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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돌레 매거진 Nov 30. 2024

꼭 영어여야 하나요?


Writer. 차이트



"그... 언어마다 톤이 좀 다른 것 같아요."


 

   (여자)아이들의 우기가 라이브 방송 중 꺼낸 말이다. 그가 중국어보다 한국어를 할 때 목소리가 더 높아지는 것 같다는 팬의 말에 동의하며, 일본어는 그보다도 더 높아지는 것 같다고도 덧붙였다. 실제로 같은 팀 멤버 슈화 또한 중국어에서 목소리가 더 낮고, 민니도 영어를 하면 소리 위치를 아래로 내린다. 이미 수많은 네버랜드((여자)아이들의 팬덤)가 이에 대한 영상을 만들어 놓았으니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지금 당장 유튜브로 달려가 확인해도 좋다.
 
         -달라도 너무 다른 슈화 중국어 톤:(https://youtu.be/efK9_fpb4DA?si=ieDWo0nr0vcLTZ-t)
        -우기의 발리는 중국어 톤: (https://youtu.be/eUZDZC36skU?si=KjVhwrD-EiCWCi63)-중국어 할 때 목소리톤 180도 바뀌는 슈화(https://youtu.be/vsZnJ-xzgjI?si=oerG2F_dXQqpVnn0)




 



 

   우기가 느낀 이 톤 차이란 정말 실존할까? 아니면 그저 착각일까? 눈썰미가 좋다면 당신은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른 멤버들 역시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는 점에서 이러한 일은 우기 개인의 주관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즉, 언어 별 음의 고저차는 실존한다. 하지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까? 언어 별 톤 차이는 언어마다 쓰게 되는 근육과 기관이 조금씩 다르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이의 연장선으로 개인이 점점 몸으로 경험하고 익숙해지는 체내 기압, 기류의 결도 달라지는데 이런 부분이 결국 소리의 특색까지 만드는 것이다. 이가 실재하는 개념임을 넘어, 인과가 분명한 물리 현상임이 생소하게 다가올 수는 있겠다. 조금 더 들어가보자. 


일본어는 유하게 흐르는 언어다. 받침도 거의 없다. 요구되는 발음이 간단해서 결국 완벽한 조음에 필요한 신체작용이 그리 복잡하지 않다. 그래서 일본어 구사자는 비강, 구강만 써도 발화에 별 문제 없는 상황을 겪으며 자란다. 같은 음 높이를 맞추어도 소리가 비강에서 더 많이 울리면  훨씬 쨍한 질감을 내고 높게 들리는데, 일본인이 대부분 높고 얇은 목소리라고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어는 어떨까? 그보다 받침도 많고, 발음도 세다. 받침을 제대로 발음하기 위해 입모양이 만드는 구조가 훨씬 복잡해지면서, 목 위까지 올라온 공기가 입 밖으로 나가 뱉어지기까지 뚫어야 할 장애물이 많다. 언어가 요구하는 발성이 이렇다보니, 한국인은 생리적 필요에 따라 본능적으로 몸이 더 강한 기압과 기류를 많이 쓸 수 밖에 없게 된다. 이러한 성장배경을 경험하면서 한국인의 몸은 무의식 중에 성대, 후두, 흉곽 같은 좀 더 큼직한 하부기관들을 습관적으로 끌어 쓴다. 최종적으로 비강이 기여하는 바가 상대적으로 적어지니 한국어를 쓰는 사람은 일본어의 경우보다 목소리에 두께가 생기는 것이다. 물론 영어권 화자는 일본어나 한국어보다도 훨씬 고르고 힘 있는 근육 사용을 보인다. 성대의 진동, 횡격막과 복근 등 단전부터 시작해 각종 장기와 근육을 고루 쓰며 성장하니 그 반응도가 앞선 두 언어보다도 훨씬 커지는 것이다. 이러한 성장배경은 영어권 화자에게 울림이 넓고 풍부한 목소리를 안겨주는데, 이는 영어권 보컬리스트가 이른 때부터 유달리 어른스러운 톤을 갖는 원인(서빛나래 2018, 26)이 된다. 정리해보자면 각자가 사용하게 되는 언어에 따라 목소리의 느낌이 달라지고, 일본어, 한국어, 영어 순으로 발화자는 점점 더 저음역의 울림 있는 목소리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떠올려보자. 높고 쨍한 목소리의 영어권 화자가 흔했는가? 아닐 것이다.





© Red Velvet Youtube Channel


 

   이는 최근 케이팝에서 영어 가사가 부쩍 늘어난 상황과 관련 있다. '언어가 달라지니 느낌이 달라진다'는 의견은 대화 뿐만 아니라 '음성'이라는 주제 아래 포괄적으로 적용되기 때문에 보컬링에서도 필수 고려사항으로 자리잡는다. 이는 현업자도 실제로 자주 겪는 상황이다. 슬기(레드벨벳)는 '(한국어 발음이 센 편이라)영어 데모를 한국어로 부르면 느낌이 많이 달라진다'며 언어 때문에 원래의 미감이 최종본까지 온전히 남을 수 없음을 아쉬워한 적 있다. (Red Velvet https://youtu.be/hgZm7MPUoFc?si=r2Y7LGYCdNhjw0CE, 4:11~4:16, 12:10~13:53, 14:20~14:40) 영어가 만들어주는 공간감은 소리가 미니멈한 반주에 잘 묻어가게끔 돕는데, <28 Reasons> 역시 그러한 류의 음악에 해당하는 바. 베이스와 킥 위주의 저음역이 부각되는 소스를 쓰고, 반주 트랙에 공백이 많아 상당히 트렌디한 이지리스닝 계열에 가깝다. 이런 류의 노래는 트랙 수를 최소화한 상황에서 반주가 아주 미세한 감각으로 그루브를 만드는 만큼 보컬도 훨씬 신경써야 할 것이 많아진다. 그런데 슬기는 특히 비강에서 울리는 소리를 자주 쓰는 편이다. 따라서 그 특성상 보컬이 붕 떠서 반주 트랙과는 겉돌 위험이 있기에 슬기도 이를 걱정한 것으로 보인다. 로제(블랙핑크) 역시 자체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블랙핑크: 세상을 밝혀라>에서 <What you waiting for> 데모를 모두 허밍으로만 스케치(Sketch; 보컬이 따를 선율을 대강 그림)한다.(mimicam https://youtu.be/XlBpImBB7XU?si=ypkDLbYMQGysvnXo, 0:41~0:46) 이 외에도 비슷한 예시는 많이 찾을 수 있다. <컴백전쟁: 퀸덤>에서는 소연((여자)아이들)이 <LION>을 작곡하며 소절마다 [~up]으로 끝나게끔 운율만 대강 맞추며 멜로디를 쓰는 장면을 보았을 것이다.(Mnet K-POP https://youtu.be/hUykIdD4pQM?si=cCYWstJhgvK3V63r, 0:38~0:58) 윤하의 <사건의 지평선> 데모 역시 일본어고(YOUNHA OFFICIAL https://youtu.be/ScBycwiM-Do?si=P_bFEeXH79hz7oXy), 우주소녀의 <Last Sequence> 녹음 비하인드에서는 언어를 특정할 수 없는 보컬이 들려오는 등(우주소녀 WJSN https://youtu.be/EfrJDD7WG30?si=_nFTQG4wKNed16ZF, 22:36~38) 예시는 많다. 스케치 단계에서 이런 식으로 발음에 장애물이 없는 음성만을 위주로 멜로디를 짜는 일은 유구하다.






 그러니 어느 언어를 더 많이 쓰느냐, 나아가서 영어가 왜 많이 쓰이느냐 함은 장르적 특성과 엮인 문제다. 슬기와 로제로 예시를 든 두 아티스트가 녹음하던 곡이 팝송의 문법을 따른다는 점에서 그 연관성을 찾을 수 있다. 감각적이고 부드러운 질감을 지향하는 서구권 팝, 클럽뮤직, 혹은 흑인음악 계열처럼 영어의 어감이 크게 기여하는 장르음악을 이지리스닝이라며 아이돌 트랙으로도 선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장르를 가져옴에 따라 원래 해당 장르의 특징이던 언어 역시 같이 중요해지므로 영어 가사의 증가는 필연적이다. 앞서 강한 발음의 예시를 피하려고 하는 많은 사례 역시 반증하듯 결국 자본이나 문화사대주의 풍조만이 문제인 마냥 매도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같은 장르의 음악을 국내 인디 씬에서 시도해도 같은 모습은 여전히 발견할 수 있다. 알앤비(Contemporary R&B)를 위시한 윤하의 5집 'RescuE'는 레이백(Layback; 그루비하게 박자를 조금씩 뒤로 미뤄서 탐), 보컬 프라이(Vocal Fry; 말 그대로 음성을 튀기듯 내는 소리. 끈적하거나 우울한 무드를 내기 위해 쓰이는 기법)와 받침 날리기, 가성의 적극 활용 등 거의 사용하지 않던 톤과 기술의 향연으로 눈부시다. <사건의 지평선> 같은 노래를 성공시킬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리고 우연찮게도 이 앨범은 지금까지 그의 디스코그래피 중 영어가사가 가장 많은 작품이다. 알앤비와 영어의 조합은 윤하라도 예외는 없는 것이다. 이쯤되면 장르와 언어가 우연이라고 보기도 어렵지 않을까. 늘 흑인음악 외길인생을 걸어온  헤이즈(Heize), 빅나티(BIG Naughty), 백예린 등 역시 마찬가지로 쭉 영어를 애용하고 있다.



© 피식대학PSick Univ. Youtube Channel


 소향은 피식쇼(PSICK Show)에서 한국어가 노래로 부르기에는 딱딱 끊어지는 느낌이라고 했다. 반대로 영어는 음절 분리가 명확하지 않고 이어지는 느낌이라, 노래하기에 쉽다며 스스로 느낀 두 언어 간 차이를 언급했다.(피식대학PSick Univ. https://youtu.be/Te7377_IzyQ?si=njzwVzHvmFmXacWZ, 12:42~13:20) 종종 보이는, 한국어가 어울리지 않아서 영어로 작사한 이야기는 구색 좋은 변명이 아니었던 셈이다. 노래는 기본적으로 무언가를 '연결'한다. 처음부터 흐름을 끊을 정도로 발음이 강한 가창과는 상성이 맞지 않을 수 밖에 없다. 그러니 한국어의 사용이 조심스러워지는 것을 넘어, 작업 초창기부터 유한 소리가 선호됨을 보면 높은 영어 채용률은 당연한 결과다. 



 당연한 말이지만 장르는 그가 탄생한 곳의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그 장소에서 쓰던 언어가 주는 어감 역시 장르적 정체성을 결정짓는 일부로 기능한다. 그래서 언어와 장르는 분리할 수 없다. 그렇다면 한국어에 맞는 음악을 개발할 수는 없을까? 아쉽게도 현대음악의 장르나 악기, 사운드는 90% 이상이 서구권에서 발명, 혹은 발견한 결과물인 탓에 후발주자인 케이팝에게 선택지는 전무했다. 그렇다고 당장 맞춤형 장르를 찾거나 만들기에는 너무 비효율적이다. 그러니 아이돌 소속사가 케이팝에서 '케이'를 떼려 한다는 말만으로는 최근 케이팝에서 영어 가사가 늘어난 이유를 다 설명할 수 없고, 그들의 속사정도 다 파악할 수 없다. 이 일은 언어학적, 음성학적, 그리고 미학적인 문제가 모두 얽힌 일이다.










© 한국일보 Youtube Channel



   전체가 영어로 작사된 노래 발매는 더 이상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처음부터 흑인음악을 표방하던 YG엔터테인먼트의 작품이나 영어권 진출을 노리고 낸 트랙이 아님에도 그렇다. 한국일보 유튜브 채널 휙(hwick)은 통계로 이를 꼬집었다.(한국일보 2023,  https://youtu.be/jWaPAEjM4IQ?si=nDMi87LLHGne01vK, 0:08)


"3일 발매되는 방탄소년단 멤버 정국의 앨범 '골든'은 앨범에 실린 11곡이 전부 영어 가사다. 블랙핑크 멤버 제니('You & Me'), 르세라핌('Perfect night') 등도 최근 잇따라 영어로만 된 곡을 발표했다. 실제 올해 1~6월 멜론, 지니뮤직 등 8개 플랫폼의 디지털 차트 톱400에 오른 여성그룹 노래에 영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41.3%로 2018년 동기 대비 18.9%포인트 증가했다. 이 같은 'K팝의 팝송화'는 영미권 시장 확대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지만, 정작 한국 가수가 부른 노래를 듣기 위해 '가사 해석 영상'을 찾아봐야 한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어쨌든 영어로 가득한 노래만이 우후죽순 쏟아져 나옴은 통계대로 사실이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케이팝이라는 정체성을 띤 만큼 모국어로도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싶고, 이해가 쏙쏙 되는 내용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야 모두 같다. 케이팝의 글로벌화를 위한 터전을 닦았다 자부하는 국내 팬덤의 입장도 십분 이해 간다. 하지만 소비자라는 이유만으로, 또는 금전을 대가로 치렀음을 이야기하며 일방적인 수동태를 고수함은 좋지 않다. 어떠한 현실적 타협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언어적인 예시처럼, 설령 제작자가 소비자에게 양보하고 싶다 하더라도 언어를 바꾸기 위해 장르를 재고하는 일까지 따라온다는 설명을 매번 구구절절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언어와 음악은 케이팝 산업의 중심축이다. 그러니 섣불리 건들 수 있는 사안도 아니다. 아티스트의 레벨, 성적을 좌우하는 것이 결과물인 만큼 팬들 역시 제작자가 아니라고 해서 몰라도 된다고 생각함은 썩 바람직하지 않다. 케이팝은 지금 '어쩔 수 없는 것들'의 악순환에 놓여있고, 생각보다 당신의 이해가 많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 합의점에 다다르기 위해서 한 쪽만 상대방을 이해하려 한다고 해결되는 관계는 없듯 팬덤과 제작자의 사이도 그렇다. 


그러니 꼭 영어여야 했나요?라고 한다면 필자는 끝내 끄덕이겠다. '꼭'이 왜 '꼭'일 수 밖에 없는지, 궁금증을 갖는 능동적 참여를 당신에게도 권하고 싶다. 때로는 해결보다 이해가 답이기도 하니까. 물가는 오르고, 애정하는 것들을 위해 돈을 쓰는 상황에서 업계까지 이해해야 한다는 것은 종종 터무니 없는 말로 들리겠지만, 사실 어쩌면 우리가 보낸 사랑 중 일부는 금전보다 이해력이라는 서포트가 더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우리 모두 이해와 너그러움에 한 번 초점을 맞춰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참고문헌


             학위논문


       서빛나래. 2018. "다양한 대중음악 장르의 표현에 따른 한국어 딕션 방법에 대한 연구". 석사학위, 단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시청각 자료


             Red Velvet. 2022. "SEULGI 슬기 '28 Reasons' Recording Behind I 28 Reasons". 2022년 10월 18일. 동영상. 4:11~4:16, 12:10~13:53, 14:20~14:40. https://youtu.be/hgZm7MPUoFc?si=r2Y7LGYCdNhjw0CE.
             mimicam. 2020. [Clips] Rosé (로제) Vocalizing/Hums/Singing on Netflix ‘Light Up The Sky’. 2020년 10월 16일. 동영상. 0:41~0:46. https://youtu.be/XlBpImBB7XU?si=ypkDLbYMQGysvnXo.
             Mnet K-POP. 2019. [퀸' Story] (여자)아이들 'LION' @ 퀸덤 FINAL 경연. 2019년 11월 1일. 동영상. 0:38~0:58. https://youtu.be/hUykIdD4pQM?si=cCYWstJhgvK3V63r.
             YOUNHA OFFICIAL. 2024. 윤하(YOUNHA) - 사건의 지평선 ver.0. 2022년 11월 8일. 0:00~2:30. https://youtu.be/ScBycwiM-Do?si=P_bFEeXH79hz7oXy.
             우주소녀 WJSN. 2022. [UZZU TAPE] EP.183 'Sequence' 앨범 준비 비하인드 01화. 2022년 8월 10일. 22:36~38. https://youtu.be/EfrJDD7WG30?si=_nFTQG4wKNed16ZF.
             피식대학PSick Univ. 2024. [한글자막] 소향에게 올바른 애국가 첫 키를 묻다. 2024년 1월 28일. 12:42~13:20. https://youtu.be/Te7377_IzyQ?si=njzwVzHvmFmXacWZ.
             한국일보. 2023. 르세라핌, 에스파, 블랙핑크... 그리고 정국 신곡에도 없다는 "이것" | 휙 #huick. 0:08. https://www.youtube.com/watch?v=jWaPAEjM4I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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