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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리어앤스카우트 Apr 21. 2018

헤드헌터는 누구의 편인가

헤드헌터는 기업과 후보자 둘 중 누구의 편에 있어야 하는가를 고찰해본다.



헤드헌터는 과연 기업과 개인(후보자) 둘 중 누구의 편에 서 있을지에 대해서 많은 이들이 궁금해한다. 
헤드헌팅 관련 일을 하는 사람 혹은 헤드헌터와 일했던 사람은 이 문제를 한 번쯤 생각해보았을 것이다.
어쩌면 현직 헤드헌터도 위 사안에 대하여 고민하고 있을 수 있다. 


便(편)이라는 단어는 '여러 패로 나누었을 때 그 하나하나의 쪽'이라는 뜻으로 방향을 포함한다.
헤드헌팅이라는 본질은 같아도 어느 편에 있느냐에 따라 정책과 방향은 달라진다.
비유하자면 변호사가 의뢰인이 고소인인지 피고인인지에 따라 변론 방향이 달라짐과 같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법적으로 보면 헤드헌터는 클라이언트인 기업의 편이 맞다.
헤드헌팅 회사가 기업(혹은 기관)과 계약을 체결하기 때문이다.
헤드헌팅 회사는 기업과 계약을 체결하여 채용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인재를 발굴, 추천한다.
그러므로 기업, 후보자 입장에서 편을 나눈다면 법률적으로 본다면 헤드헌터는 기업의 편이다.
물론 기업과 헤드헌팅 회사 쌍방이 윤리적, 법적 문제가 없을 경우를 전제한다.
위의 내용은 헤드헌팅을 모르는 者가 읽어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는 내용이다.


문제는 협업 시스템이 존재할 경우에 달라지는 '편'의 메커니즘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형 서치펌을 기준으로 본다면 헤드헌터들간의 내부 협업이 반드시 존재한다. 
혼자서는 그 많은 채용 프로젝트를 소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객사와 직접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헤드헌터를 키맨(매니저, PM 등과 같다)으로 일컫는다.
이러한 키맨에게 협업으로 프로젝트에 적합한 후보자를 추천한 헤드헌터를 '추천인'이라고 일컫는다.
그렇다면 추천인은 사실 고객사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고 보면 된다.
고객사와 헤드헌팅 회사가 계약을 했지만 추천인은 키맨의 소유권이 있는 고객사와 소통은 할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추천인은 기업(고객사)의 편이 아니라 추천인이 진행하는 후보자의 편에 서게 된다.
그리하여 협업의 시스템 하에서 키맨은 고객사의 편, 추천인은 후보자의 편에 서서 협업이 진행된다.


일반적으로 고객사 담당 헤드헌터인 키맨은 기업의 편에 선다.
후보자를 추천하여 소유권을 점하고 있는 추천인은 후보자의 편에 서게 된다.
물론 키맨과 추천인이 동일 인물일 경우에는 기업(고객사)의 편에 있다고 보면 된다.

그러나 여러 협업이 실타래처럼 얽혀있으면 전체적으로 복잡한 정치적 관계가 형성된다.
추천인이라고 마냥 후보자의 편에서만 권익을 주장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키맨이 고객사를 쥐고 있다고 해서 추천인을 하대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오늘의 추천인이 내일의 키맨이고 어제의 키맨이 오늘의 추천인이 되기 때문이다. 
자주 듣는 '정권이 바뀌면 두고 보자'고 하는 그 논리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헤드헌터가 '누구의 편'이냐를 보려면 외부에서는 결코 알 수 없는 것이다.

이를 파헤치려면 조직행동론에 정통한 학자를 데려와서 분석을 해야 할 것이다. 


법적인 편이 존재하고, 협업에 따른 정치적 편이 존재하더라도 참된 헤드헌터라면 편이 없어야 한다.

고객사를 상대함과 후보자를 상대함의 방향이 일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르고 투명한 채용 시장을 확립하고 정착시키려면 헤드헌터의 바른 윤리관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자신의 이익과 권익 수호에 따라 정책과 방향이 달라지는 헤드헌터는 기술자일 뿐이다.
이러한 임기응변은 대한민국 법률에서 말하는 신의성실의 원칙을 져버리게 만드는 도화선일 뿐이다.


애써 발굴한 후보자와 관계가 단절되어 진행을 철회하더라도 이력서 허위 기재는 기업에 알려야 한다.
마찬가지로 기업의 부당, 불법행위가 있다면 피해자가 없게 해야 한다.
위의 행동을 하려면 상당한 용기, 담력이 요구된다. 
세상은 뿌린 대로 돌아오는 바, 부정의와 다투어 얻은 손해는 미래의 재산임을 인지하길 바란다.

그러므로 헤드헌터는 기업도 후보자도 아닌 正義(정의)의 '편'에 서 있어야 한다.


그렇게 정진한다면 평안한 하루를 보내고 '다가올 내일을 기다리는 사람'으로서 자아를 실현할 수 있다.

다가올 내일을 기다리는 사람은 '미래의 전망'에 믿음과 확신이 있는 사람이다.


미래의 전망을 '비전'이라고 한다.
위 정의에 의하면 정의의 편에서 일하는 사람이 바로 '비전'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헤드헌터는 누구의 편인가를 묻는다면 헤드헌터는 정의의 편에 있어야 한다고 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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