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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ha Dec 02. 2023

 비워내기

다시 간헐적 단식을 해보려고 합니다. 

 정말 친한 사람들조차도 내가 소식가로 알지만, 사실 나는 먹는 걸 매우 좋아한다. 식탐이 아주아주 왕성한, 그런 집안에서 자라오기도 했고(사실 나는 그런 가족들의 모습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10대부터 시작했던 다이어트로 인해 음식에 대한 강박이 생겼다. 무언가를 하지 못하도록 할 때 오히려 강하게 끌리는 것처럼, 늘 음식을 멀리했지만 또 한편엔 우울할 때 스콘, 치킨, 베이글을 찾는 내가 있었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밥은 잘 챙겨 먹으라는 엄마의 말은 철석같이 잘 듣다 보니 소화는 안되지만 계속 음식을 입으로 밀어 넣기 급급했고, 꼬리뼈 골절로 운동도 쉬었더니 매일 컨디션 난조, 피부 트러블이란 증상이 아주 정직하게 드러났다.


  본가에 갔을 때, 더 이상 물건에 잠식당하고 싶지 않단 생각에 다시는 안 입을 방송용 의상들을 (이제야) 싹 다 버렸다. 엄마는 언젠가 입을 수 있다고 히잠 나는 '언젠가는 없다'는 단호한 말과 함께,  입을 만한 옷 서너 벌만 남겨뒀다. 나름 훌륭한 결단력에 몇 분 정도 취해있다가, 내 방처럼, 내 몸도 전부 깨끗하게 청소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밤에 배고프지만 참고 자면 다음날 아침에 누릴 수 있는 그 맑고 깨끗한 기분을 느껴본 지가 꽤 오래되었던 것.


 그래서 이번 주부터 시도한 것이 간헐적 단식이다. 한창 유행이었을 때 꽤 열심히 하다가, 누군가의 '근손실 우려가 있대'라는 말 한마디에, '내 아까운 근육!'이라 외치며 바로 다음날 아침에 샌드위치를 정성스레 싸 먹었다. 아마 익숙해지지 않는 단식을 끝낼만한 명분을 열심히 찾아다닌 사람처럼.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던 것 중 컨디션 회복을 위한 게 가장 크지만, 사실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최근 에쿠니 가오리 작가에 푹 빠져 모든 책들을 섭렵해가고 있는데, 각각의 책 속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삶의 정갈함을 따라 하고 싶어서다. 책에서 직접적으로 간헐적 단식을 하는 건 아니지만, 문체에서 느껴지는 정갈함과 틈 사이로 내어지는 모종의 여유가 뭔가 익숙하다 싶었는데, 혹시나 간헐적 단식을 했을 때의 느껴지는 가벼움과 비슷한 부류이진 않을까하는 추측에서 시작했다.


  오늘 부로 딱 일주일 째, 금방 타협하고 그만둘 줄 알았는데 나름 선방하고 있다.   아침밥을 거르면 뇌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는 어른들의 말도 있지만, 나에겐 크게 유의미한 정보는 아닌 것 같다. 오히려 개운하게 일어나고 있다. 속을 편안하게 하는 것과 동시에 스스로를 (정신적으로) 잘 통제하고 있다는 산뜻한 기분마저 든다. 지금 시도하고 있는 건 16:8 단식, 16시간의 단식을 유지하고 8시간 동안 잘 챙겨 먹는 단식 루틴이다. 처음에야 어렵지 조금씩 적응하는 내 몸을 보면서 인체의 신비도 동시에 느끼고 있다.


 예전에 사촌동생이 나에게 '언니는 생각이 너무 많아'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래서 처음엔 머리를 비워내고 흐르는 대로 사는데 주력했다면, 옷장을 비워내 물건에 잠식당하지 않고 청결한 삶을 사는 단계를 지나, 지금은 내 몸을 비워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다 비워내고 나면 정말 양질의 것들만 채워 넣고 싶다. 나를 무럭무럭 자라게 하는 양질의 음식과 사람과 에너지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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