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이라 다행이야 | 7편
저는 지금 오랜만의 방학을 즐기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전까지의 저는 구직자였다가, 7년 동안 한 회사에서 일하며 동료나 팀원을 구인하는 입장에도 서봤습니다. 그 시간 동안 회사와 잘 맞는 사람이 누구인지, 나와 더 잘 맞는 회사는 어디인지 조금씩 알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제 다시 새롭게 발을 내딛으며 세운 기준들이 있어요. 저와 비슷한 상황에서 처음 합류할 스타트업을 찾아보고 있다면 한 번쯤 생각해봤으면 하는 것들을 정리해 봤습니다.
스타트업을 선택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되어야 해요.
내 의견을 관철시킬 수 있고, 그것이 실제 서비스에 적용되는 걸 볼 수 있는 환경. 잘하면 그만큼 더 빠르게 성장하고, 더 많은 영향력을 통해 권한을 쥘 수 있는 곳. 대기업에서는 주니어가 이런 경험을 하기가 쉽지 않아요. 스타트업이기 때문에 가능한 경험*이거든요.
*더 자세한 이야기는 02화 스톡옵션보다 값진 것 에서 읽어보세요.
스타트업은 연봉이 낮고 회사의 존폐의 위기가 짧은 시간 안에 달려있는 경우가 많아요. 분명 그 리스크를 감수할 만한 무언가가 있어야 합니다.
제겐 성장 가능성과 스톡옵션이 그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먼저 저는 경력이 전무한 주니어로서 제 기존의 전공의 업무 유사성, 영어 점수와 대외활동이 채용의 주요한 이유였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채용 포지션은 ‘해외 영업’이었죠. 물론 자연스럽게 마케팅 업무를 입사 초기부터 맡기로 했었지만, 마케팅 직무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제게는 이 포지션이 아주 중요한 기회였었습니다. 마케터로서의 성장가능성, 이것이 저의 입사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또한, 앞선 글(링크)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합류해 있는 팀원들이 믿을 만한 전문가라는 것과 회사가 찍어온 투자 마일스톤을 통해 스톡옵션이 현실이 될 수 있겠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연봉이 낮아도 감수할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 있었습니다.
성장 기회든 스톡옵션이든, 스타트업의 리스크를 상쇄할 만한 이에 합당한 보상이 예정되어 있는지 반드시 확인하세요.
최근에 생각하게 된 부분이긴 합니다만, 이 지점 또한 매우 중요한 것 같습니다. 당장 완벽히 준비된 곳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AI 시대로의 전환에 대한 빠른 대응에 열려있는지는 확인해야 합니다.
이런 지점은 웹사이트 방문, 면접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겠습니다. 어떤 식으로 AI를 활용하고 있는지, 회사 차원에서 지원해주고 있는지, 실제 제품에 반영되고 있는지 한번 살펴보세요.
이전에 하던 대로 하거나 근거 없이 일을 벌여나가는 '주먹구구식 조직'은 장기적으로 성장하기 어렵습니다.
스타트업은 이전의 방식을 답습하는 게 아니라, 잘 작동하던 방법이더라도 새로운 성장을 위해 기꺼이 바꿀 수 있어야 해요. 그렇게 열려있는 회사인지가 중요합니다.
커피챗이나 면접을 통해 확인해 보세요. 최근에 기존 방식을 바꾼 사례가 있는지, 실패에서 어떻게 배우는지. 이 문화가 잘 작동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거예요.
첫 회사일수록 내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는 회사임을 알기 위해 더 중요한 지점이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입니다. 저는 첫 회사의 서비스가 ‘희귀 질환 환자들의 어려움’에 향해 있다는 점에 있어서 마음이 동했었습니다. “진단도 치료도 너무 어려운 희귀 질환 환자들을 위한 서비스. 세상에 확실히 가치를 주는 일을 하는구나” 생각하며 열정을 불태우기에 좋았죠. 그렇게 공감할 만한 미션이 있었기에 오래 버틸 수 있었습니다. 일적인 슬럼프는 어떤 이유에서든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미션이 맞는다는 것은 힘든 시기를 버틸 수 있는 힘이 됩니다.
대표라고 모든 게 완벽할 수 없고, 완벽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업무적으로, 그의 비전이 따를 수 있는 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타트업은 대표와 대표진의 영향력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면 대표진의 사원 개개인에 대한 영향력은 작아질 수 있으나, 대다수의 스타트업은 아직 시스템은 갖춰가는 중일 수밖에 없고, 이 기간은 꽤 오랫동안 지속되거든요. 그렇기에, 대표나 대표진은 회사로 대변될 수밖에 없고, 이들에게서 배울 점이 없다고 느껴진다면, 회사에 더 함께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이 들기 쉽기 때문입니다.
제가 함께한 대표는 뚜렷한 목표가 있으면서도 많은 '대표'들에게서 보이는 자만심이나 오만함이 거의 없는 사람이었어요. 충분히 설득되는 경우 편견 없이 팀원들의 의견을 받아들였고, 그렇게 회사의 성장을 이끌어나갔습니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존경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어요.
대표의 가치관을 합류 전에 확인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회사 웹사이트와 채용페이지의 가치관, 대표의 SNS와 인터뷰, 관련 기사. 면접에서 "이 회사가 5년 뒤에 어떤 모습이길 바라세요?"라고 직접 물어보는 것도 방법일지 모르겠습니다.
출퇴근과 근무 방식이 나를 소모시키지 않는 구조인지 점검해 보세요.
무작정 의미 없는 야근을 강요하는 곳이 아닌지, 업무 시간의 자율성이 보장되는지 확인해 보세요. 자율출퇴근제*, 코어타임제. 이게 있는 회사와 없는 회사는 일하는 문화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래도 일은 매일 반복되니, 가장 영향을 크게 줄 수밖에 없다 생각합니다. 출퇴근 거리도 생각보다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를 우선 생각해 보세요.
제가 있던 곳에서는 코어타임을 지키면 출퇴근 시간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는 제도가 있었어요. 단순한 복지처럼 보이지만, 이게 주는 메시지 있더라고요. "우리는 당신을 믿습니다." 그 신뢰가 일하는 방식 전체에 영향을 미칩니다. 돈으로 주는 복지보다 자율성으로 주는 복지가 훨씬 오래가더라고요.
*자율출퇴근제는 신뢰를 기반으로 운영됩니다. 여러 사람이 모이면 이를 악용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고요. 이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글에서 더 나눠볼까 합니다.
다행히 제가 있었던 곳은, 이 기준의 많은 부분을 충족하는 곳이었네요. 그 외에 제가 7년을 버틸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바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열정 있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건 최고의 경험이에요. 같은 방향을 보고, 각자의 역할에서 치열하게 고민하는 사람들. 그런 각자의 에너지는 함께했을 때 시너지를 만듭니다. 동료의 자극이 없었다면 하지 않았을 것들을 함께 해나갔고, 힘든 시기에도 사람들이 있어서 버텼던 순간들이 있었어요.
일에만 파묻히면 가까이서 일하는 사람들끼리만 어울리게 되더라고요.
회사 차원에서 직원들 사이의 스파크를 만들어주는 것, 서로 동기부여가 되는 관계를 만들어주는 것이 장기적으로 꽤 중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없으면 없는 대로 돌아가는 게 또 세상일이지만, 이런 관계와 자극이 지속적으로 주어진다면 더 오래, 더 즐겁게 함께 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새로운 일을 만들어내는 스파크는 스타트업에서 꼭 필요한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잘 만들어가고 있는 곳인지 미리 알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당신이 첫 일터로 스타트업을 고려하고 있다면, 분명 연봉 때문은 아닐 겁니다. 더 영향력을 높이고 싶거나, 이후에 나의 회사를 차려보고 싶은 마음이겠죠.
그러니까 더 철저하게 고민해 보고 생각해 봅시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 자율성을 주는 문화. 믿고 따를 수 있는 대표의 가치관. 그리고 내가 여기서만 할 수 있는 경험.
지금 스타트업을 고민하고 있다면, 이 일곱 가지를 한 번씩 확인해 보세요. 완벽한 회사는 없지만,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있는 곳과 없는 곳의 경험은 분명히 다를 테니까요.
스타트업이라 다행이야 | 7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