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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힘들면 하지 마, 내가 다 할 테니까”

뚱딴지(돼지감자) 노동 앞에 닫힌 몸과 마음의 빗장을 열며

by 산골짜기 혜원

마을 땅을 임대해

자색 뚱딴지(돼지감자) 농사를

지은 지 어느덧 5년.


나무 심었던 밭이라

트랙터 힘을 빌리고 나서도

옆지기 농부님이 몇 날 며칠을

괭이 들고 돌을 골라내던 풍경이

지금도 생생하기만 하다.

(그때 힘 보태준 도시의 인연들도

너무나 감사히 기억난다.)


20251101_132426.jpg 약초괭이로 뚱딴지 캐기, 쉽지 않아요~


다랑이 논처럼

층층이 좁다랗게 펼쳐진

그 밭에 뚱딴지 종자를

한 알씩 심던 어느 봄날.


산골살이 5년을 훌쩍 넘기고도

여전히 농사에 서툴러

점심때 맞춰 집에 돌아와

거울을 보니 얼굴이 놀랍도록

시뻘개서 그제서야


‘아, 해를 등지고 일해야 하는구나!’


사무치게 깨달았던 시간.


옆지기가 도맡아 캐오던

뚱딴지, 나도 내 몫을 해볼래!

단단히 마음먹고 수레를 끌고서

밭으로 가는 언덕을 오르는데


그때부터 힘에 겹더니만

한 삼심 분인가 간신히

약초 괭이로 땅을 파고

뚱딴지를 거두면서 그만 탁

주저앉아 버렸다.

속이 울렁거릴 만큼 힘에 겨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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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04_145646.jpg 땅에서 갓 나온 뚱딴지의 모습.


씻는 거라도 잘해 볼 테야,

쌀쌀한 늦가을 두툼한 잠바에

고무장갑 끼고 수돗가에 앉아

흙에 덮인 울퉁불퉁 수확물을

칫솔질로 구석구석 씻어보는데…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님 따라

바람은 더욱 차가워지면서

배는 고프고 막 추우니까

너무 서러운 거라.


그래서 그랬지.


뚱딴지 캐는 거 씻는 거, 나 안 해, 못 해!


내 칭얼거림에

옆지기 농부님은 한결같이

대답을 해주었네.


당신 힘들면 하지 마, 내가 다 할 테니까.


그렇다고 일이 끝나는 건 아니지.

뚱딴지차를 만들려면

얇게 썰어줘야 하니까.


칼질쯤은 어느 정도 할 수 있는 일이

맞기는 했으나 어쩌다 보니

그 일감까지도 결국엔

옆지기 농부님 차지가 되었네.


그저 둥글게 채 썬 것들을

햇볕에 널어놓는 일 정도로

(이것도 엄청 수고가 드는 일~)

뚱딴지 농사와 갈무리에

이 작은 일손 보태며 살아왔다.

5년을 그렇게…


참, 장작불에 뚱딴지차 덖을 때

옆에서 보조를 서기도 했구나.

요것만큼은 빼먹지 않고 했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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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05_105609.jpg 흙에 덮인 울퉁불퉁 뚱딴지를 칫솔질로 구석구석 깨끗이 씻기.


올해도 어김없이 돌아온

뚱딴지 수확철.


옆지기 농부님은 시월 말부터

수시로 밭에 올라 수확을 하고

씻어서 썰고 널기 노동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다.


그 모습을 스치듯 바라볼 때면

땀의 무게가 안쓰러우면서도

무념무상의 경지 같은 기운이

아름답고 숭고하게 느껴져

감동에 젖기도 한다.


20251105_105544.jpg 흙이 사라진 뚱딴지의 멋지게 건강한 자태.

그 덕분일까.

뚱딴지 노동 앞에 굳게 닫혔던

내 몸과 마음의 빗장이

조금씩 열리는 것도 같다.


하여 어제는 뚱딴지 썰기

노동에 조금 손을 보태었으며

오늘은 무려 씻기 노동을

한 시간 넘게 실천했다.


해가 좋았고

일 양이 적어서 그랬겠지만

둘 다 노동의 끝이 무척

흐뭇하고 만족스러웠다.

앞으로 더 해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기쁘게 샘솟았음!^^*


20251105_144241.jpg 얇게 썬 뚱딴지를 햇볕에 널어 놓았다.


지금도 산골 하늘 아래

말갛게 고운 뚱딴지가

산바람 머금으며

바싹해지고 있다.


며칠간 해님을 더 만나면

잘 마를 테고, 머지않아

무쇠 아궁이솥에서

구수하고 몸에 좋은 차로

다시 태어날 테지.

산골살이 텃밭농사 모두

간난고초가 은근히 많았지만

무척 오랜만에 이런 생각을 해본다.


뚱딴지 농사짓기를 참 잘했구나!

계속 고고~^^*


#뚱딴지 #돼지감자 #돼지감자차 #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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