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딴지(돼지감자) 노동 앞에 닫힌 몸과 마음의 빗장을 열며
마을 땅을 임대해
자색 뚱딴지(돼지감자) 농사를
지은 지 어느덧 5년.
나무 심었던 밭이라
트랙터 힘을 빌리고 나서도
옆지기 농부님이 몇 날 며칠을
괭이 들고 돌을 골라내던 풍경이
지금도 생생하기만 하다.
(그때 힘 보태준 도시의 인연들도
너무나 감사히 기억난다.)
다랑이 논처럼
층층이 좁다랗게 펼쳐진
그 밭에 뚱딴지 종자를
한 알씩 심던 어느 봄날.
산골살이 5년을 훌쩍 넘기고도
여전히 농사에 서툴러
점심때 맞춰 집에 돌아와
거울을 보니 얼굴이 놀랍도록
시뻘개서 그제서야
‘아, 해를 등지고 일해야 하는구나!’
사무치게 깨달았던 시간.
옆지기가 도맡아 캐오던
뚱딴지, 나도 내 몫을 해볼래!
단단히 마음먹고 수레를 끌고서
밭으로 가는 언덕을 오르는데
그때부터 힘에 겹더니만
한 삼심 분인가 간신히
약초 괭이로 땅을 파고
뚱딴지를 거두면서 그만 탁
주저앉아 버렸다.
속이 울렁거릴 만큼 힘에 겨워서.
씻는 거라도 잘해 볼 테야,
쌀쌀한 늦가을 두툼한 잠바에
고무장갑 끼고 수돗가에 앉아
흙에 덮인 울퉁불퉁 수확물을
칫솔질로 구석구석 씻어보는데…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님 따라
바람은 더욱 차가워지면서
배는 고프고 막 추우니까
너무 서러운 거라.
그래서 그랬지.
뚱딴지 캐는 거 씻는 거, 나 안 해, 못 해!
내 칭얼거림에
옆지기 농부님은 한결같이
대답을 해주었네.
당신 힘들면 하지 마, 내가 다 할 테니까.
그렇다고 일이 끝나는 건 아니지.
뚱딴지차를 만들려면
얇게 썰어줘야 하니까.
칼질쯤은 어느 정도 할 수 있는 일이
맞기는 했으나 어쩌다 보니
그 일감까지도 결국엔
옆지기 농부님 차지가 되었네.
그저 둥글게 채 썬 것들을
햇볕에 널어놓는 일 정도로
(이것도 엄청 수고가 드는 일~)
뚱딴지 농사와 갈무리에
이 작은 일손 보태며 살아왔다.
5년을 그렇게…
참, 장작불에 뚱딴지차 덖을 때
옆에서 보조를 서기도 했구나.
요것만큼은 빼먹지 않고 했을걸~
올해도 어김없이 돌아온
뚱딴지 수확철.
옆지기 농부님은 시월 말부터
수시로 밭에 올라 수확을 하고
씻어서 썰고 널기 노동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다.
그 모습을 스치듯 바라볼 때면
땀의 무게가 안쓰러우면서도
무념무상의 경지 같은 기운이
아름답고 숭고하게 느껴져
감동에 젖기도 한다.
그 덕분일까.
뚱딴지 노동 앞에 굳게 닫혔던
내 몸과 마음의 빗장이
조금씩 열리는 것도 같다.
하여 어제는 뚱딴지 썰기
노동에 조금 손을 보태었으며
오늘은 무려 씻기 노동을
한 시간 넘게 실천했다.
해가 좋았고
일 양이 적어서 그랬겠지만
둘 다 노동의 끝이 무척
흐뭇하고 만족스러웠다.
앞으로 더 해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기쁘게 샘솟았음!^^*
지금도 산골 하늘 아래
말갛게 고운 뚱딴지가
산바람 머금으며
바싹해지고 있다.
며칠간 해님을 더 만나면
잘 마를 테고, 머지않아
무쇠 아궁이솥에서
구수하고 몸에 좋은 차로
다시 태어날 테지.
산골살이 텃밭농사 모두
간난고초가 은근히 많았지만
무척 오랜만에 이런 생각을 해본다.
뚱딴지 농사짓기를 참 잘했구나!
계속 고고~^^*
#뚱딴지 #돼지감자 #돼지감자차 #농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