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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ha Mar 05. 2024

 꽃을 피우지 못하는 나무

 '꽃나무인데 꽃을 피우지 못해서 슬픈 사주네.'


 작년즈음 친구의 소개로 용하다는 사주를 보러 간 적이 있다. 앉자마자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각을 흰 종이에 써 내려가던 선생님(?)이 몇 초의 정적 후 처음 내뱉은 말이었다. 분명 예쁜 꽃나무인데, 문제는 이 꽃나무가 꽃을 피워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말의 무게를 어디에 싣는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데 당시 마음이 아주 콩알만 해져 있던 나는 '꽃을 피우지 못하는' 이야기에 방점을 두고 크게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꿩마농(달래의 제주어) 캐러 산에 왔는데 노란 복수초가 피었더라'며 사진을 보낸 아빠의 톡을 보자마자 봄이 왔음을 알았다. 계절의 속도가 시간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서인지 나는 여전히 수족냉증으로 고생하고 있는데 벌써 봄이라니. 이리저리 바삐 움직이다 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몰랐던 것이다. 연휴에 접어들어서야 잠깐 숨 고르는 시간을 가지면서, 올해의 봄은 어떤 모양으로 다가올지 머릿속으로 이리저리 시뮬레이션을 돌려본다.


 사실 몽글몽글한 감정이 피어오르는 그런 낭만적인 봄은 항상 미루곤 했다. 그런 감정을 내어줄 마음의 공간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돌이켜보면 내 인생에서의 3월은 늘 크고 작은 챌린지들이 있었다. 그걸 해내는 과정은 늘 복잡하고 어려웠기에 스스로를 계속 다그치고 보채곤 했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어쩌면 나는 꽃을 피우지 못하는 꽃나무라고 사주를 맹신하며 괜히 외면했던 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이제야말로 꽃을 피워낼 시기가 온 것같다. 햇빛도 많이 받고, 질 좋은 양분으로 무럭무럭 자라 화려하진 않아도 좋으니, 꽃을 피워내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행복의 역치가 예전보다 낮아지고, 스스로도 밸런스를 어느 정도 찾아가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일까. 내가 피어내는 꽃이 벚꽃일지, 유채꽃일지, 이름도 모르는 꽃일지는 피워봐야 알겠지만 그래도 오랜 기간 잘 견뎌내 온 만큼 제법 예쁘고 단단한 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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