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여과지를 빠져나간 영화들 1
천재는 비상하다, 그렇다면 천재의 삶 또한 비상한가.
<굿 윌 헌팅>은 천재에 관한 이야기이다. MIT 대학의 청소부로 일하고 있는, '윌 헌팅'의. 그는 수학계에서 저명한 교수도 2년에 걸쳐 증명하는 문제를 손쉽게 풀어내고, 하버드생이 꼬박 하루 걸려 해내는 과제를 몇 분만에 해치운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꿈도 못꿀 일들이 그의 머리에선 일어난다. 간단히, 그리고 너무나도 빠르게.
솔직하게 말하자면, 부러웠다. 똑똑한 사람, 그것은 우리가 모두 되고 싶어하던 것이 아닌가. 평소엔 공부도 안하다가 몇시간 만에 훌훌 시험범위를 끝내고 A를 맞고, 남들이 못하는 것을 해낸 뒤 선망의 눈빛을 받는 것. 우리는 모두 '천재'가 되고 싶어한다.
그러다가 궁금해졌다. '천재는 비상하다. 그렇다면 천재들의 삶 또한 비상한가.' 뛰어난 지능의 삶이 나은가, 일반적인 지능의 삶이 나은가, 그것이 궁금했다. <굿 윌 헌팅>을 지켜보던 처음부터 끝까지, 머리 한켠에 머물던 질문을 이 곳에 끌고 왔다.
" 천재의 삶에 관한 고찰 "
물론 삶을 판단하기에 앞서, 성공적인 삶이란 무엇인가 고뇌했다. 답은 ‘없다'. 좋은 대학을 나왔지만, 누구처럼 상은 못타고 알아주지 않는 대학에서 교수로 역임중인 맥과이어 교수의 삶이 실패한 것이 아니었던 것처럼, 객관적으로 '성공적인 삶'도 '실패한 삶'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글은 ‘천재의 삶의 비상함’에 대한 고찰이기에, 대략적인 판단이 필요할 것 같다. 또 삶에 대한 판단에는, 어느 정도의 기준이 필요하다. 그래서 가져온 것이 가장 진부하고도 일반적인 소위 ‘성공적인 삶의 요소’로 여겨지는 것들이다. 필자 또한 100퍼센트 공감하는 것들은 아니지만, 이번에만 판단 기준으로 빌려오도록 하겠다. 부디 한번만 봐주시라.
삶에 관한 고찰 거리들 ; 사회적 성취, 인간 관계, 감정적 만족
지나치게 현실적이지만, 알베르트 카뮈는 ‘돈 없이도 행복할 수 있다고 설파하는 건 일종의 정신적 허영이다’라고 하였다. 이처럼 사 ‘사회적 성취’와 ‘돈’은 좋은 삶의 필수조건은 아니겠지만, 필요조건이 될 수는 있다.
천재는 뛰어난 지능이나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다. 또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뛰어남'은 곧, 재화로 연결되곤 한다. 물론 모든 천재가 이러한 사회적 성공의 길로만 나아가는 것은 아니다. ‘테드 카진스키’처럼, 테러리스트가 된 천재도 존재한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들에게는 높은 사회적 성취를 이뤄낼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보다 말이다.
영화에서, 친구 척은 윌에게 ‘너는 당첨될 복권을 깔고 앉고서도 너무 겁이 많아 돈으로 못바꾸는 꼴이라고.' 이라고 말한다. 그의 말대로, 천재는 당첨될 복권을 쥐고 있는 것과 같다. 또한, 언제든 그 복권을 '사회적 성취'로 바꿔낼 수 있다. 이 점에서 천재의 삶은 사회적 ‘성취’의 면에 있어 탁월하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일이 필수적인 것은 될 수 없지만, 삶에 대해 ‘인간 관계’는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그것은 관계가 대단하고 특별한 것이라서가 아니라 우리가 ‘인간’이기에 그러하다.
천재를, 천재로 만드는 것은 남들과 다르다는 점이다. 남들보다 비상하고, 남들보다 특별한 재주 혹은 지능이 있는 사람, 그들이 천재가 된다. 즉, 남들과 구별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특별함은 인간관계에 있어 좋은 것이 될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먼저 좋은 점이 될 것은, 많은 사람들이 천재의 주변으로 모일 것이라는 것이다. 이는 특별함에 대한 관심일수도, 혹은 그를 더 좋은 사람으로 성장시키고자 하는 손길일 수도 있다. 존재 자체로 누군가를 끌어들인다. 보통사람의 주변 그 이상의 사람들이, 천재의 주변에 모이게 된다. 그 모든 사람이 천재의 주변인으로 머물지, 혹은 그 이상의 인연이 될 지는 누구도 모르는 것이겠지만, 일단 주변인의 풍요는 인간 관계에 있어 긍정적인 면을 갖는다.
하지만, 문제는 천재의 ‘특별함’이 그를 고립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천재는 언제나 자신이 남들과 ‘다름’을 느낀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친구들마저 자신과 같지 않다. '이방인'의 삶은 천재의 숙명과도 같다. 자신과 처지가 같은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은, 엄청난 고통이다. 한국이 낳은 세기의 천재 김웅용씨 또한, 어디서나 이방인이 되는 삶이 괴로웠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인간 관계에 있어, 천재의 삶은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모두 갖는 것으로 보인다
꽤 많은 경우에서 행복은 성공한 삶의 필수요소가 되고는 한다. 표준국어 대사전에 따르면 행복이란,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를 의미한다. 곧, 자신의 생활에 대한 만족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천재는 어떠한가. 자신의 생활에 대하여 감정적 만족을 느낄 것인가.
먼저 필자의 의견을 말하자면, 아닐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쇼펜 하우어는 '천재는 아무도 보지 못하는 과녁을 맞추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그만큼, 누구보다 깊게 그리고 멀리 생각한다는 것이다. 깊은 사고는, 사고하는 자에게 부정적인 것이 될 수 있다.
대상에 관해 깊게 사고할수록, 그것의 단점이나 나쁜 점을 마주할 가능성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특히나 그 대상이 생활 혹은 삶이라면 그렇다. 셰익스피어 또한, '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나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라고 하지 않았나. 따라서 천재의 깊은 사고는 우울을 동반할 수 있다. 우울은 하강의 감정이지만, 만족은 상승의 감정이기에, 천재의 삶에 관한 '감정적 만족'은 그리 높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 근거로, 헤밍웨이는 ‘지적인 사람이 행복한 경우는 정말 드물다’는 말을 차용한다.
지금까지 천재의 삶에 대해 적어보았다. 좋은 점도 나쁜 점도 있었다. 아마도 천재는 ‘성취’ 혹은 ‘성공’과 같은 외적인 면에 있어서 확실히, 보통의 사람보다 탁월함을 가지는 것 같다. 하지만 그만큼 그들은 보통사람들보다 더 많은, 감당해야 할 ‘정신적 피로’나 ‘고민 거리’ 혹은 ‘정체적 혼란’과 같은 과제거리를 떠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론은 천재의 삶은 특별히 '비상하지 않다'는 것이다. 필자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탁월한 사람을 동경하며 본인과 비교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 누구나 삶에 있어 탁월한 점과 그렇지 않은 점을 가지니까. 비교해본 바, 다른 것은 그탁월한 점과 탁월하지 않은 점이 어느 분야에 있냐는 것 뿐이었다.
생각치도 못한 이의 삶을 경험한 것과 같아 좋았다. 비록 그것의 대부분이 상상과 <굿 윌 헌팅>의 윌의 모습에 기반한 것이었다 해도 말이다. 윌 헌팅을 이 곳에 두고, 필자는 다른 인물의 삶을 만나보러 떠난다. 아마도 그 사람이, 포레스트 검프가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