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늘어난 일과 출장, 연말 모임도 여러 군데 참여하다 보니 거의 집에 들어가면 기절하듯이 침대에 쓰러진다. 한 시간 반 정도 걸리는 출근길도 처음에야 설렜지 어느 순간부터 체력적인 부담으로 다가오기 시작했고, 그 틈새에 끼어있는 가족 행사들도 챙기자니 체력이 거의 바닥이 났다. 사실 체력이야 어찌어찌 끌어오고는 있지만 나에게 있어 가장 힘든 건 일상이 정돈되지 않는다는 것.
아끼던 귀걸이를 벌써 두 개째 잃어버렸고, 나의 출근길을 책임져주던 고장 직전인 에어팟은 종적을 감춘 지 일주일째다. 계속해서 분실물이 생겨나는 걸 인지하고 나서야 '아 위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아침 하루의 루틴을 대략적으로 가늠해 보고 집을 나섰던 과거의 나는 사라지고, 아침에 머리 감고 회사를 나가는 게 스스로에게 감사하다고 느낄 정도다. 모든 게 내 통제선에서 돌아가진 않는 일상을 딱 절감하는 순간 두려운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종종 스스로를 잘 지켜내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MBTI 검사하곤 한다. 서울 생활에 점차 흑화되고 있다보니 S와 T의 성향이 조금씩 스며들고 있는 반면 J의 성향은 변치않게 잘 남아있다. 사실 나는 '계획형 J'이라기보단 '통제형 J'에 가까운 사람이다. 내 삶과 주변을 조금 더 세밀하게 통제하려는 경향이 있다. 일상이 나 스스로가 통제가 되지 않다고 느끼는 순간 불안함을 느끼게 되는데 그게 딱 요즘인 것 같다. 사실 내가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라서 상황들은 내가 스스로 통제 가능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할 수 있단 주의였다. 그러나 요 근래 바사삭 부서진 나의 삶의 루틴을 반추해 보면 그 무엇도 내 의지로 통제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었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이젠 그 어떤 것도 나의 통제권에서 다룰 수 없다는 걸 인정하고, 힘을 빼고 살아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그렇다고 그것이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으니까. 적당히 쉬고, 약간의 빈 틈을 내어주고 살아야 할 것 같다. 가끔은 생각을 잠시 내려놓고 물 흐르는 대로 사는 삶도 나름의 가치는 있을 테니까.
상황을 통제하지 않고 겸허히 받아들이는 삶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