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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골짜기 혜원 Jun 25. 2023

‘오늘 하루는 이걸로 됐다, 너무나 충분하다~’

장마 앞둔 김매기와 피로를 녹여 준 하지감자 앞에서

오늘부터 장마가 시작이랍니다.

긴 비를 앞두고 며칠을 계속 바삐 움직였습니다.

하지감자부터 더 지나면 쇨 수 있는 이것저것들

수확해서 갈무리도 해야 하고,

무엇보다 김매기가 급했습니다.


이번 비를 맞으며 작물보다 더 힘 있게

얼마나 우후죽순 자랄지 눈에 선한 잡초들.

아, 생각만으로도 약간 살 떨리는 기분입니다.


모든 곳을 다 해내긴 어렵고요,

풀에 치일 위험도가 가장 높은 곳

중심으로 김을 맸습니다.


장마를 앞두고 정성껏 기른 하지감자를 캤습니다. 알은 작아도 흐뭇합니다.


하늘이 흐릿해지고

비를 예감하게 하는 바람이 불고.

예보대로 오후 늦게 비가

내릴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옆지기와 함께 오전, 오후 꼬박

밭에서 시간을 보내며

무척이나 힘이 들었어요.

체력이든 인내이든 아무튼

내 무엇의 한계를 시험하는 시간 같았습니다. 


농사일 앞에 즐겁게 부지런하자고,

기쁘게 마음먹은 지가 바로 엊그제이건만....

‘내가 이 짓을 왜 하나’ 

요런 한숨이 두어 번쯤 절로 흘렀습니다.


장마 앞둔 김매기에 인내와 체력의 한계를 모두 시험하는 기분이었습니다.


때마침 지나가던 마을 아저씨가

“거기 뭐 심었어?” 

물으시고,


손목 보호대에 팔꿈치 보호대까지 차고서 구슬땀 흘리던 옆지기는

“안 보이세요? 비 지나고 나면

잘 보일 거예요^^” 

넉넉하게 대답하였건만,


“풀은 못 이겨~”

씁쓰레하게 내지르곤 휑 가 버리는 

그 아저씨한테 마음속으로 외쳤더랬죠.


‘풀 이길 마음 같은 건 없어요. 어떡하든 공생할 길을 찾고 싶은 것뿐이에요. 약 치는 것도 꼭 풀을 이기는 건 아니잖아요. 그래도 아직은 계속 풀을 매는 삶에서 도망치지 않을 거예요! 나중에 정 로터리 칠 필요가 있을 땐 부탁드릴 테니, 거절하지만 말아 주세요^^’


우리 부부 풀 매는 모습 한 해 두 해 보신 것도 아닌데,

해마다 꼭 저런 말씀을 참지 못하는 걸 보면

저희 모습이 엔간히도 지긋지긋하신 것도 같아요^^


지나가는 마을 아저씨 덕분인지

좀 더 오기가 나기도 하여서는,

전 같으면 포기하고 그만 손을 놓았을 터인데

오늘만큼은 꿋꿋이 버텼습니다. 

그러고 싶었고 그래야 할 것 같았습니다.


갓 캐어 갓 쪄낸 하지감자의 자태는 참말로 먹음직스럽게 아름답습니다.


오후 다섯 시 반쯤,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일들을

얼추 해내었을 그때에~

톡 톡 빗방울이 떨어집니다.

아아~ 

세상에 이보다 흐뭇한 순간은 세상에 별로 없지 싶어요^^


배는 고프고

찬밥은 두 사람 몫으로

좀 모자랄 듯하여

하지감지를 쪘습니다.


뜨끈한 국에 식은 밥 말아 훌훌 먹은 뒤에,

갓 쪄낸 감자를 입에 넣은데에~

“캬아~카아~~” 

술 한잔 넘길 때 나오는 바로 그 감탄사가 연이어 터져 나오네요.

포실포실 입에 담기는 그 맛이

하루의 피로를 사르르 녹여 주는 것이었습니다.

이른바 ‘피로 해장 감자’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듯했네요.


찐 감자 네 개를

마치 맥주 오백 넉 잔을 마시는 듯한 기분으로 허겁지겁 냠냠 자시고는

‘오늘 하루는 이걸로 됐다, 너무나 충분하다~’ 

느꼈습니다.


힘든 밭일 끝에 먹는 하지감자, ‘피로 해장 감자’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듯했네요.


이 밤, 

세상 모든 풀들이 반길 비가

땅을 적시는 소리에

제 마음도 촉촉해집니다.


옆지기와 더불어 풀을 맨 그 자리에 

우리가 심은 작물이

자연스럽게 돋아난 풀보다.

조금만 더 많이 자라게 해 달라고

비님께 빌어 봅니다.

이 정도는

욕심 적은 희망이라고 해도 될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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