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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ha Jun 05. 2024

걱정 미루기 연습

집안일은 그렇게 잘 미루면서 걱정은 왜 미리미리 하는 걸까요??

 많은 걸 내려놓았다고 생각했건만 여전히 늘 머리맡에는 걱정 인형 하나가 달려있었다. 내 인생은 확신과 자신감으로 단단해지는 기간과, 굉장히 말랑말랑해져서 마치 진흙처럼 조금만 눌러도 쑥 들어가서 회복이 오래 걸리는 기간의 반복이다. 그 감정의 기복은 이전보다는 많이 완만해졌다곤 하지만 아직 잔잔하다고 이르기엔 이른 듯싶다.  계절의 사이클과도 같은 나의 마음상태는 진흙보단 덜 말랑하지만, 그렇다고 콘크리트처럼 단단하지도 않은 애매한 시기에 접어들었다.


 작년 이맘때 즈음 나의 문제는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을 모조리 끌어와 고민하고 걱정하는 바람에 현재를 즐기지 못한다는 걸 비로소 알게 되었다.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었던 나의 단점을 노트에 명확하게 써내리면서 앞으로 서서히 줄이자고 다짐했건만, 습관은 그리 쉽게 고치지 못하나 보다. 애매한 상황이 지속되면서 비롯된 불안감들이 걱정으로 스멀스멀 다가왔고 나는 또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일들을 미리 걱정하고 있었다.


 생각이 복잡하면 무조건 몸을 움직여야 한다며 새로 산 러닝화를 신고 집 옆 공원에 나왔다. 늘 5km를 쉬지 않고 달리기를 목표로 하지만 결코 쉽지 않다. 가장 길게 뛰어야 4km 남짓이고 나머지 1km 정도는 나름의 쿨 다운(cool down)이란 핑계로 걷는다. 그런데 나의 문제점은 결과보단 그 과정에 있다. 2km를 넘어가는 순간부터 고민이 시작된다. '아 3km 정도 뛰면 한계가 올 것 같은데, 4km는 넘지 못할 것 같은데..' 아직 오지도 않은 나의 한계를 미리 걱정하고 빨리 타협점을 찾으려 노력한다. 사실 당장 엄청 죽을 것 같이 힘들지도 않는데도 말이다. 미리 걱정을 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한 순간 '3km 가서 그때의 내가 뛸지 말지 걱정하겠지'라고 생각을 바꾸고 무념무상으로 뛰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뛰다 보니 3km가 넘었다. 그럼 4km는? 또 그때의 내가 결정하게 미룬 다음 머리를 텅 비운채 뛰었다. 그리고 4km 지점에 다다른 나는 미련 없이 깔끔하게 포기했다.


 똑같은 포기로 보이지만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어차피 닥치면 해야 할 선택과 잡다한 걱정은 때가 도래됐을 때 해도 비로소 늦지 않는다. 지금 이랬다 저랬다 하는 갈대 같은 마음도 막상 닥치면 생각보다 굉장히 초연해지고 명료해진다는 건 이미 숱한 경험을 통해서 느낀 바다. 결국 지금 걱정해 봤자 달라지는 건 없기에 작아진 마음에 더 자국을 내지 말고, 흐르듯이 사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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