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모든 게 버거워졌다
이사와 입주
입주기간이 나왔고, 잔금대출을 해 줄 은행들이 정해졌다. 1~2 금융까지 우대 조건과 이율이 다양했는데 2 금융권인 새마을금고, 지역농협, 수협, 축협 등은 1 금융권인 은행보다 대체적으로 이율이 많게는 1%까지 저렴했다. 물론 짧은 주기로 변동금리 상품이었지만 당시에는 입주민 카페에서 너도나도 오픈런해서 해당 지점에 방문할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조금이라도 이자를 아낄 수 있다면 오픈런 따위가 문제겠는가.
하지만 미리 문의해 보니 공동명의자는 반드시 둘 다 지점에 방문해야만 했다. 나에게는 선택지가 확연히 줄어드는 순간이었고, 이율이 비싸더라도 나 혼자 방문해도 대출을 승인해 줄 은행을 찾아야 했다. 다행히 분양사가 지정한 은행에 남편의 해외 체류를 설명했더니 공동명의자의 대출 계약에 대한 담보 제공을 확인하고, 계약에 대한 위임을 위한 공증 절차를 거치면 대출 신청을 받아주겠다고 했다. 원래는 남편이 체류지의 한국대사관에 방문해 본인 및 서명확인을 받고, 원본 서류를 DHL 같은 특송을 통해 받아 기간 내에 제출해야 하는 등 절차가 더 복잡했는데,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 절차가 허용되던 시기라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잔금을 치르는 당일 오전 9시까지 대출 실행에 문제가 생길까 봐 마음을 졸인 건 덤이다. 짧게 설명했지만 입주 준비 중에 대출을 받는 것이 스트레스가 가장 컸다. 여차하면 남편에게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한국에 들어오라고 해야겠다 생각했는데, 의지를 갖고 있으면 뭐든 방법은 찾아진다고 했던지 잘 해결이 되었다.
또한 나에게는 입주 전 조명, 줄눈, 입주청소, 추가 수납장 설치, 천장형에어컨 설치, 가전가구 구비 등 또 다른 미션들이 넘쳤고 모든 업체의 서칭, 컨텍, 결제, 확인 등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입주자 카페에 올라오는 글들을 보니 우리 남편이, 우리 아내가~ 하면서 입주 가전 가구도 같이 보러 다니고, 박람회 등을 통해 공동구매를 하는 이웃이 넘쳐나서 너무 부러웠다. 하지만 코로나의 상황 때문에 한국에 들어오질 못하니 남편에게 화를 낼 수도 없었고 카톡으로, 통화로 잠시 잠깐 공감해 주는 듯 한 말들은 하나도 힘이 되지 않았다. 그저 빨리 이 시기가 지나가길 바랐다.
이사 당일에 부동산에 방문해 전세금을 돌려받았고, 중도금을 상환하고 잔금을 납부하며 큰 산을 넘었다. 관리사무소에 방문해 잔금확인증을 내고 새집의 키 세트와 입주 선물을 건네받는데 이 순간도 함께 할 수 없다니 너무 외로웠다. 이날 엄마가 함께 해 주셔서 너무 다행이었다. 좁은 신혼집에서 보다 넓은 신축 아파트로 이사를 온 게 믿기지 않았다. 이삿날 밤에도 내 옆에 남편은 없었고, 다시는 혼자 이사와 입주를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과 함께 너무 힘들어서 그냥 지쳐 잠들었던 기억이 난다.
나의 주말은 진짜 길다
코로나가 창궐한 지 일 년 반 정도 지나니 이제 별일이 아닌 별일이 돼버렸고, 뉴스에서도 질병대책본부의 브리핑을 일상적 보도로 내보냈다. 마스크는 항상 여분을 챙겨 다녔으며 손소독제와 알코올스왑도 파우치 안에 자리했다. 회사에서도 제도적으로 재택근무를 운영해서 주 2~3회는 집에서 혼자 근무했다. 그렇다 보니 미팅이 없는 날엔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 날도 있었다. 일과 중에는 남편과 카톡으로 연락을 주로 했지만 시차가 있어 나와 그의 저녁 식사 시간이 달랐고, 내가 잠들 때 즈음 그는 업무를 마치고 쉬는 패턴이었다.
주중엔 그래도 규칙적인 내 일상이 있으니 덜 외로웠는데, 주말이 참 힘들었다. 남들은 주말을 기다린다고 하지만 나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어딜 가도 다 남편, 아내, 아이, 연인과 함께인 사람들뿐이었다. 이마트를 가도 주말에 혼자 장을 보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 같았다.
드라이브도 혼자 자주 했다. 남편이 주재원 발령을 받기 전 내 명의의 차를 구입해서 운전연습을 해두길 참 잘했다고 생각한다. 모든 걸 혼자 해내야 하는 내게 이동의 자유마저 없었다면 진짜 더 우울했을 것 같다.
주말이면 집에만 있기가 싫어서 근교 카페로 드라이브를 나갔지만 그곳에서도 여전히 혼자는 나뿐이었다.
가족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기도 했는데 그렇다고 외로움이 덜 한 건 아니었고, 오히려 내 배우자만 가족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기에 그 빈자리가 더 도드라졌던 것 같다.
이 시기에 초보운전의 딱지도 뗐고, 드라이브에 맛이 들어 차를 바꿀까 고민했었다. 혼자 신차를 알아보러 갔다가 지금 신청해도 내년에 받아볼 수 있다는 답변을 들었고, 집에 와서 중고차 어플을 깔아 미친 듯이 구경했다. 그런 뒤 장바구니에 담긴 수천만 원 차량의 취득세까지 보고 살포시 어플을 삭제했다. 이 돈이면 원금을 갚고, 이자를 줄이자는 현실적인 생각이 내 욕망을 이겼다.
이렇게 살 필요 없었는데 아끼고 아끼며 빚만 갚던 과거의 내가 미련 맞은 멍청이 같아 보인다. 누군가 나와 비슷한 고민이나 상황에 처해있다면 일단 너 자신을 먼저 챙기라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