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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캥거루 Jun 14. 2019

첫 상처의 기억

그 옛 첫사랑, 기대와 실망

스무 살, 첫사랑이었다.
신입생, 자유로움에 대한 신기함은 있어도, 딱히 어떤 누구에게도 관심은 없었고,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의욕도 없었다. 아마 내게 주어진 자유를 즐기는 방법과 널려있던 기회들을 몰랐던 터라, 여러 술자리를 비롯한 어떤 기회들도 내겐 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일종의 일들이라 생각하면서 별 의미를 두지 못하고 지나쳐왔다.
     
 그 와중에 어느 여자가 있었다.
 집이 같은 방향이라며, 술자리가 끝나면 나를 찾았고, 무슨 무슨 날이라며 생전 받아보지 못한 선물을 부끄럽게 챙겨주기 시작했다. 새로워 신기했다. 생각하면 그게 ‘첫’이었겠지. 그러한 것들이 서로 서툴게 이어졌다. 그러다 또 어느 술자리를 마치고 어지러워 잠깐 역 앞 벤치에 같이 앉았던 어느 날, 나는 처음으로 여자의 손을 잡았다.
 
 어른 흉내를 내는, 서툰 연애를 시작했다.
 둘 다 너무도 몰라서 누군가가 봤다면 참 귀여웠을 그런 연애를 했다. 인사동에서 첫 데이트를 했고, 버스를 타고 안면도로 여행을 가기도 했고, 없는 용돈을 털어 선물을 주고받고 편지를 썼었다. 반년 동안 그런 순진한 연애가 이어졌다. 그렇게 반년을 어떤 문제도 없이 성공적인 성년의 생활을 이어간다고 생각하며 서로의 손을 잡고 학교를 다녔다.
     
 9월 어느 날, 내 생일날이었다.
 나는 그녀와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하필이면 총엠티날과 겹치기를, 여러 사람의 축하를 받자며 굳이 엠티를 택한 그녀를 끝내 설득하지 못하고 마지못해 따라가기로 했었다. 엠티 분위기에 이미 한껏 들떴던 그녀는 선발대로 먼저 출발을 했고, 나는 후발대로 따라가기로 했다. 공강 시간, 나는 마지막 남은 수업을 기다리면서 과방에서 홀로 쉬고 있었다. 두리번두리번거리다 책꽂이에 그녀가 두고 간 핑크색 파일이 눈에 띄었다. 심심한 마음에 꺼내 열어보다가,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발견했다. 어떤 A4용지 한 장에 내 이름과, 어떤 복학생 선배의 이름, 그리고 그 사람에 대한 감정과 나에 대한 감정, 미안함과 설렘의 갈등 상황, 아마도 새로운 사람에 대한 설렘에서 찾아온 혼란을, 그녀 나름대로 적어 정리해보려던 거였겠지 싶다.
     
 생각지도 못한 기습에 손이 벌벌 떨렸다.
 그건 사람에 대한 기대가 처음으로 어긋나던 때였다. 나의 감정만큼 그녀 역시 분명 나를 사랑할 거라 기대했었는데, 사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나의 마음만으로 움직일 수 있는 게 아님을, 지금은 알아도 그때는 몰랐다. 나는 벌게진 얼굴로, 부들부들 손을 떨면서 파일을 원래대로 정리하고 나왔다. 그리고 조용히 그녀가 있는 곳으로 갔고, 시끌한 술자리에서 그녀를 불러내 떨리는 목소리로 따져댔다. 그것마저도 실은 어설펐다. 처음으로 내 상기된 모습에 갑자기 울음을 터트리는 그녀를, 난 또 그냥 안았고, 금세 또 혼자 용서했지만, 얼마 후, 결국 그걸 계기로 내 첫사랑은 끝이 났다.
     
 한동안 미련을 미련하게도 이어나갔다.
 거기 적혀있던 상대방 선배를 찾아가 욕지거리를 하기도 했고, 그녀 집 앞을 찾아가 마냥 기다리기도, 깜깜한 새벽 보고 싶다는 문자를 보내보기도 했다. 어느 사람들의 말처럼 해보는 데까지 다해봐야 후회가 없다는 말을 순진하게 내가 믿고 싶은 대로 찾아 믿었다. 그러나 달라질 건 없었고 내가 내 자신에 실망하는 일만 계속될 뿐이었다. 그러다 결국 나도 제풀에 지쳐 미련스러운 일들을 줄여나갔고, 시간은 모든 걸 자연스럽게 해결해줬다. 생일날에 대한 트라우마라던지 그런 것들은 아직까지도 남아 있을지라도, 그날 그 상처의 기억은 이제와 돌아보니 내게 큰 가르침을 주었다. 실컷 솔직하게 쏟아낸 뒤에 찾아온 부끄러움이 기준이 되어 나는 지금껏 감정의 적정선을 유지하는 방법을 배워 왔음을, 이것이 내가 받은 첫 상처의 교훈이자 기억이다.
     
 나는 사람의 상처는 기대로부터 비롯된다고 본다. 사랑하는 당신이, 이건 합리적인 기대일 거라 착각한 나의 생각에 미치지 못할 때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은 상처를 받아왔다. 그것이 나의 가장 기본적인 가설이었다.  

 하지만 거듭된 누군가에 대한 기대감과 실망, 상처의 순환은 나의 감정선을 무디게 만들고, 또 그것이 싫어 나는 어른스러움으로 포장한 절제를 내세워왔다. 그리고 최근에는 아예 사랑에 대한 그러한 기대와 서운함을 애초에 거절했었다. 그래서 새로 누군가를 만나면 나는 ‘네게 어떤 기대도 하지 않아. 아무래도 좋으니 그냥 옆에 있기만 하면 돼. 그러니 너도 나에 대한 기대를 하지 마’ 또는 ‘세상에 당연한 건 없어’ 따위의 말을 하곤 했다. 나는 이러한 것들이 멋있다고, 성숙한 깔끔한 연애라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좋아. 나는 네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니 너도 내게 바라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러나 거듭된 연애의 실패 속에서 아무래도 잘못된 방향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고 있다. 우선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는 건 그저 나의 귀찮음이었다. 그리고 ‘내게 무언가를 바라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은 실은 나는 무언가를 바라는 모순적인 말이었다. 나의 모든 말들이 그저 의지가 없을 뿐인 나의 이기적인 마음이었구나 깨달았다. 기대와 실망감과 서운함 모두 다 자연스러운 인간관계의 핵심인 것을, 그러한 알맹이를 빼고 관계 속에서 또 외롭다 울부짖어왔었다. 참으로 멍청한 인간이었다. 아무튼 이제는 누군가에 대한 기대를 피하지 않아야겠다. 나의 다음 사랑은 치열하게 기대하고 또 서운한 연애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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