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지고 재밌는 걸 해보고 싶어
와, 이 주제로 꼭 글을 써야지, 써봐야지 하고 있었는데. 그게 벌써 2년은 되었다.
함께 글을 쓰다 보니 이런 주제에 대해서도 깊게 다뤄볼 수 있게 되어서 참 다행이다.
오늘의 이야기는, 나의 클라이밍 사랑이 어떻게 옷을 만드는 데 까지 이어졌는지, 성공적인 판매라고 할 수는 없지만, 좋은 경험으로 남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전 글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나는 클라이밍을 시작한 지 꼬박 3년이 더 되었다. 사실 부상으로 쉰 기간이 그중 1년은 될 것이다.
첫 1년을 제이슨과 함께 주 2-3회씩 클라이밍을 다니다 보니, 실력도 쑥쑥 늘고, 운동에 느끼는 재미와 애착이 점점 커져갔다. 그러다 어느 순간 클라이밍장을 둘러보며 이런 '딴생각'이 떠올랐다.
직접 내가 입고 싶은 멋진 옷을 만들어봐?
클라이밍장이 이제 막 많아지던 시기였다. 그런데 너무 멋지고 재밌는 운동과 문화에 비해 클라이밍장 사람들의 옷은 뭔가 아쉬웠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클라이밍장에서 만들어서 판매하는 '암장 티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그 옷이 썩 개성 있다거나 멋있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얘기를 제이슨과 정말 많이 나눴었다. 여러 클라이밍장을 '원정'다니며 새로운 경험 하는 것 또한 즐겨왔기에, 원래 다니던 곳 외 많은 곳에서도 사람들의 모습, 옷을 관찰하게 되었다.
"진짜 저게 최선일까?" "좀 힙한 디자인으로 만들어볼까요?" "위트 있는 거, 비꼬는 것도 좋아요!" "개성 있는 디자인이 예쁘고 좋을 것 같아요" "우리만의 색은 뭘 넣을 수 있을까요?"
그런 고민과 함께, 옷을 만들기 전 전초기지로 인스타그램 아트 계정을 먼저 만들어보게 되었다. 그게 2021년 12월이었다.
제이슨은 디자이너로써, 그리고 낙서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본인 취향의 그림을 그리는 걸 좋아했다. 나는 티셔츠를 판다거나 그림이라는 분야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내 손으로 멋지고 재밌는 것을 만들고 싶다'라는 욕구 아래, 디자이너 제이슨과 함께 힘을 합쳐보기로 했다.
그렇게 여러 아트웍을 먼저 주마다 올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국내나 해외 어느 곳을 타겠하겠다라는 결정도 내리지 못했기에, 영어를 주로 쓰면서 몇 가지 그림을 올리기 시작했다.
클라이밍장의 알록달록한 홀드를 담은 시리얼이라든지, 똑같은 사탕을 한 줄로 만들어 없애는 '캔디크러시'를 패러디한 영상이라던지, 다양한 캐릭터를 홀드로 바꾼 캐릭터 홀드라던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새로운 것들을 아이디어를 짜고, 그려나가 보았다.
그리고 우리는 이안과 여러 사내 클라이밍 크루의 합류와 함께 티셔츠 제작 및 판매를 위한 움직임을 시작했는데, 이때 나온 아이디어가 '과일 홀드 시리즈' 티셔츠였다.
많은 사람들이 클라이밍에 대해서 잘은 몰라도, 벽에 붙은 알록달록한 돌, 손잡이(홀드)를 기억한다.
어릴 적 놀이터에서 놀던 기억이 모두에게 새겨져 있는지, 클라이밍장은 생각보다 원초적인 욕구를 자극한다.
알록달록한 색의 돌,
기어오를 수 있는 손잡이,
꼭대기까지 오르고자 하는 우리들의 욕구다.
그래서 우리는 여러 후보 끝에, 복숭아와 바나나를 첫 과일 세트로 골랐다.
클래식한 폰트와 그림에 아는 사람만 알아볼 수 있는 디테일을 담았다. 과일에는 꼭지 대신 나사가 박혔고, 아래 문구는 나무에서 딴 게 아니라 벽에서 (클라이밍은 벽을 오르는 운동이니까! 홀드는 벽에 박혀있다) 갓 딴 홀드라는 재미있는 문구를 담았다.
이런 디테일을 정하고 넣는 과정이 어찌나 재밌던지...!
그렇지만 일을 하면서 이런 모든 과정을 진행하고 판매와 수익까지 연결시키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었다. 마플과 같은 서비스 덕분에 빠르게 제작하고 만들어볼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처음 만나는 것들이 너무 많긴 했다.
옷에는 어떤 식으로 프린팅 해야 할까? 나염? 디지털 프린팅? 전사?
뒤에만 인쇄해야 할까? 앞이 너무 허전하진 않을까?
옷은 뭘 골라야 할까? 프린트스타? 길단? 트리플에이?
색상은 어디까지 하지? 흰색, 검은색, 아님 다른 색?
가격은 어떻게 하지? 소량 제작이다 보니까 기본적으로 단가가 너무 높은데?
광고는 어떻게 돌리지?
이 모든 걸 고르고, 티셔츠를 만들고, SNS로 판매를 시작했다.
두근두근했다.
아휴. 너무 잘 팔리면 어떡하지?
너무 예쁘게 나오면 어떡한담?
결론적으로 옷은 꽤 잘 나왔지만, 모르는 사람들에게까지 많이 퍼지진 않았다. 회사에 같이 클라이밍 하는 동료들이 가장 많이 구매해 주었다. 옷은 충분히 독특했지만, 충분히 튀지는 않았고, 우리는 여름 타이밍을 놓치기까지 했었다. 첫 이벤트가 추석 과일 이벤트였으니 말 다한 거긴 하다.
그렇게 위트 있는 힙한 옷을 만들고자 한 우리는, 2022년의 첫 과일 티셔츠의 경험을 기반으로 딛고 일어나 2023년에는 조금 다른 시도를 해보기도 했다.
바로 텀블벅 펀딩을 시도한 것인데, 이것 역시 나중에 더 자세하게 풀 수 있으면 좋겠다. 펀딩 준비는 생각보다 제이슨과 나의 많은 부분을 필요로 했다.
작년 티셔츠의 원단과 길이가 아쉬웠던 터라, 처음부터 새로운 티셔츠를 찾아 사입해 인쇄하는 방향을 구상했는데, 여기서부터 엄청난 차이를 나타냈다. 밤중의 동대문을 몇 번이나 방문해야 했고, 덕분에 야밤중의 드라이브, 동대문의 닭 한 마리 섭취, 말로만 듣던 남평화시장, 동평화시장을 쏘다니는 중 어버버 거리며 여러 사입삼촌들의 길을 얼쩡거리기도 했다.
업무 외적으로 무언갈 한다는 건 진짜 어렵다.
심지어 이런 재미로 시작한, 누구도 시킨 적 없는 이런 프로젝트 또한 막상 시작하고 나면 여러 사람의 시간과 정신을 빼앗는다.
스스로 일정을 정하고, 결정을 내리고 해나가야 하기에, 제이슨과 나도 서로 답답해한 적이 많았다.
정답이 없는 디자인에서 "이건 없는 게 낫지 않아?" "저건 하지 말죠" "이건 하기 싫은데..." 하며 어떻게든 결정을 내리기 위해. 잘 될지 안 될지 모르는 인스타그램 프로모션을 정하기 위해 "상품 개수는?" "당첨자는 몇 명으로 할까요?" "기간은 언제까지로 하죠?" "다음 주에 시간 돼요?" "우리 그때까지 안 하면 여름 다 지나감 ㅎㅎㅎ" 투닥거리며.
그래도 분명 남는 것이 있다.
F처럼 말하자면, 추억과 기억이 남고,
T처럼 말하자면, 경험과 노하우가 남는다.
쌓인 나의 경험이 나를 만들어가는 것이기에,
최소한 나에게는 내가 하고자 한 것들을 고생하면서 만들어나가고,
그 시간을 즐긴 경험이 남았다.
그리고, 내가 직접 쓴 문구, 제이슨이 직접 디자인한 그림의 티셔츠가 잔뜩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