 눈이 저절로 떠진다.


늦은 밤의 고요는 아침의 그것과는 또 다른 에너지가 있다. 카페인으로 한껏 끌어 올린 텐션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떨어져 머리가 살짝 몽롱하기도 하지만, 그 상태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생각들은 글로 옮기기 좋다. 생각의 타래를 풀어놓기가 좋은 시간이다. 말도 안되는 문장, 이상한 맞춤법이 섞여 있을지라도 일단 머릿 속 생각을 쭉 풀어놓고, 꼬인 실타래를 하나하나 펴는 작업은 이른 아침에 하면 된다. 한 문장이라도 써 본 사람은 공감하겠지만 한 편의 글을 완성하려면 일단 아무말이라도 진도를 나가는 것이 중요하니까. 이른 아침의 말끔하게 정돈된 뇌로 전날 밤 술 취한 상태에서 쓴 연애편지 같은 오그라드는 문장은 과감히 날리면 된다. 너무 개인적인 감상은 오려내고 늘어지는 문장은 기워내며 깔끔하게 다듬는다. 대신 아침의 차가운 뇌는 자유분방한 생각의 타래를 풀어놓기 어렵다. 쓰다가도 자꾸 지우고 만다.


몇 년만에 저녁형 인간으로 밤을 지새며 깨닫는다. 그동안 무언가를 쓸 수 없었던 이유. 아침형 인간으로 살았기 때문이라고 하면 너무 핑계 같아 보일까. 내면이 텅 비어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쓰고 싶은 말들이 많았지만 스스로의 검열에 걸려 하고 싶은 말들을 아끼고 있었다. 뭐 아침을 탓하기엔 매일 새벽에 일어나 달리기를 하고 글을 쓰는 루틴을 이어가는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작가도 있지만.


아, 오랜만에 새벽 2시에 가 있는 시침을 본다. 맹물만 홀짝이고 있는데, 와인이라도 마신 듯 취한 것 같다. 간신히 카페인 발로 버티고 있던 텐션이 급격히 떨어져서 취한 느낌이 드는 것 같다. 그냥, 아주 가끔은 이렇게 밤에 홀로 깨어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 놓은 와인이 없어서 아쉬운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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