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 에세이 여덟 번째 이야기
여러분 혹시 '로또 부부'라는 말 들어 보셨나요? 저는 최근에 저 말을 알게 됐는데요, 처음에 듣고서는 아주 사이가 좋은 호흡 척척 부부를 일컫는 말인 줄 알았습니다. 세상에 얼마나 잘 만났다고 생각하면 '로또 부부'라는 표현을 썼을까! 하고 감탄하면서요. 그런데 원 뜻은 그게 아니더군요. '안 맞아도 안 맞아도 너무 안 맞는 부부'를 두고 저렇게 표현한다고 했습니다. 그 뜻을 알고는 무릎을 탁 쳤네요. 꼭 저희 부부 같았거든요, 하하.
결혼 생활 11년 차. 저와 남편은 아무리 생각해도 잘 맞는 구석이 단 한 군데도 없는 부부입니다. 누구나 그렇듯 연애 시절에는 당연히 '우린 어쩜 이렇게 잘 맞을까?' '어쩜 이렇게 잘 만났을까?' 매일 감탄사를 연발하며 사랑을 키워 나갔죠. 우선, 서로 신앙 있는 배우자감을 만나는 게 1순위였는데 그것부터 일치했습니다. 일을 하며 만났지만 알고 보니 고등학교 선배였고, 문과 출신인 것도 클래식을 좋아하는 것도 공통점이 정말 많았어요.
그렇게 연애한지 3개월 만에 결혼 이야기가 나왔고, 만난 지 채 1년이 안 돼 모두의 축복 속에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음, 그것이 전쟁의 서막일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죠. 하아, 지금 돌이켜 생각해 봐도 어떻게 그 시간을 지나왔는지 까마득하네요. 정말 장난 아니게 싸웠습니다. 어쩜 그렇게 내가 꼭 원하던 상대와 결혼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참 신기하다고 입을 모았던 남편과 제가 그렇게 180도 다른 사람일 줄은, 서로 잘 맞는 부분이 단 한 군데도 없다고 생각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일단 저희 남편은 아주 깔끔한 사람입니다. 치약은 끝에서부터 수직으로 짜서 올라와야 하고,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도 용납이 안 되고요. 모든 물건에는 제자리가 있다는 게 남편의 철칙입니다. 따라서 여기저기 나뒹구는 애들 장난감은 남편의 스트레스 유발 요인 제1순위죠. 그런 남편과 달리 전 다소 지저분한 주위 환경에도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사람입니다. '애들이 놀다 보면 어지를 수도 있지!'라고 주장하는 제게 남편은 늘 이렇게 응수합니다. '놀면서 정리하는 법도 가르쳐야지!'
깔끔한 성격의 연장선에서 남편은 '초' 안전주의를 지향하는 사람입니다. 코로나 발발 전, 안전과 관련한 저희 집의 최대 화두는 미세먼지였어요. 이미 그때부터 거실 수납함 한 칸은 각종 마스크로 꽉 채워져 있었기에 저흰 코로나가 터지고 나서도 마스크 대란과는 크게 상관이 없었습니다. '쾌적한 공기'는 남편의 1순위 관심사였기에 저희 집 거실과 각 방에는 모두 공기청정기가 놓여 있습니다. 팬데믹 직후에는 각종 세정제는 물론 전해수기까지 구입해 살균제도 직접 만들어 쓰고 있습니다.
저는 어떨까요? 예상하시는 그대로입니다. 미세먼지는 물론이요 코로나 초기에도 크게 위기의식이 없었어요. 지금이야 집 밖에도 잘 안 나갈 정도로 생활하고 있지만, 마스크 쓰는 사람, 안 쓰는 사람이 반반일 때는 저도 당연히 안 쓰고 다녔고요. 한 번은 안 쓰고 마트에 갔다가 퇴근하는 남편과 딱 마주치는 바람에 그날 얼마나 혼이 났는지 모릅니다. 남편 입장에서는 애를 둘이나 키우는 엄마가 안전의식도 없고 위기감도 없다고 느껴졌겠죠.
아까 연애 때는 둘 다 클래식을 좋아하는 공통점이 있다고 말했었지요? 그런데 그것도 정도의 차이가 심했습니다. 저는 그저 첼로 같은 현악기 선율이 좋아 뭔가 집중이 필요할 때, 위안이 필요할 때 한 번씩 듣는 정도였거든요. 오래 들으면 졸리고요. 그런데 남편은 완전히 클래식 마니아였어요. 운전을 할 때 다른 음악을 듣다가도 클래식을 들으면 졸음이 달아난다며 클래식을 크게 틀어놓곤 했습니다. 책장에는 각종 음반이 가득했고요. 일 년에 꼭 몇 번은 음악회 나들이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10년쯤 살다 보면 맞춰질 줄 알았는데. 음, 여전히 안 맞아요, 하하. 여전히 싸우고요. 넌 대체 왜 그러냐며 서로를 공격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물어뜯고 싸우던 결혼 초반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지금은 반은 포기 반은 인정한다는 점이에요. 남편이 하루에 10번씩 하던 '정리해라, 청소해라' 같은 말을 이제는 한두 번도 채 하지 않아요. 대신 본인이 직접 합니다. 저 역시 툭하면 비난하던 남편의 약점을 더 이상 공격하지 않고요.
싸우면서 정든다고 10년쯤 살다 보니 소위 '전우애'가 생긴 것 같아요. 이런저런 일을 겪어내며 지나온 시간들. 그 사이에 서로를 쏙 빼닮은 아이도 두 명이나 낳아 키우고 있고요. 서로에게 좋은 일이 생겼을 때, 또 슬픈 일이 생겼을 때 가장 먼저 찾는 사람, 유일하게 나누는 사람도 이제 둘뿐이라는 걸 잘 압니다. 무엇보다 남편과 제가 부부로 만나게 된 건 인력으로 된 게 아니니까요. 두 사람이 하나가 되어 가정을 이루도록 하신 크고 놀라운 하늘의 계획을 구하며 하루하루 나아갈 뿐입니다.
부부도 닮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함께 울고 웃으며 지낸 세월만큼 표정도 모습도 닮아간다는 말이겠지요. 저와 남편의 지난 10년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못해 서로를 힘들게 했던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서로의 남편과 아내로 함께 맛본 달고 쓴 시간들이 저희를 더욱 단단히 묶어주었어요. 단 하나도 맞지 않는 로또처럼 여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 다른 사람을 부부로 묶어주신 하늘의 계획을 생각하며 소망을 품어봅니다. 우리 부부를 통해, 우리 가정을 통해 어떤 드라마가 펼쳐질지 설레는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