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간 읽은 책들에 대한 짧은 감상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결코 한 가지 모습만을 지니고 있지 않음을
나도, 당신도 우리는 다들 조금씩 어딘가 결핍된 존재들이다. 그러한 결핍은 리틀피플과 함께 1984년에 살아가던 나를 1Q84년으로 보내기도 하고 , 또 다른 결핍의 존재를 만나 위로하게도 한다. 과거 프로이트가 억압의 모든 잔여물들이 꿈을 통해 나타난다고 한 것을 생각해보면 1Q84년은 참으로 꿈을 닮아있었다. 결핍과 억압의 파편이 만들어낸 기묘한 것들은 어쩌면 덴고와 아오마메로부터 탄생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1984년과 1Q84년. 그리고 글로 표현할 수 없는 무수한 세계들. 그것들은 덴고와 아오마메, 그리고 우리의 시선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닐까. 세상의 다양한 모습들 중에 어떤 것을 볼 것인가, 누구를 나의 세상에 들일 것인가는 결국 우리가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남긴 파편들의 총체는, 그것에서 연상되는 이미지는 1984에 속하는가 아니면 1Q84년에 속하는가. 그것도 아니면 광고판 속 호랑이가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세상에 속하는가. 어느 곳이든 간에 그곳에 내가 있다면 그걸로 그 세상은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Cigarettes after sex의 음악을 반복해서 들었다. 책을 상당히 닮은 음악이었다. 그리고 한 동안은 집에 돌아오는 밤에 하늘의 달을 찾았다. 혹시나 작은달이 하나 늘었을까 하는 기대감에.
인간의 질서인 기하학을 자연 위에 재구성한 건축가
자연이 만들어 내는 흐름을 거스르는, 인간의 지혜이며 살아있다는 증거. 르 코르뷔지에는 건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지만 책을 통해 그의 건축을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는 방법이 이렇게 까지 자연스러울 수 있을까 싶었다. 그가 욕실로 자연의 빛을 이끌어 왔던 것 (르 코르뷔지에에게 욕실은 자유 평면 le plan libre의 조형적 공간을 극적으로 만드는 오브제 투르베Objet trouvé 였다), 주변 환경에 따라 유입되는 모든 것의 동선을 계획한 것까지. 모든 것은 계획에서 시작되었으나 그 끝엔 항상 명쾌한 자연성이 자리 잡고 있다. 자연과 기하학. 르 코르뷔지에가 굉장히 다를 것 같은 이 두 가지를 서로 유기적으로 녹아들게 하는 건축을 만든 것은 인간이라는 가장 자연스러운 사실을 향해있었다. 인간과 인간 외부의 세계 사이에 중심을 잡아주는 예술성을 그는 건축을 통해 보여주었던 것이다.
지금의 나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파괴하며 살아온 걸까
소설 속 문장처럼 우리는 손으로도, 발로도, 이빨과 세치 혀 심지어 시선으로도 무엇이든 죽이고 해칠 수 있다. 나의 것들이 무기가 되어 파괴의 행위를 이어오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무거운 두려움이 우리를 찾아온다. 하지만 그러한 깨달음의 순간을 경험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스스로 식물이 되는 것을 택한 사람과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어느 것이 진정 비정상적인 행위인지 우리는 깊게 돌아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다수의 즐거움을 위해 아무렇지 않게 소비되는 소수의 것들에 대해 제대로 윤리의 잣대를 들이밀어야 한다. 살아 있는 것이 숨을 거두고, 어쩌면 숨을 거둔 것과 같은 심정으로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일에 대해 나의 무기가 조금이라도 관여하지는 않았는지에 대해서도 필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적어도 공생을 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이라면 말이다. 과연 나는 언제쯤 살아있는 것과 살아있는 것이 만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을까. 언제쯤 어느 것도 파괴하지 않고 다른 것의 촉감을 느끼며 인사를 전할 수 있을까.
너와 내가 주고받은 모든 것들의 총체, 도시
시각적인 글의 결정체를 본 것 같다. 마르코 폴로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서 나는 소금에 절인 생선 통도 만졌다가, 호수 위에 부서지는 잔물결에 빠졌다가, 퇴락한 종탑과 아주 좁은 원형의 성벽을 다녀가기도 했다. 어릴 적부터 살아오던 도시가 주던 것과는 다른 감각을 접하면서 문득 칼비노의 말이 떠올랐다. "도시란 기억, 욕망, 기호 등 수많은 것들의 총체이며 교환의 장소이기도 하다." 그리곤 생각했다. 규정되지 못할 모든 것들의 총체가 도시라면, 물질적인 것과 비물질적인 것들을 무한히 교환하며 이미지를 주고받는 곳이 도시라면, 그것은 온전한 하나의 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칼비노가 원했던 것처럼 나는 그의 글 안에서 수없이 길을 잃고 다른 길을 발견하는 여정을 경험하며 새로운 시각으로 도시를 바라봤다. 결국 도시라는 공간은 애초에 보이지 않는 곳이 맞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바라봄에 방해가 되는 요소들을 하나씩 치워가며 그것을 새로이 보려 노력해야 한다. 도시가 이전에 보지 못했던 이미지들로 나를 가득 채울 때까지.
비록 좋지 않은 세상일지라도 당신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문득 언어가 맘에 닿을 때가 있다. 지난달 전시를 위해 한창 들었던 이소라의 음악들이 그러했고, 이 시집이 그러했다. 한 단어, 한 문장들이 마음에 부딪혀 울림을 만들었다. 방심하다 툭 만들어진 울림에 며칠을 시달렸는지 모른다. 그동안 나를 스쳐갔던, 이름이 고왔던 이들과 함께 읽고 싶은 글들이 참 많았다.
*
나는 이제
철봉에 매달리지 않아도,
이를 악물어야 한다
이를 악물고
당신을 오래 생각하면
비 마중 나오듯
서리서리 모여드는
당신 눈동자의 맺음새가
좋기도 하였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