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케터호야 Jul 07. 2024

내가 돈 한 푼 벌지 못해도 클라이밍 옷을 만든 이유

멋지고 재밌는 걸 해보고 싶어

와, 이 주제로 꼭 글을 써야지, 써봐야지 하고 있었는데. 그게 벌써 2년은 되었다.

함께 글을 쓰다 보니 이런 주제에 대해서도 깊게 다뤄볼 수 있게 되어서 참 다행이다.


오늘의 이야기는, 나의 클라이밍 사랑이 어떻게 옷을 만드는 데 까지 이어졌는지, 성공적인 판매라고 할 수는 없지만, 좋은 경험으로 남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클라이밍은 너무 재미있는데, 옷은 왜 다 저래?

이전 글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나는 클라이밍을 시작한 지 꼬박 3년이 더 되었다. 사실 부상으로 쉰 기간이 그중 1년은 될 것이다.


첫 1년을 제이슨과 함께 주 2-3회씩 클라이밍을 다니다 보니, 실력도 쑥쑥 늘고, 운동에 느끼는 재미와 애착이 점점 커져갔다. 그러다 어느 순간 클라이밍장을 둘러보며 이런 '딴생각'이 떠올랐다.


직접 내가 입고 싶은 멋진 옷을 만들어봐?

클라이밍장이 이제 막 많아지던 시기였다. 그런데 너무 멋지고 재밌는 운동과 문화에 비해 클라이밍장 사람들의 옷은 뭔가 아쉬웠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클라이밍장에서 만들어서 판매하는 '암장 티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그 옷이 썩 개성 있다거나 멋있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얘기를 제이슨과 정말 많이 나눴었다. 여러 클라이밍장을 '원정'다니며 새로운 경험 하는 것 또한 즐겨왔기에, 원래 다니던 곳 외 많은 곳에서도 사람들의 모습, 옷을 관찰하게 되었다.


"진짜 저게 최선일까?" "좀 힙한 디자인으로 만들어볼까요?" "위트 있는 거, 비꼬는 것도 좋아요!" "개성 있는 디자인이 예쁘고 좋을 것 같아요" "우리만의 색은 뭘 넣을 수 있을까요?"


그런 고민과 함께, 옷을 만들기 전 전초기지로 인스타그램 아트 계정을 먼저 만들어보게 되었다. 그게 2021년 12월이었다.


첫 아트웍은 카툰 스타일로 클라이밍장의 스타트 홀드를 그리며 시작을 알렸다.


제이슨은 디자이너로써, 그리고 낙서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본인 취향의 그림을 그리는 걸 좋아했다. 나는 티셔츠를 판다거나 그림이라는 분야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내 손으로 멋지고 재밌는 것을 만들고 싶다'라는 욕구 아래, 디자이너 제이슨과 함께 힘을 합쳐보기로 했다.



첫 번째 아이디어 채택! - "저거 과일처럼 생기지 않았어요?"


그렇게 여러 아트웍을 먼저 주마다 올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국내나 해외 어느 곳을 타겠하겠다라는 결정도 내리지 못했기에, 영어를 주로 쓰면서 몇 가지 그림을 올리기 시작했다. 


클라이밍장의 알록달록한 홀드를 담은 시리얼이라든지, 똑같은 사탕을 한 줄로 만들어 없애는 '캔디크러시'를 패러디한 영상이라던지, 다양한 캐릭터를 홀드로 바꾼 캐릭터 홀드라던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새로운 것들을 아이디어를 짜고, 그려나가 보았다.

클라이밍장의 벽 모양과 같이 기본적으로 배경에는 구멍이 뚫려있다. 여러 아이디어들을 구상했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안과 여러 사내 클라이밍 크루의 합류와 함께 티셔츠 제작 및 판매를 위한 움직임을 시작했는데, 이때 나온 아이디어가 '과일 홀드 시리즈' 티셔츠였다.


많은 사람들이 클라이밍에 대해서 잘은 몰라도, 벽에 붙은 알록달록한 돌, 손잡이(홀드)를 기억한다.

어릴 적 놀이터에서 놀던 기억이 모두에게 새겨져 있는지, 클라이밍장은 생각보다 원초적인 욕구를 자극한다.

알록달록한 색의 돌,

기어오를 수 있는 손잡이,

꼭대기까지 오르고자 하는 우리들의 욕구다.


원색의 홀드를 보면 꽤 많은 과일이 떠오른다. 분홍 복숭아, 빨간 수박, 노랗고 길쭉한 바나나와 보라색의 포도알까지. 

그래서 우리는 여러 후보 끝에, 복숭아와 바나나를 첫 과일 세트로 골랐다.

클래식한 폰트와 그림에 아는 사람만 알아볼 수 있는 디테일을 담았다. 과일에는 꼭지 대신 나사가 박혔고, 아래 문구는 나무에서 딴 게 아니라 벽에서 (클라이밍은 벽을 오르는 운동이니까! 홀드는 벽에 박혀있다) 갓 딴 홀드라는 재미있는 문구를 담았다.

 

이런 디테일을 정하고 넣는 과정이 어찌나 재밌던지...!


그렇지만 일을 하면서 이런 모든 과정을 진행하고 판매와 수익까지 연결시키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었다. 마플과 같은 서비스 덕분에 빠르게 제작하고 만들어볼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처음 만나는 것들이 너무 많긴 했다.


옷에는 어떤 식으로 프린팅 해야 할까? 나염? 디지털 프린팅? 전사?

뒤에만 인쇄해야 할까? 앞이 너무 허전하진 않을까? 

옷은 뭘 골라야 할까? 프린트스타? 길단? 트리플에이?

색상은 어디까지 하지? 흰색, 검은색, 아님 다른 색?

가격은 어떻게 하지? 소량 제작이다 보니까 기본적으로 단가가 너무 높은데?

광고는 어떻게 돌리지?


이 모든 걸 고르고, 티셔츠를 만들고, SNS로 판매를 시작했다.

두근두근했다.


아휴. 너무 잘 팔리면 어떡하지?

너무 예쁘게 나오면 어떡한담? 



결론적으로 옷은 꽤 잘 나왔지만, 모르는 사람들에게까지 많이 퍼지진 않았다. 회사에 같이 클라이밍 하는 동료들이 가장 많이 구매해 주었다. 옷은 충분히 독특했지만, 충분히 튀지는 않았고, 우리는 여름 타이밍을 놓치기까지 했었다. 첫 이벤트가 추석 과일 이벤트였으니 말 다한 거긴 하다.



취미에서 부업(?)으로, 부업이 매년 돌아오는 프로젝트로!


그렇게 위트 있는 힙한 옷을 만들고자 한 우리는, 2022년의 첫 과일 티셔츠의 경험을 기반으로 딛고 일어나 2023년에는 조금 다른 시도를 해보기도 했다. 


바로 텀블벅 펀딩을 시도한 것인데, 이것 역시 나중에 더 자세하게 풀 수 있으면 좋겠다. 펀딩 준비는 생각보다 제이슨과 나의 많은 부분을 필요로 했다. 


동대문의 진면목을 볼 수 있었다. 완전 새로운 세상이었다. 완 전!


작년 티셔츠의 원단과 길이가 아쉬웠던 터라, 처음부터 새로운 티셔츠를 찾아 사입해 인쇄하는 방향을 구상했는데, 여기서부터 엄청난 차이를 나타냈다. 밤중의 동대문을 몇 번이나 방문해야 했고, 덕분에 야밤중의 드라이브, 동대문의 닭 한 마리 섭취, 말로만 듣던 남평화시장, 동평화시장을 쏘다니는 중 어버버 거리며 여러 사입삼촌들의 길을 얼쩡거리기도 했다.



일 말고 딴짓을 한다는 것, 꽤나 어려운 일


업무 외적으로 무언갈 한다는 건 진짜 어렵다. 

심지어 이런 재미로 시작한, 누구도 시킨 적 없는 이런 프로젝트 또한 막상 시작하고 나면 여러 사람의 시간과 정신을 빼앗는다.


스스로 일정을 정하고, 결정을 내리고 해나가야 하기에, 제이슨과 나도 서로 답답해한 적이 많았다.

정답이 없는 디자인에서 "이건 없는 게 낫지 않아?" "저건 하지 말죠" "이건 하기 싫은데..." 하며 어떻게든 결정을 내리기 위해. 잘 될지 안 될지 모르는 인스타그램 프로모션을 정하기 위해 "상품 개수는?" "당첨자는 몇 명으로 할까요?" "기간은 언제까지로 하죠?" "다음 주에 시간 돼요?" "우리 그때까지 안 하면 여름 다 지나감 ㅎㅎㅎ" 투닥거리며.


그래도 분명 남는 것이 있다.

F처럼 말하자면, 추억과 기억이 남고,

T처럼 말하자면, 경험과 노하우가 남는다.


쌓인 나의 경험이 나를 만들어가는 것이기에,

최소한 나에게는 내가 하고자 한 것들을 고생하면서 만들어나가고,

그 시간을 즐긴 경험이 남았다.


그리고, 내가 직접 쓴 문구, 제이슨이 직접 디자인한 그림의 티셔츠가 잔뜩 남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티셔츠를 만드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