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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ha Jan 08. 2024

말할 때 긴장 안 하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무책임한 대답일 수 있겠지만, 계속 덤벼보는 수밖에...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 스피치 관련 강의를 진행한다. 이번에도 다양한 수강생들을 만나면서 오히려 내가 좋은 에너지를 많이 얻고 가, 내 삶의 낙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매번 강의 때마다 듣는 질문이 있다.


 "강사님은 말할 때 긴장되지 않으세요?"

"어떻게 하면 긴장 안 하고 말할 수 있을까요?"


 사실 '이렇게 하면 긴장하지 않아요 땅땅땅!' 하며 명쾌한 해답을 내려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강의를 하고 행사 진행을 이어가는 나 역시도 매번 벌벌 떠는 건 마찬가지다. 지난번 제주에서 진행한 행사에서 덤덤한 나의 표정 뒤, 후들후들 떠는 다리를 보며 놀랐다는 담당자분의 말을 들으면서 "저도 사람인지라… 매번 떨려요."라고 머쓱해하기도 했다. 유명한 사람이나 권위를 가진 사람들 앞에 설 때면 심장이 콩알만 해져 '그래 내 깜냥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거였어.'라며 자조 섞인 목소리로 신세 한탄을 하기도 한다.(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그래도 어느 정도 연차가 생기면서 쌓인 몇 가지 소소한 팁들을 주제넘게 공유해보고자 한다.


1. '청중'을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중요하다.


긴장을 하는 이유는 소수든, 다수든 간에 '청중'이 있기 때문이다. 청중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은 누구나 다 알고 있을 터. 하지만 대하는 방식을 조금만 달리하면 긴장을 늦출 수 있다. 죄송한 말이지만 사실 나는 청중을 '유치원생'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그들의 수준에 대한 폄하가 아니라, 마치 내가 유치원 선생님이 되는 것처럼 마인드 컨트롤을 하는 것이다. 아주 엄숙한 분위기가 아닌 이상, 청중이 유치원생이라 생각하면 좀 더 친절하고 나긋나긋하게 이야기를 건네듯이 말할 수 있게 된다. 공식 석상이나 중요한 미팅에서도 역시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나에게 적대적인 사람은 없다. 그저 감정이 섞이지 않아 냉소적으로 느껴지는 시선들만 존재할 뿐이다. 그 부분에 있어 화자인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차근차근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그렇게 자의식을 조금 내려놓고 조금 더 상냥하게 이야기를 이어가는 것이 좋다. 물론 돌아오는 피드백은 깨나 날카로워 내 마음에 생채기를 낼 수도 있지만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내러놓아야한다. 그저 침착하게 계속 청중을 대하는 태도를 친절하게 가져가는 것이 좋다. 청문회가 아닌 이상 면접이나 공식 석상에서 나를 죽이려고 달려드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2. 긴장감을 '역할용'하자.


 어릴 때 그네를 탈 때 점점 더 높게 타다 보면 심장이 찌릿한 느낌이 들곤 했다. 뭔가 아프긴 한데 탁 나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쾌감 때문에 늘 몇십 분 씩 타곤 했었다.  어른이 되고 수많은 긴장감이 조성된 공간에서 느꼈던 기분과 비슷했다.  긴장과 흥분은 한 끗 차이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 이후로 끝나고 났을 때의 쾌감을 미리 당겨와 곱씹어보고 나름 달리 생각해보려 했더니 오히려 더 재밌게 상황을 주도할 수 있었다. 위경련이 자주 생기는 편이라 긴장되는 상황에서는 좀처럼 뭘 잘 먹지 못하는데, 끝나고 나면 '보상'을 주는 것도 방법이다. 중요한 미팅, 발표, 행사가 끝나면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다던가, 수고했단 의미로 스스로에게 선물을 주는 것.


 나는 주로 강의나 행사가 끝나면 '마마스 리코타치즈 샐러드'로 보상을 주는 편이다.


3. 오늘 하고 다시는 쳐다도 보지 않을 것처럼...


 우리가 긴장을 하는 이유는 막연한 '기대감' 때문이다. 취업에 대한 기대감으로 임하는 면접, 좋은 피드백에 대한 기대감으로 임하는 발표처럼. 긴장은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모종의 기대감에 비례해서 커진다. 예전에 한 국제회의 통역을 맡은 통역사분에게 안 떨리냐고 물었던 적이 있는데, 그분의 대답이 참으로 멋졌다.


"오늘까지만 하고 때려치운다는 마음으로  하는 거예요. 결국 하면 또 도파민이 생겨서 계속하게 되지만 할 때는 스트레스라 내가 이것만 하고 때려치운다고 늘 말하고 다녀요. 그럼 실수에도 관대해지게 되고 긴장이 조금 풀리더라고요"


행사 진행은 일회성이라 '다음'에 대한 기약이 없다. 그래서 최선을 다하되, 오늘 하고 다시는 안 볼 사람들이라는 생각은 그래도 나름 긴장을 덜 수 있는 위로가 되기도 한다. 기대를 내려놓고 오늘 하고 아니면 말고 라는 가벼운 마인드 컨트롤도 좋은 방책이다


 4. 제일 어려운 아이컨택트, 방법이 있다.


 중학생 때 공부 잘하는 친구보다 더 부러웠던 '눈을 보며 이야기하는 친구'가 있었다. 어떻게 저렇게 사람 눈을 잘 쳐다볼 수 있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같이 바라보는 타자의 입장에서도 전혀 부담되지 않을, 적절한 아이컨택트였는데, 지금도 그 친구의 눈빛이선명하게 기억난다. 성인이 된 이후 사회생활을 하면서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할 상황이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마주했던 모종의 부침들은 나의 관계의 폭을 계속해 좁혔다. 사람들과의 인터뷰, 면접을 통해서 체득한 아이컨택트 방법은 상황에 따라 두 가지가 있다.


 먼저 일대일로 만날 때다. 흔히 눈을 보기 힘들면 미간을 보라곤 하는데, 미간을 보는 순간 내 눈동자가 가운데로 모아지는 불상사가 생겨버린다. 그리고 만약 거리가 비교적 가깝다면, 상대 역시 내가 '눈'이 아닌 '미간'을 바라보고 있음을 단박에 눈치챈다. 방송 리포터시절 한 도의원과 인터뷰한 적이 있었는데 그분 눈 보기가 어려워 미간을 보며 얘기했더니 자꾸 나를 보며 갸우뚱거렸다. 아마도  '이 여자가 도대체 어딜 보고 있는 거지?'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수정한 나의 방법은 '한쪽 눈'만 번갈아 보는 방법이다. 몇 분 동안은 왼쪽 눈을, 조금 시간이 지나면 오른쪽 눈만 보는 방법인데 생각보다 좋다고 느꼈던 건 서로가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는 점과 나 역시도 대화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이었다. 가끔 눈을 너무 뚫어져라 보면 본질이 흐려지곤 하는데 그런 걱정도 덜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다수의 사람들 앞에서 말할 때는 '사람과 사람 사이' 구멍을 공략하는 방법이다. 많은 청중이 있을 경우 사람 한 명을 선택해 보는 경우가 많은데, 다른 청중들은 소외감을 느낄 수 있다. 대신 사람과 사람사이 여러 빈 공간들을 미리 파악해 시선을 계속 바꿔주면서 빈 공간을 보는 것이다. 시선을 바꿔주면서 눈동자가 슬쩍 지나가는 찰나의 시간 동안 사람과의 아이컨택이 이루어지는데 청중도 나를 보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되고 말하는 나 역시도 시선 처리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게 된다.


 

 어제도 새로운 수강생을 붙잡고 '한 번 하고 말게 아니라 계속 나오셔서 계속 말하셔야 돼요!'라고 손을 붙들어 잡고 말했다. 말, 스피치는 '실기'의 영역이라, 계속해 시행착오를 겪고 맷집이 생기고 단단해질 때까지 부딪히는 수밖에 없다. 학교 발표할 때도 벌벌 떨던 내가 지금 사람들 앞에서 신나게 말할 수 있었던 건 그동안 방송 가 사회, 강의를 하면서 키워진 근력 때문이란 걸 스스로가 크게 느꼈기 때문이다. '말'에 있어서는 정답이란 게 따로 존재하기보다는 그저 많이 해보는 것이 '최선의 답'일 것이다.


 

강의를 끝내고 수강생 분이 주신 따뜻한 라떼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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