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사람은 대체로 좋은(?) 사람이던데
피곤해!!!!
알람을 네 번 정도 껐다 켰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월요일이었다.
지난 주말은 그래도 별 일 없이 보냈는데, 토요일에는 날씨도 좋았는데!
혼자 송파구의 한적한 에스프레소 바에 다녀온 기분 좋은 주말이었는데, 역시 월요일은 어쩔 수 없었다.
늘그막 하게 아홉 시쯤 집을 나서 출근했다.
사무실 내 앞자리엔 처음 보는 사람이 앉아있었다.
'아, 맞다. 새 직원 온다 했지?'
세마디(세일즈/마케팅/디자인 팀)팀에서 유일한 CX 매니저였던 제시카와 함께할 동료가 온다고 했었는데, 기억하기로는 제시카와 구찌, 지니의 면접 경험이 꽤 좋았다고 했던 것 같다. 뭔가 기대가 된다는 듯한 이야기를 했었던 것이 얼핏 생각났다. 갑자기 좀 궁금해졌다.
'그래? 뭐 어떤 사람이길래?'
사실, 회사가 회사인지라, 이미 독특한 사람이 신기할 정도로 많긴 했다.
전에 다른 글에서 언급했던 적이 있던가?
연초까지 함께 했던 메이브는 실험실 간호사에서 우리 회사의 콘텐츠 마케터로 몇 년을 일하고, 독립했다. 온갖 온라인 마케팅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3여 년 간 함께 일하고 있는 제프는 실험실 연구원으로 시작해 곧 창업을 앞두고 있다. 회사에 제프가 슬며시 다가와 웃으며 던지는 깊고 깊은 질문을 안 받아 본 사람은 아마 손에 꼽지 싶다.
제프가 입사한 시점 내가 느꼈던 "저 사람 뭐지?"라는 당황, 부담 등의 감정은 언젠가 한번 글로 꼭 풀어보리라. 지금 그는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준 좋은 동료 중 하나이다.
이 외에도 다른 팀에는 원자력을 전공하다 개발자가 된 팀원이나,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취미를 찾기 위해 온갖 처음 듣는 운동을 해보고 있는 팀원, 술을 너무 좋아했지만 건강 상의 이유로 찾게 된 '차'를 깊게 파 수요일 점심마다 회사 내에서 다도회를 열고 있는 팀원 또한 있다.
그럼에도, 우리 회사의 공식 신입 소개 절차 '상견례'*를 새로 온 '엘라'가 치르고 나니, 확실히 이 사람은 어딘가 독특한 기운을 풍겼다.
* 상견례?
사실 고인물로써 부끄럽게도(?) '상견례' 단어가 회사 내에서 쓰이고 있다는 것을 지난해에 알았다. 언제부터 사람들이 그렇게 불렀는지 도저히 모르겠다. 초창기만 해도 그냥 '신입 인사'나 '신입 소개 자리' 정도였던 것 같은데....?! 내가 모르는 무언가 있었나 보다.
뭔가 숨기는 듯한 말투.
상견례를 진행하며 직원들이 여러 질문을 던졌다.
반응을 보니 본성(?)은 훨씬 활발한데, 수줍은 척하면서 숨기는 뭔가가 있었다.
아 재밌는 사람이네.
(이제 돌이켜보면 새어 나오는 이상한 기운은 숨겨지지 않았다)
소개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경력이 5년이 넘는다는 '요가'였다. 우리 회사 사람들은 유독 독특한 취미에 대해 관심이 참 많은데, 아마 스타트업답게 새로운 시도를 많이 즐기는 성향들이어서 그러지 않을까 싶다.
물론 나도 그랬다.
요가에 깊은 관심은 없었지만, 이래 저래, 다양한 운동과 취미에 대한 소식이 퍼져나가던 코로나 19 시기를 지나면서 주변에 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던 것은 사실이다.
오랫동안 마음에만 품고 있던 클라이밍을 시작한 지 어언 3여 년이 되고 나니, 다른 운동들도 궁금해지던 찰나였다.
막연하게 "친해지면 나도 한 번은 해봐야지." 하는 생각 정도를 했다.
소개가 끝나고 그날이던가, 그다음 날이던가?
자리가 바로 내 자리 맞은편인 탓에 덕에, 모니터 옆으로 얼굴만 내밀면 대화할 수 있는 자리였기에 가볍게 대화를 걸었다. '아무렴, 회사 고인 물 역할이 뭐야. 고인물답게 적응하는 것도 도와주고 해야지.'
"이틀 정도 지났는데, 어때요 회사?"
"아, 괜찮은 것 같아요! 사람들 다 친절하고~
근데 혹시 몇 살이신지... 물어봐도 될까요?"
"아, 저 93년생이에요."
그랬더니 아주 난리가 났다.
"네!??! 93이요? 저랑 동갑이시라고요? 아니 대박?
친구네요 친구!!!"
아후 요란하다!
그리고 이 사람, 얼마 되지 않아 바로 반말을 시작한다.
뭐 동갑이고, 편하고 좋긴 한데... 회사에 반말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몇 안되다 보니 좀 당황스럽긴 했다.
음, 당황스럽지만, 싫지는 않은 그런 느낌? 그렇지만 익숙하지는 않은? 그렇지만 뭐 그럭저럭 괜찮은...?
밝은 사람들을 좋아하긴 하지만, 너무 기빨리는건 싫은데!!!
대학생 시절 음악 동아리를 했었다.
작사작곡이라는 나름의 창작 활동을 하던 동아리였는데, 그런 탓인지 거기에도 이상한 친구들이 진짜 많았는데, 십 년이 된 지금까지 평생 갈 듯이 친한 사람들이 많다.
이 친구, 이쪽과 매우 가까운 느낌이다.
사람만 보면 눈이 반짝이는, 말이 많은, 나와는 많이 다른 기운.
그렇지만 이상한 건 좋은 거다.
나의 이상한 친구들은 이상한 자신만의 개성 있는 모습으로 좋은 기운을 나눠주는 사람들이었다.
작사 작곡, 공연, 클라이밍, 여행 등, 이상한 사람들이랑 참 새로운 걸 많이 했고, 이런 걸 역시 즐기는 나도 즐거웠다.
새로 온 앞자리 친구 엘라가 갑자기 클라이밍을 가보고 싶다고 한다.
원래 관심 있었다며, 직원분들이랑 같이 가고 싶단다.
마침 제제, 제이슨은 요가가 해보고 싶다고 한다.
"어 뭐 그럼, 한 번은 클라이밍 가보고, 한 번은 요가 가고 싶은 사람들 모아서 가볼까요?"
좀 더 천천히 가게 될 줄 알았는데,
이거 뭐 빼도 박도 못하게 일정 두 개가 캘린더에 박제되었다.
그렇게 우리들의 멈출 수 없는 운동 품앗이가 시작되었다.
이게 마라톤, 글쓰기, 등등 여러 '딴짓'의 시발점이 될 줄이야 누가 알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