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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나 Nov 23. 2020

네가 자랐다

입학은 하염없이 늦어졌다. 무려 2년 전에 초등학교 입학 선물로 학교 가방을 사다주었고,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기 직전에 같은 브랜드의 필통까지 맞춰줬지만 정작 2013년 생 나의 첫 조카는 초등학교 입학을 못했다. 학교를 열기는 열었으니 입학을 한 것이라고 볼 수는 있겠지만, 학교를 가는 일 말이다. 어린이집, 유치원, 학원, 축구교실이 아닌 학교에 가는 일. 


첫 등교를 한 날은 5월 27일이다. 아침 9시, 언니가 나에게 사진을 몇 장 보냈다. 마스크를 단단히 쓰고, 실내화 주머니를 들고 가방을 멘 조카가 친구의 손을 꼭 잡고 나란히 서 있는 모습, 그리고 학교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 뒷모습이었다. 남은 손으로 브이를 그리고 카메라를 향해서 웃고있었다. 눈이 웃었으니 입도 웃었겠지. 


"떨린다고, 친구랑 같이 의지하면서 들어갔어."


노란 장판을 자른 커다란 명찰을 달았던, 1학년 1반에서 가장 키가 큰 여자 아이였던 나도 그렇게 떨렸던가. 엄마는 초록색 가디건에 빨간 치마를 입혀주었는데, 크리스마스 트리 같은 모습을 하고 볼거리까지 걸려있던 나는 아마 웃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조카는 떨려도 웃고, 옆에 있는 친구와 서로 의지하는 방법을 벌써 배웠다. 


입학 후 며칠 뒤 영상통화를 하면서 묻지도 않았는데 그랬다. "아직은 친구가 없어요. 친구를 못 사귀었어요." 사람들이 하도 친구 많이 사귀었는지를 물어 스트레스가 되었던 모양이다. 학교에 친구가 많아야 할 것 같은데, 아직 충분히 친해지지 않아서 조금 풀이 죽은 거 같았다. 그랬던 조카는 지난주에 친구들이랑 놀아야 한다며 할머니 집에 가지 않아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조금 서운하게 했다. 입학 이후로도 학교에 갔다가 다시 온라인 수업을 했다가 오락가락하는 날이 하염없이 길어졌고 조카는 공부와 학교가 재미있다가 말다가 했지만, 친구를 사귀었고, 많이 사귀었고, 수학인지 산수인지 뭐 하여튼 100점을 맞았는데, 떼를 쓰다가 이렇게 떼를 쓰는데 100점을 맞는 게 무슨 소용이냐며 엄마에게 혼났고, 고모 덕분에 친구들이 못해본 포켓몬 메가 진화를 해봤으며, 혼자 집에 있어도 봤고, 주짓수도 배웠다. 


매끈하지 않고 울퉁불퉁하게, 네가 자랐다. 나는 '이게 사는 건가, 살아있는 게 이런 건가'싶은 순간이 평소보다 몇 배는 많이 찾아온 지난 한 해 동안, 이 생각을 하면 버틸 수 있었다. 이런 세상에서도 네가 자란다, 네가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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