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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나 Jun 24. 2021

정세랑을 세종시로!

정세랑,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모든 일은 접시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정세랑 작가님이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에서 말씀하시듯이 연관검색어가 없어져야 할 무엇인 것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자초지종을 밝히기 위해서는 일단 연관검색어 이야기를 해야만 한다.


접시꽃의 첫 번째 연관검색어는 의외로 무궁화이다. 이유는 닮았기 때문이고, 사람들이 많이 헷갈리기 때문이다. 구분 방법은 매우 쉽다. 무궁화는 나무에 피는 꽃이다. 접시꽃은 키가 크기는 하지만 아주 긴 줄기에 핀다. 친구가 접시꽃과 무궁화를 헷갈렸던 어느 날, 나는 저 꽃이 무궁화가 아닌 것은 확실하다고 말했지만 꽃의 이름은 기억해내지 못했다. 다음에 또 언젠가 그 꽃을 만나면 "이봐, 무궁화랑 다른 꽃을 헷갈리다니 걸그룹이었으면 큰일 났어. 걸그룹이 아닌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꽃 이름을 알려주는 게 훨씬 어른스러운 태도일 것 같아서 검색해보았다. 접시꽃이었다. 무궁화에 대응하는 꽃의 이름이라면, 이름만 두고 봤을 때는 능소화쯤은 되어야 하지 않나 생각했지만 접시꽃이 접시꽃인 것을 내가 어쩔 수는 없었다. 


그러다 다시 친구와 걷고 있는데 무궁화를 닮은 꽃을 또 보게 되었고, 나는 꽃 이름을 말하며 잘난 척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저게 접시꽃이더라고. '접시꽃 당신' 그 접시꽃이 저거야." 문제는 친구가 내가 덧붙인 설명을 전혀 못 알아들은 데 있었다. "'접시꽃 당신'이 대체 뭔데요?" 아, '접시꽃 당신' 몰라요? 도종환? 친구는 난생처음 듣는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고, 그래서 잘난 척은 실패로 돌아갔다. 물론 나도 한 구절 읊을 만큼 그 시를 좋아하지는 않았기에, 아무튼 그런 시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를 읽으면서, 계속 그 생각을 한 것이다. 접시꽃을? 아니, 도종환 시인을. 정확히는 도종환 시인이 대한민국의 제50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었던 것을 생각했다. 


2018년 3월 8일 여성의 날, [왜 안돼? 페스티벌]을 만드는 사람으로 참여했다. 여성을 위한 커리어 플랫폼 '위커넥트'와 나와 친구의 프로젝트 팀인 '와일드 블랭크 프로젝트'가 함께 주최했는데, 당시 멜버른에 있던 나는 온라인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했다. 내가 맡은 일 중 가장 중요한 일은 정세랑 작가님을 연사로 섭외하는 것이었다.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한 뒤 랜선으로 자축한 기억이 난다. 당일 행사는 오직 나만을 위해 페이스북 라이브로도 중계했는데, 아이패드 화면으로 정세랑 작가님을 보면서 자랑스러웠던 마음이 생생하다. 여성의 욕망과 야망에 대해서 '왜 안돼?'라고 물어보고, 안되지 않으면 해 버리자는 페스티벌의 주제를 통해서 작가님은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은 마음에 대해서 이야기하셨다. 특히 문학을 포함한 문화 전반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결론으로 정세랑 작가님이 '언젠가 문화부 장관이 되고 싶다'라고 하셨을 때, 나는 지구 반대편에서 '유레카'를 외쳤다. 이거야, 이거. 정세랑을 청와대로! 아, 이건 대통령이지. 여의도로? 국회의원이고. 찾아보니 문화체육관광부는 세종시에 있었다. 그래그래. 정세랑을 세종시로!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는 뒤늦게 쓴 여행일기 느낌의 에세이로, 복잡한 세계를 여행하며 끊임없이 자기 위치를 점검하는 예민한 시민의 눈 덕분에 두 배로 좋았다. 정세랑의 세계를 따라왔다면 충분히 예상 가능한 시선임에도, 에세이에서 기대하지는 않았던 내용이라 놀랐고 반가웠다. 언제나 소설을 향유하는 즐거움을 주었던 작가가 말하는 "남의 예술" 이야기, 문명과 문화, 그 안에 사는 한 인간의 태도에 줄 쳤다. 


악하고 폭력적인 사람만 아니면 아무도 배제되지 않는 세계를 그리고 싶다.

그런 세계를 지금 여기 만들고 싶으니, 나는 정말 언젠가 정세랑 작가가 문화부(지금까지 수없이 이름이 바뀌어왔으므로 미래형은 문화부라고만 쓰자) 장관이 되었으면 한다. 아직도 콘텐츠 사업을 하길 바라신다는 경영학과 출신 부모님의 꿈을, 한국 문화 경영으로 이루시면 좋겠다. 여행지에서 역사와 권력관계를 예민하게 포착하고, 예술을 생산하고 또 향유하는 일을 즐기고, 차별과 악의 앞에서도 현재를 더 낫게 만들 방법을 고민하며 희망을 버리지 않는 이 작가가 계속 욕망하고, 원하는 일에 '왜 안돼?'를 물으며 최대가능성을 끊임없이 타진하고, 70살까지 50권의 책을 내면서 문화부 장관도 했으면 좋겠다. 정세랑을 세종시로. 더 많은 여성을 일하고 정치하는 자리로. "존재하지 않는 곳을 찾아 헤매기보다 지금 이곳을 지키고 싶어"지는 마음을 가진 사람을, 지킬 힘이 있는 자리로. 힘껏. 


이게 바로 접시꽃에서 시작되어 세종시로 마무리되는 책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는 독후감이다. 


세상이 망가지는 속도가 무서워도, 고치려는 사람들 역시 쉬지 않는다는 걸 잊지 않으려 한다. 절망이 언제나 가장 쉬운 감정인 듯싶어, 책임감 있는 성인에게 어울리진 않는다고 판단했다. 작은 부분에서 시작된 변화가 확산되는 것은 인류 역사에서 흔히 찾을 수 있는 패턴이기 때문에 시선을 멀리 던진다. 합리성과 이타성, 전환과 전복을 믿고 있다. 우리는 하던 대로 하고 살던 대로 사는 종이 아니니까.

-정세랑 에세이,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254p 



나는 <이만큼 가까이>를 2014년 10월 런던에서 읽었는데, 비슷한 시기에 작가님 역시 런던을 여행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전혀 신기하지 않고 흔한 우연인데, 그냥 내가 좋아서 기록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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