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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ha Nov 28. 2023

십 년 만에 다시 읽어본 소설

내가 에쿠니가오리 작가의 소설을 이해할 줄이야...

 10년 전, 그러니까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 즈음이었던 것 같다. 책장을 정리하던 중 '에쿠니 가오리'란 작가의 책을 발견했다. 내 돈으로 주고 산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가족들 그 누구의 취향일 것 같지 않은(우리  가족은 책을 진짜 안 읽는다!) 분홍색깔 표지에 '달콤한, 작은 거짓말'이라는 앙증맞은 제목은 더더욱 이질감을 느끼게 했다. '도대체 누가 갖다 놓은 거야?' 호기심에 책을 펴 읽어 내려갔다. 


 그 책은 당시 연애란 것을 해본 적도 없고, 어른들의 삶에 대해 궁금조차 하지 않았던 나에겐 너무도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주인공들의 대화 내용이며 '바람'이란 행위를 지나치게 사실적이면서 냉소적으로 표현하는 그 문체가 당혹스러웠다. 그런 자극적인 주제와 표현들에 동공이 지진되다가도, 이상하게 꽤 잘 읽혀서 그런 건지 한숨에 완독을 했다.

 

'어른들의 세계란 이런 것일까?' '역시 일본의 정서는 한국과는 다른 것일까?' 


 적어도 현재의 내가 있는 지점과는 다소 동떨어진 세계의 이야기로 치부해 버린 채, 십 년 동안 에쿠리 가오리 작가의 책은 '재미는 있었지만 나와는 맞지 않은 책'으로 간주해 버렸다.


  지난 주말 출장 차 제주로 가는 비행기 안, 밀리의 서재를 뒤적이며 오늘은 어떤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낼까 하던 중, 잡지에서 본 한 유명한 가수가 추천해 준 책이 떠올랐다. 제목과 표지가 상당히 나의 F감성을 자극했던 책 '낙하하는 저녁'이다. 책을 검색했더니 마침 작가가 에쿠니 가오리였다. 10년 전의 이미지가 강렬했던 터라 덜컥 겁이 나기도 했지만 그래도 다독을 한다는 유명 가수의 추천도서이면 어느 정도 검증은 된 게 아니겠냐며 책을 펼쳤다. 


 너무도 몰입한 나머지 실핏줄이 터지는 줄도 모른 채로 읽어 내려갔다. 여전히 상식적이지 않은 등장인물들과 예측이 어려운 스토리 전개임에도 불구하고 이질적이기보단 오히려 가슴이 쿵 내려앉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분명 십 년 전에 읽었던 그 책과 마찬가지로 냉정하고 딱딱한 문체였지만, 나는 그 안의 주인공들의 말 한마디와 행동 하나하나에 이미 많은 감정을 이입하고 있었다. 단지 문화 차이라고 이해하지 못했던 행동들에 대해 오히려 동정을 느끼고 있었다. 


  오래된 연인을 두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게 된 다케오, 다케오뿐만 아니라 많은 남자들의 마음을 빼앗았지만, 그 누구에게도 곁을 주지 않는 하나코, 그리고 자신을 떠나는 남자에 대한 미련과 집착, 그가 사랑하는 여인까지도 품어가면서 이별을 천천히 받아들이는 리카까지. 모든 인물들이 다 위태롭게 느껴졌지만, 그 이면에 보이는 쓸쓸함과 냉정함이 내 마음을 동하게 했다.  


 주말 동안 계속 마음이 들떠있었다. 작가의 책을 이해하고 주인공 한 명 한 명 이해하고 보듬어줄 수 있는 경험치가 지난 10년 동안 쌓인 것이다. 비단 사랑, 연애의 영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행간에 숨어있는 삶의 방식과 태도, 그리고 사소한 루틴들까지. 모든 것을 다 이해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책을 덮고 있는 동안에도 계속 마음이 쓰였던 걸 보면 깨나 책을 온몸으로 흡수하고 있던 것 같다.


 얼른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다. 내일 아침 교보문고 가서 책 잔뜩 사야지!(내일은 월급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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