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니 뭐니 해도 강남

신입 사원이 되고 싶어서

by 오아

2006년,

스물세 살의 한 여자어딘가를 응시하며 우두커니 서있다.

청년이라고 하기엔 왠지 오그라들고, 어른이 되기엔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는 여자다.


눈치가 꽤나 빠르고, 복사 붙이기 능력이 뛰어난 여자는 불우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가정의 불화로 오랜 시간 돌봄 받지 못했으며

많은 이들의 도움을 통해 살았고, 때론 놀림을 당하기도 했다.


여자는 불우한 환경에 복수라도 하듯 유난한 사춘기를 보낸다.

가정의 불화 때문이라고 핑계되기엔 그 정도가 심했다.

가뜩이나 마음에 불이 꺼질 일 없는 엄마의 마음을 무참히 짓밟은 여자는

온 세상의 시선이 모두 제 것인 양 온갖 사고를 치며 더.. 더 주목받지 못해 안달한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걱정 어린 시선을 한 몸에 받았지,

여자는 자신이 처음 만든 그 세계가 조금은 마음에 든다.

최소한 여자의 존재를 알릴 수 있기 때문이다.


거짓 웃음, 거짓 행복일지언정 여자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기억되는 것이 좋았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는 것은 까맣게 잊은 채.


폭풍의 시간을 벗어나는 데는 적잖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때로는 넘어졌으며, 가끔은 일상을 되찾지 못할 것 같은 불안이 감싸기도 했다.


다행히도 이제 여자는 혼자가 아니었다.

조용히 주변을 밝혀준 온기 덕에 여자는 서서히 일상을 되찾아갔다.


못된 행실을 비난하지 않고 못 이기는 척 많은 것을 감내해 준 친구들,

너는 나의 성공 케이스라며 아무 가능성도 없던 여자를 치켜세워주던 선생님,

편견 없이 다가와 열정적으로 공부를 가르쳐주던 다정한 짝꿍,

머릿속에 세뇌될 만큼 '너는 잘 될 거야'라고 말해주던 여자의 엄마..


그들의 배려와 이해로 여자는 남들과 비슷한 일상을 다시 찾을 수 있게 되었다.


뒤늦게 공부를 시작한 여자는

어쩌면 남들과 같은 일상을 살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진다.

럴지도 모른다는 희망..

그것은 여자를 움직이게 했다.

조금씩 변화를 보이던 여자는 운 좋게 장학금까지 받으며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다.








그렇게 스물셋이 된 여자.

여자는 한껏 꾸민 채 어딘가를 응시하며 우두커니 서있다.

면접을 보러 온 것이다.


여자의 꿈은 '인테리어 디자이너'


20년 전 인기를 끌었던 '이경규의 러브하우스' 영향을 다분히 받았다.

꾀죄죄한 집과 가구들이 변하는 것이 신기했고

감동을 넘어 감격한 가족들의 표정이 인상 깊었다.


여자는 짧은 시간이지만

꿈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고 노력을 했다고 생각한다.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한 친구들의 넉넉한 주머니 사정과

멋진 옷차림이 자주 부러웠지만,

여자는 돈보다 직업을 가지고 싶어 했다.


'커리어 우먼'

상상만 해도 행복한 여자의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고층 빌딩 숲 사이를 걸으며 회의에 회의를 잇는 일상,

빳빳한 사원증을 목에 걸고 출퇴근하는 모습,

한 손에 커피를 들어야 하나? 여자는 상상만으로도 행복하다.


그렇다. 여자는 한껏 부푼 기대를 품고 이곳에 왔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강남에서라면 뭐든 잘할 수 있을 같았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상상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여자가 사는 경기도 외곽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오래된 상가

엘리베이터도 없는, 좁고 긴 계단이 여자 앞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곳이 강남의 회사라고?'

'그냥 갈까?'

'우리 동네도 이런 곳 많은데'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곳에 면접 보기 위해 지하철 환승까지 해가며 온 1시간 30분이 너무도 아깝다.


여자는 많은 기대를 접은 채 좁고 긴 복도로 올랐다.

기대가 없으니 긴장감도 없다.


'오월드 디자인'

다행히 밖보다 안이 조금 더 나았다.


바빠 보이는 직원이 여자를 맞이한다.


"면접 오셨어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아~네.. 네!!"


여자는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고 싶다. 슬쩍 웃어 보였지만

바쁜 걸까 직원은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작은 회의 테이블 앞에 앉

여자는 사무실의 분위기를 살핀다.


'아.. 뭐 하는 거지? 회의라도 하는 건가'

여자의 호기심이 발동했다.


티백이 아직 우러나지도 않은 녹차를 홀짝거리며

여자는 그들의 대화에 귀를 쫑긋 세운다.


'응.. 응? 뭐라고? 뭐라고 하는 거야?'

'마이다..,? 가... 와?, 우라??'


도무지 알아들 수 없는 말들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나름 전공자인데, 알아듣지 못하는 말들이 너무도 많다.


'이게 현장에서 쓰이는 인가?'


여자는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남발(?)내 바쁘게 움직이는 이곳이

서서히 마음에 들기 시작한다.


여자는 마음을 바꿨다.

면접을 잘 보기로 한다.


1차 면접은 포마드 스타일로 한 껏 꾸몄지만 어쩐지 멋지지 않은 사장님이

나름 꼼꼼했지만, 뭔가 허술하게 느껴지는 사장님 덕분에 긴장이 조금 풀다.

좀 전의 직원들과는 너무도 다른 분위기. 사장님은 실무를 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이어 실무를 담당하는 이 부장과의 면접이 시작됐다.


어째서인지 이 부장은 여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심드렁한 얼굴로 A형은 소심하지 않나? 같은 질문인지 타박인지 모를 말을 해대며 굳은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여자는 이미 이곳에서 일하기로 결심했다.

A형은 소심이 아닌, 세심하다는 일갈을 시작으로.. 이어지는 질문에 최대한 당차게 답했다.


그렇게 여자는 '오월드 디자인'에 입사했

얼마 후 무려 '디자이너'라고 힌 명함을 건네 받다.


주임, 대리 같은 직급이 없어서,

빈칸을 채울 단어가 필요해서 써준 네 글자였지만

아무렴 어쩌랴,

여자는 그저 인테리어 회사에 소속된 것만으로도 기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