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첫눈과 배추

겨울이 안겨주는 시련쯤이야, 기꺼이 받아들여야지

by 산골짜기 혜원

올 때가 되기는 했지만

(예보를 놓친 탓인지)

간밤 눈앞에 흩날리는 하얀 송이들이

조금은 비현실 같았다.


아침에 바깥을 보니

어젯밤 풍경이 꿈은 아니었구나.

그래, 드디어 올해 첫눈이!


20251205_144556.jpg


텅 비어 황량하던 밭이

하얀 눈으로 뒤덮여

다사로워진 듯도 하고.


몇 포기 남겨둔 배추가

‘날 좀 보소~♬’ 하는 것 같아

기꺼이 응답을.


거의 날마다 옆지기 농부님이

벌레님들 다른 자리로 옮겨주며

정성을 다했으나

속이 덜 차서 끝내

김장 주인공은 되지 못한

텃밭 배추들.


살살 녹아내리는 눈 사이로

푸릇한 때깔이 고맙게 어여쁘다.


배추_4.jpg 살살 녹아내리는 눈 사이로 푸릇한 배추 때깔이 참 고맙게 어여쁘다.


겨울철 산골짜기는

너무 많이 춥고

바라보지 않을 수 없는

메마른 산과 들판의 풍광이

고적함을 넘치도록 차오르게 한다.


봄, 여름, 가을…

다른 철보다 유독

이 계절이 어렵기만 하다.


그래서 배추를 심는 것도 같다.


찬바람에 마음속까지 덩달아

시리고 추울 때


밭에서 거둔 배춧잎들

뽀드득뽀드득 씻는 순간

단단하고 싱싱한 그 이파리들

송송 채 썰어 팔팔 끓이는 시간

구수하고 담백한 배춧국 한 사발

뜨끈히 입에 들이켤 때


그때야 비로소 충만한 기운으로

겨울님에게 감사하게 된다.

하루에 몇 번을 먹어도 좋은

배춧국을 선사해 주신 것만으로도.


그러니 겨울이 안겨주는

시련쯤이야, 기꺼이 받아들여야지.

그러다 보면 어느새 봄이

저만치 와 있을 테니까.


배추_1.jpg 속이 덜 차 김장 주인공은 되지 못한 텃밭 배추.


첫눈과 배추가

겨울맞이 심신단련

알차게 시켜주누나~


아, 오늘 밤 하늘이

무척이나 맑고도 밝다.

어제가 보름이라 그럴 터인데

왠지 눈 덕분에 더

투명해진 것도 같으니


겨울과 함께 하늘도 땅도

그저 모두 고맙습니다! *^^*


배추_2.jpg 첫눈과 배추.


#겨울 #배추 #첫눈 #산골살이 #보름 #시련

keyword
작가의 이전글“당신 힘들면 하지 마, 내가 다 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