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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작가 Dec 25. 2022

왜 답답해하는가?

최근에 '살인자 잭의 집'이라는 영화를 봤다. 살인을 다룬 영화이다보니 피해자와 가해자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영화 속 피해자들은 살인을 당하지만 일부러 유별나거나 아둔하게 그려낸다. 살인자 옆에 앉아 성가시게 말을 시키거나 문을 열어주면 안되는데 문을 열어주거나 나쁜 짓을 할게 뻔한데도 연민하고 믿어주어 결국 자신을 죽음에 몰아넣는다. 피해자를 탓하는 마음이 드는 게 나쁘겠지만 영화는 그렇게 의도하여 그려내고 있다.


답답했다. 그들이 안타까운 것과는 별개로 답답했다. 왜 저런 선택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결과가 나쁜 쪽으로 흘러갈게 뻔히 보이는데 그들은 그걸 일부러 무시하듯 벼랑 끝으로 달려갔다. 그걸 답답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옳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자연스레 불쑥 피해자를 탓하게 되는 마음이 들었다. 영화가 그런 영화라 변명하고 싶지만 그 영화에서만 그런 건 아니었다.


최근 읽은 책에서도 그랬다. 아직 다 읽지 못했지만 주인공은 자식을 잃은 부모라 어떤 사건에 대한 대처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 그 상황이 안타깝지만 멀찌감치 떨어져 책을 읽는 나는 고구마 전개에 가슴 치는 시청자처럼 느리고 굼뜬 주인공이 어서 정신을 차리고 사건에 다다르기를 바라며 책장을 빠르게 넘겼다.


영화나 책에서만 그런 건 아니었다. 실생활에서도 그랬다. 자주 짜증이 나고 답답했다. 부모님이 잘 모르는 스마트폰 기능을 물어볼 때도, 굳이 다시 들을 필요도 없는 시덥잖은 얘기를 되묻는 사람들도 다 답답했다. 은연 중에 내 안에 있는 타인에 대한 무시와 괄시를 느끼며 때때로 그것을 숨기지 않았다. 왜 저렇게 말하는 거야? 왜 저렇게 행동해? 이런 생각들이 톡톡 튀어올라 표정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타인의 삶이 있고 그것에는 그들만의 방식이 있음을 안다. 난 그것을 그림으로도 꽤 정성들여 얘기하기도 한다. 근데 막상 나라면 그러지 않았을 말과 행동에 대해 나도 모르게 답답함을 느끼고 속으로 타인의 행동과 말을 얕잡아보고 있다. 모 드라마에 어떤 배우가 내연을 저지른 인물에게 '멍청한 건 답도 없다.'는 비난을 하는 장면을 자주 떠올리는 게 요새 나의 상태를 대변해줄지도 모른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생각해보았다. 왜 요즘 누군가를 그토록 답답해하고 그걸 너머 혐오에 가까워질 감정을 느끼고 있는가에 대해. 내가 하는 일 때문인가 싶기도 하다. 디자인 일을 하며 고객을 상대하다보면 내 얘기는 전혀 듣지 않고 자기 할 말만 하며 정작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모른 채 나의 시간을 축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럴 때면 이 사람도 엄연히 한 업장의 주인이고 한 사람의 직업인일텐데 일을 이런 식으로 처리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작업의 과정을 잘 모르니 그럴 수 있다는 얘길 들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태도의 문제다. 일을 맡기는 사람이 일을 하는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태도.


이걸 차치하고 결국 이런 사건들이 반복되면서 똑똑하고 분명하게 일처리를 하는 사람보다 대충 남에게 맡기기 좋아하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결론을 스스로 내렸다. 그래서 그 사이에 똑부러지게 일을 처리하고자 애쓰는 나는 작은 우월감을 느끼며 친절한 말투와는 다르게 속으로 그들을 깔보고 있다.


문뜩 이런 마음이 괜찮은 건가 싶다. 나 역시 실수 투성이에 못하는 일, 잘 모르는 일, 겁나는 일 투성이면서. 누군가에게 나 역시 답답하고, 또 그들 역시 그들의 영역에서는 베테랑일텐데. 고작 이런 일로 우쭐해도 되는걸까. 너무 우물 안 개구리 같지 않은가.


각자의 인생을 인정하자며 얘기해온 나와 내 시꺼먼 속마음이 너무 확연히 다른게 아닌가. 쥐뿔도 없으면서 오만하기 짝이 없는 내가 이제서야 어처구니 없다. 글을 쓰고 정리하니 그제야 좀 보인다. 겸손할 거리도 없는 나지만 사람이 왜 겸손해야 하는지 조금은 알겠다.


이렇게 글을 쓰고도 불쑥불쑥 답답하겠지만 조심해야겠다. 내 실수, 내 허둥지둥, 내 느려터짐과 더딤 역시 누군가 이해해주길 바란다면 나 역시 그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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