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치의 시간
타인의 손때가 묻은 물건을 받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낯선 듯 익숙한 골목으로 어쩌다 들어섰다. 그리고 이내 길을 잃었다.
골목을 걸었다. 네비로 쉽게 길을 찾을 수 있었지만 조금 더 자기 자신의 힘을 믿고 싶었다. 이것은, 길치라는 오명을 씻을 절호의 기회였다.
고양이를 보다가 길을 잃었다. 꽃을 보다가 길을 잃었다. 쓰레기를 보다가, 대문을 보다가 길을 잃었다. 길치가 길치인 이유는 따로 있지 않았다. 한참 길을 헤맸다.
결국 스마트폰을 사용했다. 길치는, 타자의 안내 없이는 결단코 목적지에 갈 수 없었다. 매번 겪는 불편한 일이었다. 그러나 어쩌다 마주친 순간들의 결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감각들이 불편한 아름다움을 선물하고 있었다.
오명이라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