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경험치는 다르게 쌓입니다

스타트업이라 다행이야 | 6편

by 마케터호야

새파란 주니어로 초기 스타트업에 합류 후 한 두해 가량은 솔직히 막막함의 연속이었습니다.

전문성이 길러지는 느낌도 아니고, 새로운 시도는 매번 실패의 연속이고. 내가 어디로 자라나고 있는지 잘 모르겠는 느낌. 담벼락 틈새에서 간신히 이리저리 자라나는 듯한 덩굴 같이 느껴졌습니다.


번듯한 곳으로 떠나간 친구들은 나무처럼 자라나면서 착착 커리어를 쌓아가는 것 같은데, 나는 뭘 하고 있는 건지 회의감이 드는 생각이 머릿속을 뻗쳐나갔었습니다.


6년이 지난 지금, 그 시간이 만들어준 것들을 돌아보려 합니다.


우리는 다르게 자라는 식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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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과 스타트업의 차이를 한 줄로 정리하면 이렇게 될 것 같아요.

대기업은 깊이가 먼저, 스타트업은 넓이가 먼저.


대기업에서 마케팅을 한다면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이 드는 캠페인, 광고, 대형 이벤트를 하게 됩니다. 이미 검증된 방식을 사수에게 배우면서 그 영역에서 숙련되어 가는 구조죠. 깊고 곧게 자라나는 나무 같다랄까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두터워지고, 곧게 위로 자랍니다.


스타트업은 달라요. 저는 웹사이트, 이메일 마케팅, 콘텐츠 마케팅, 학회, 고객의 경험관리까지 모두 다 건드렸습니다. 마케팅/세일즈와 관련 없는 부분도 해야 했습니다. 그게 그렇게 이상하게 느껴지진 않았습니다. 고객의 서비스 경험의 맨 앞단과 맨 뒷단을 모두 경험해 보는 일이었죠. 그렇기에 이 서비스와 고객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스타트업은 한 곳에 깊게 뿌리내리지 않는 넝쿨 같습니다.

동해바다에 놀러 가 모래사장 한 구석에 넓게 뿌리내린 식물을 살펴본 게 떠오릅니다. 이쪽에도 뿌리, 저쪽에도 뿌리. 얇고 넓게 모래사장 전체를 덮어나가고 있던 한 식물.


둘은 다른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만큼, 서로 다르게 자랍니다.


넝쿨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할 때

제가 비유를 그럴듯하게 했나 모르겠네요.

돌이켜보면 “그땐 그랬지” 하는 게 사람입니다만, 당시에는 꽤 불안했던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를 건드리면서 해나가고 있는데 뭐 하나 깊어지는 느낌이 없었어요. 대기업(꼭 대기업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좋은 대조군인 것 같아요) 친구들은 착실하게 사수 옆에서 대단한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데, 나는 아직 아무도 모르는 서비스를 알리고 있는 이 상황. 어느 방면으로도 전문가가 된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깊이는 이렇게 만들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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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순간 찾아 헤매던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지금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적절한 마케팅 방법은 무얼까?”


초기부터 저희가 놓칠 수 없었던 것은 신규 리드 및 고객의 확보였지만, 장기적으로 효율이 높은 마케팅 방식이 콘텐츠를 활용한 인바운드 마케팅이라는 데 믿음을 두고 있었어요. (참고)

그 믿음 하에서 여러 시도를 해나간 거죠. 넝쿨이 뻗어나가듯이 성장했습니다.


처음엔 매스 메일링(Mass mailing; 이메일 마케팅의 한 방식. 요즘은 개인정보 보호 강화 및 스팸 이슈로 인해 강화된 스팸 필터가 많이 있는 덕에, 적당한 수준으로 해야만 한다), 뉴스레터 정도로 신규 리드와 고객 확보 및 리드 관심 유지 방법을 사용했었습니다.


이렇게 성장해 나가는 과정 중에 온라인 만으로 우리의 존재감과 신뢰도를 높여나가기엔 한계가 있다는 팀의 판단이 있었습니다. 전통적인 방식의 의료/바이오 마케팅을 무시할 수 없음을 깨달은 거죠. 국내외 학회에 참가해 소통하고 저희의 존재감을 드러내는데 노력하기 시작했었어요.

확보한 잠재고객이 늘어나고, COVID-19가 전 세계를 잠식해 나갈 때쯤, 우리는 무료 고객의 전환과 신규 리드 확보를 위한 웨비나를 개시했습니다. 서비스를 사용해 본 사람들은 우리 회사와 서비스의 결과물인 리포트의 전문성 알 수 있었을 테지만, 모든 사람이 여전히 높은 비용의 서비스를 쉽게 사용하기 어렵다는 점이 허들이었거든요. 웨비나를 통해 기술성과 전문성을 드러내고, 자사 사례를 우리의 입뿐 아니라 타 고객의 입을 통해 전달할 수 있게 되면서 많은 부분이 해결되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무료 정보 전달은 고객군에게 아무래도 유익하지만, 우리 서비스의 사용까지 이어지도록 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많은 웨비나에 참여해 본 우리 모두가 그렇듯, 웨비나를 들었다고 해당 웨비나 제공사의 서비스를 당장 사용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방식을 만들어나갔습니다. 웨비나 이후의 자료제공, 웨비나에서 바로 특별 할인 오퍼를 통해 가입과 서비스 사용을 유도해 봤었죠. 일부 지역에서는 굉장히 성공적이었으나, 모든 곳에서 같은 결과를 볼 수는 없었습니다. 수많은 시도와, 실패와, 최적화의 연속이었습니다.


이렇게, 시기에 따른 다방면의 시도에 따라, 우리는 어떤 것은 버리고, 어떤 것은 취했습니다. 웨비나와 뉴스레터, 주요 오프라인 이벤트 참가는 정기화가 되었고, 점차 기획과 활용이 체계화가 되었습니다. 인바운드 마케팅 역시 웹사이트의 퍼널 구조를 최적화하는 형태로 만들어져 갔으며, 마케팅부터 세일즈로 이어지는 퍼널 구조가 정립되었습니다.


이게 경험치를 쌓아 깊이를 만드는 방식이었습니다. 처음부터 알고 한 게 아니었죠. 반복하면서 실패하고, 데이터를 보면서 패턴을 찾고, 그게 쌓이면서 "되게 하는 자세"를 알게 된 거에요.


되게 하는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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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이 바뀌고, 고객이 바뀌고, 채널이 바뀌면 또 달라질 수 있어요. 깊게 팔 곳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새로운 곳으로 확장해야만 하는 시기가 올 수도 있고요. 그때는 또다시 막막한 불안감을 느끼겠죠.


중요한 건 정답이 아니라, 정답을 찾기 위해 문제를 해결하는 자세를 익혔다는 거에요. 넓게 파야 깊게 팔 곳을 알 수 있게 되고, 그 깊이가 또 다른 넓이의 토대가 됩니다.


그게 스타트업 경험의 밀도입니다.


마음속에 두근거림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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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마음속에 두근거림이 있으신가요?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스타트업 경험의 밀도는 분명히 일반적인 대기업이나 중소기업과는 다릅니다.


뭔가 내 손으로 만들어보고 싶다면, 단번에 성공적인 시작을 만들어나가기는 어렵겠지만, 그 실패 속에서 배우고 깨닫고 손수 세워나가고 싶다는 욕구가 있다면, 말 안 되는 ‘주인의식’ 말고, 진짜 주인처럼 일하면서 겪는 경험이 내가 하고 싶은 경험이라고 생각이 드신다면, 그 두근거림이 있다면, 도전해 보세요.


초반엔 막막하고 불안할 거에요. 당연한 불안감입니다. 사람은 뭐든 안정성이 적은 환경에 놓이면 불안할 수밖에 없어요. 전문성이 없는 것 같고, 대기업 친구들이 부러울 때도 있을 거에요. 그러나 그 시간이 쌓이면, 다른 곳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당신만의 경험과 열정’이 남을 겁니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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