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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ha Feb 09. 2024

명절이 두려워지는 나이

일 년 동안 뭘 이뤘는지 보고하는 성장공유회가 아니기를...

 확실히 시간과 장소가 달라지니 '설'이라는 단어의 뉘앙스마저 설렘보다 두려움에 더 닿아있다고 느껴진다. 명절 때 친척들에게 절대 해선 안될 말이 '취업, 결혼, 출산'이 세 가지라는데 유독 내로남불이 심한, 그리 가깝지 않은 친척들의 표정과 훈수들이 머릿속에 아주 선명하게 그려지기 때문이다. 


 취업 걱정을 하던 사촌동생은 어제 '취뽀(취업장벽을 빠개서 취직에 성공했다)'했다는 상큼한 소식을 전해주었고, 나와 동갑인 사촌은 '결혼'이라는 또 다른 큰 경사를 가져올 예정이다. 두 살 터울의 오빠의 아들이자, 갓 돌을 넘긴 복덩이 조카는 현재 우리 집안의 가장 큰 존재이다. 그 사이에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좌불안석이 되어버린 나. 한 때 '자랑스러운 강 씨 집안 장녀'였지만 지금은 그 좋은 방송국을 그만두고 도대체 어디 취업한 건지도 모르겠는, 그리고 부모님이 환갑을 넘어가는데도 여전히 연애나 결혼 소식이 없는 '금쪽이'가 되어버렸다.


 언젠가부터 내 sns에는 지인들의 결혼사진과 출산, 육아 사진의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다. 비슷한 나이 또래들이 그저 막연하게만 생각해 오던 어른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걸 보면, 아직도 하고 싶은 게 많고 철부지인 스스로가 어쩌면 다른 길이 아닌 틀린 길을 걷고 있진 않은 걸까 덜컥 겁이 나기도 한다. 성실함의 명확한 척도는 없지만 그래도 나름 누구보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고 자부했는데 결국 현 상황들만 놓고 봤을 땐,  다들 저 먼발치로 나아가는 동안 혼자서 제자리걸음을 하는 듯한 기분이랄까.


 절대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나만의 스퍼트로 나아가자고 다독이지만 남의 시선을 잘 의식하는 나에게는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일 년간 무엇을 했는지 생사조차 관심 없을 정도의 데면데면한 친척들이  '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 라고 말할 때마다 상처받을 생각을 하면 덜컥 숨이 막히기도 하고 기분 좋은 소식을 전해주는 친구, 동기들의 이야기를 듣고 한편에 부러움과 조급함을 안고 돌아올 나를 생각하면 약간 머리가 지끈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 사이에서 흔들리지 않고 나름의 소신을 잘 지키는 것이 이번 설 연휴기간 주어진 나의 숙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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